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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갈성조신(葛城朝臣; 가츠라기노아소미)

갈성조신(葛城朝臣; 가츠라기노아소미)
 갈성습진언명(葛城襲津彦命; 가츠라키노비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일본서기』, 『속일본기』, 관부(官符)의 개성(改姓) 기사와 합치된다.
 
【주석】
1. 갈성조신(葛城朝臣)
갈성(葛城; 가츠라키)이라는 씨명은 『일본서기』 의 신무(神武) 기미년(己未年) 2월 신해조에 기재된 신무동정(神武東征) 전설에 고미장읍(高尾張邑; 다카오와리노무라)에 관한 분주에 갈성읍(葛城邑; 가츠라기[키]노무라)이 보인다. 갈성이라는 씨명은 율령제 시대 대화국(大和國)의 갈상(葛上; 가츠라기노가미), 갈하(葛下; 가츠라기노시모) 2군의 ‘가츠라기(키)’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화국에 있던 대왕(황실)의 직할지인 6현(혹은 6어현[御縣]) 가운데 갈성[목]현(葛城[木]縣) 지역이다. 여기에는 현명을 띤 식내사인 갈목어현신사(葛木御縣神社)가 진좌하였다. 이곳은 현재 나라현(奈良縣) 어소시(御所市), 갈성시(葛城市) 일대에 해당된다.
갈성조신 일족으로는 『평안유문(平安遺文)』(9-338) 「제형 3년(856) 7월 19일자 축자국부(齊衡三年七月十九日付 筑紫國符)」 에는 권대목(權大目) 갈성조신(葛城朝臣)이 서명하고 있다. 그런데 죽내리삼(竹內理三)은 『평안유문(平安遺文)』(9)에서 이 문서 자체가 위문서(僞文書)라고 간주하고 있다. 이 사례를 제외하면 갈성조신은 여기에만 보인다.
2. 갈성습진언명(葛城襲津彦命)
갈성습진언(葛城襲津彦)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모두 등장하는 전승적인 인물이다. 『일본서기』에서는 갈성습진언, 『고사기』에서는 갈성장강증도비고(葛城長江曾都毘古), 갈성지증도비고(葛城之曾都毘古)라고 표기되어 있다. 『기씨가첩(紀氏家牒)』 의 일문(逸文)에서는 갈성장병습진언숙녜(葛城長柄襲津彦宿禰)라고 적혀 있다. 『일본서기』에는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인 정벌과 한반도인을 데리고 도해하는 등의 한반도 관계 기사(신공기, 응신기, 인덕기)에 등장하거나, 천황가와 혼인관계를 맺는 계보 중심의 기사(효원천황단, 인덕천황단, 이중천황단, 윤공기, 웅략기)에 보인다. 『고사기』 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서는 건내숙녜(建內宿禰; 다케우치노스쿠네)의 자식 9명 가운데 여섯 번째 아들인 갈성장강증도비고가 보인다. 그 분주에는 옥수신(玉手臣), 적신(的臣), 생강신(生江臣), 아예나신(阿藝那臣) 등의 조상이라 적혀 있다.
3. 일본기(日本紀), 속일본기(續日本紀), 관부개성병합(官符改姓竝合)
“『일본서기』와 『속일본기』, 「태정관부」의 개성에 관한 기록과 합치한다.”라는 부기가 기재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는 갈성조신의 개사성은 물론이고 인해련씨의 사성 기사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속일본기』 연력(延曆) 10년(791) 정월 기사조에 전약두(典藥頭) 외종 5위하 인해원련어양(忍海原連魚養) 등이 인해원련(忍海原連)에서 조야숙녜(朝野宿禰)로 개성을 청원한 기사가 실려 있다. 인해원련어양 등이 개성을 청원한 근거로 제시한 고첩(古牒)에 의거하면 갈목습진언(葛木襲津彦, 葛城襲津彦; 가츠라키[기]노소쓰히코)의 여섯 번째 아들 웅도족녜(熊道足禰)가 어양 등의 조상이며, 웅도족녜의 6세손 수마려(首麻呂)가 비조정어원조정(飛鳥淨御原朝庭, 천무조)에서 신사년(辛巳年, 681)에 연성으로 폄하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서기』 천무천황 10년(임오년, 682)4월조에는 “인해조경(忍海造鏡; 오시누미노미야츠코카가미) 등 모두 14인에게 연성을 주었다.”라고 하고, 천무천황 12년(갑신년, 684) 9월 정미조에는 “인해조(忍海造; 오시누미노미야츠코) 등 모두 38씨에게 연성을 주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인해씨는 천무조에 조성에서 연성으로 성이 올라간 것이므로 천무조 신사년 즉 천무천황 9년(681)에 연성으로 폄하되었다는 인해원련어양 등이 제시한 『가첩』 의 내용은 『일본서기』 의 사성 기사와 맞지 않다. 따라서 『신찬성씨록』 의 부기에 기재된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와 합치된다는 의미는 『일본서기』 천무천황 12년의 연성 사성 기사 및 『속일본기』 연력 10년 정월 기사조의 조야숙녜 개성 기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 “관부개성과 합치된다.”는 부기의 기술에 과 합치되는 사료도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연력 11년 이후 『일본후기』 기사가 결락된 부분에 조야숙녜가 갈성조신으로 개성한 기사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신찬성씨록』 편찬 이전에 조야숙녜가 갈성조신이라고 개성한 때의 「태정관부」와 합치된다는 의미라고 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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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성조신(葛城朝臣; 가츠라기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70_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