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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상원공(桑原公; 구하하라노키미)

상원공(桑原公; 구하하라노키미)
 상모야(上毛野; 가미츠케노)와 조상이 같으며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의 5세손 다기파세군(多奇波世君; 다카하세노키미)의 후손이다.
 
【주석】
1. 상원공(桑原公)
상원(桑原; 구하하라)이라는 씨명은 『일본서기』 신공황후(神功皇后) 섭정 5년 3월조에 갈성습진언(葛城襲津彦)이 신라에서 데려온 포로가 상원(桑原; 구하하라), 좌미(佐糜), 고궁(高宮), 인해(忍海) 등 4읍의 한인들의 시조라는 전승에 보이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화국(大和國) 갈상군(葛上郡) 상원(桑原)에 해당된다. 이곳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어소시(御所市) 액상(掖上) 일대이다. 『일본서기』 주조(朱鳥) 원년(686) 4월 정축조에 “시의(侍醫) 상원촌주가도(桑原村主訶都; 구하하라노스구리카츠)에게 직광사(直廣肆)를 주었다. 성을 내려 연(連)이라 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상원공(桑原公; 구하하라노키미)의 옛 성은 연이다. 또 『속일본기』 천평신호(天平神護) 2년(766) 2월 을묘조에 “좌경인(左京人) 종8위하 상원련진도(桑原連眞島), 우경인(右京人) 외종5위하 상원촌주족상(桑原村主足床), 대화국 사람 소초위상(少初位上) 상원촌주강마려(桑原村主岡麻呂) 등 40인에 상원공(桑原公)이라는 성을 주었다”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천평신호 2년 2월에 상원련씨는 옛 성 상태인 상원촌주씨와 함께 상원공이라는 성을 받았다. 그러나 『속일본기』 천평신호 원년(765) 윤10월 계묘조에는 “대초위하(大初位下) 상원공족도(桑原公足島)가 외종5위하로 승서된 기록이 보이므로, 천평신호 원년 윤10월 이전에도 이미 상원공씨가 존재하였던 것이다.
상원공 일족으로는 위의 상원공족도와 상원공진도가 있으며, 『속일본기』에 상원공족상(桑原公足床)이 신호경운(神護景雲) 원년(767) 2월 갑신조에 외종5위하에서 외종5위상으로 승진한 뒤 연력(延曆) 9년(790) 윤3월 정축조에 종5위상(극위)으로 어장사(御葬司) 일을 맡았다고 적혀 있다. 또 보귀(寶龜) 9년(778) 7월 무신조에는 명부(命婦) 종5위하에서 종5위상으로 승진한 상원공도주(桑原公島主)가 보인다. 『일본후기』 연력 18년(799) 정월 갑술조에 외종5위하로 주계조(主計助)에 보임된 상원공추성(桑原公秋成), 『일본후기(日本後紀)』(『유취국사(類聚國史)』 99 敍位) 홍인(弘仁) 11년(820) 정월 경진조에 정6위하에서 외종5위하(극위)로 승진한 상원공복적(桑原公腹赤) 등이 있다.
2. 상모야동조(上毛野同祖)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인수(仁壽) 2년(852) 5월 무자조에는 주계두(主計頭) 종5위하 도숙녜정계(都宿禰貞繼)의 졸전에, 정계가 대화국(大和國) 차관 외종5위하 상원공추성(桑原公秋成)의 아들로 홍인 13년(822) 문장박사(文章博士) 복적(腹赤)과 함께 도숙녜(都宿禰)로 개성을 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상원공복적과 정계 등의 도숙녜 사성에 관해서는 『일본후기』 의 홍인 13년 부분이 산일되어 확실하지 않지만, 상원공복적은 홍인 14년(823) 4월에 종5위하에서 정5위하로 승진하였다. 이때 도숙녜복적(『유취국사』 99 서위 홍인 14년 4월 신해조)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므로 홍인 13년에 상원공이 도숙녜로 개성한 것은 틀림이 없다.
도숙녜로 개성한 상원공씨가 상모야씨와 조상이 같다고 칭한 것은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원경(元慶) 원년(877) 12월 25일자 신묘조에 “좌경인(左京人) 종5위하 행찬기개(行讚岐介) 도숙녜어주(都宿禰御酒), 문장박사(文章博士) 종5위하 겸 행대내기(行大內記) 월전권개(越前權介) 도숙녜량향(都宿禰良香), 산위(散位) 정6위상 도숙녜인웅(都宿禰因雄), 정7위하 도숙녜흥도(都宿禰興道) 4인이 조신이라는 성을 받았다. 어간성입언오십경식천황(御間城入彦五十瓊殖天皇)의 후손이다. 상모야(上毛野), 대야(大野), 지전(池田), 좌미(佐味), 거지조신(車持朝臣)과 조상이 같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드러난다.
3.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풍성입언명은 숭신천황의 아들로, 『고사기』 숭신천황단과 『일본서기』 숭신 48년 4월 무신삭 병인조에 상모야군(上毛野君)과 하모야군(下毛野君)의 시조라고 기술되어 있다. 풍성입언명에 관해서는 좌경 황별(하)의 「하모야조신」 조 풍성입언명 참조.
4. 다기파세군(多奇波世君)
『일본서기』 인덕 53년 5월조에는 상모야군(上毛野君; 가미츠케노노키미)의 조상 죽엽뢰(竹葉瀨; 다카하세)라고 적혀 있다. 『홍인사기(弘仁私記)』 의 서문에는 도래계 씨족의 ‘출자개변(出自改變)’ 사례로 제시된 『제번잡성기』 의 분주에는 “일본에서 파견된 장군인 상야공죽합(上野公竹合)의 자손에 해당하는 사수미(思須美)와 화덕(和德)이 인덕조(仁德朝)에 백제에서 내조하여 전변사(田邊史), 상모야공(上毛野公), 지원조신(池原朝臣), 주길조신(住吉朝臣) 등의 조상이 되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신찬성씨록』 의 다기하세(多奇波世; 다카하세)와 『제번잡성기』 의 죽합(竹合; 다카하세)은 『일본서기』 의 상모야군의 조상 죽엽뢰(竹葉瀨; 다카하세)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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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공(桑原公; 구하하라노키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70_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