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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주길조신(住吉朝臣; 스미노에노아소미)

주길조신(住吉朝臣; 스미노에노아소미)
 상모야조신(上毛野朝臣; 가미츠케노노아소미)과 조상이 같으며,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의 5세손 다기파세군(多奇波世君; 다카하세노키미)의 후손이다. 『일본기』 의 사성 기사와 일치하며 『속일본기』에 따른다.
 
【주석】
1. 주길조신(住吉朝臣)
주길(住吉; 스미노에)이라는 씨명은 『일본서기』 신공황후(神功皇后) 섭정원년 12월 무술삭 신해조에 인웅왕이 주길(住吉)에 군사를 주둔시킨 전승이 보인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대판시(大阪市) 주길구(住吉區) 일대에 해당된다. 또 주길대신(住吉大神)은『일본서기』 중애천황(仲哀天皇) 때 웅습(熊襲), 준인(隼人) 등 대화조정(大和朝廷)에 반항한 부족이 봉기하였을 때 신공황후가 반란군의 배후에는 삼한(三韓)이 존재한다. 삼한을 정토하라는 신탁을 얻고도 천황이 신탁에 따르지 않아 다음해에 죽었으며(崩) 신공황후가 신탁을 얻고 스스로 출병을 위해 삼한으로 출항하였다는 전승에서 주길대신이 황후의 신변을 보호하고 선단을 후원하였다는 전승 기사에 등장한다. 섭진국(攝津國)의 주길신사는 전국에 2,300개 정도 존재하는 주길신사의 총본사이다. 하관(下關)과 박다(博多)의 주길신사와 함께 일본 3대 주길신사의 하나이다. 주제신(主祭神)인 저통남명(底筒男命), 중통남명(中筒男命), 표통남명(表筒男命)은 합하여 주길삼신(住吉三神)이라고 부르는 해신이다.
『속일본기(續日本紀)』 연력(延曆) 10년(791) 4월 을미조에는 근위장감(近衛將監) 외종5위상(극위) 하총국(下總國) 대연(大掾) 지원공강주(池原公綱主) 등이 주길조신(住吉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지원공 일족으로는 지원공강주 외에 『속일본기』 보귀(寶龜) 8년(777) 정월 무인조에 주계두(主計頭) 겸 대외기(大外記) 종5위하(극위) 지원공화수(池原公禾守)가 보인다.
주길조신 일족으로는 주길조신강주(住吉朝臣綱主)와 주길조신풍계(住吉朝臣豊繼)를 들 수 있다. 전자는 『일본후기(日本後紀)』 연력(延曆) 24년(805) 2월 경술조에 졸전(卒傳)이 실려 있다. 주질조신강주는 산위(散位) 종4위하(극위)에 이른 인물로 무예가 뛰어나 근위부(近衛府)의 장조장감(將曹將監)직을 역임했다고 적혀 있다. 후자는 『일본후기』(『類聚國史』 권99 敍位) 일문(逸文) 홍인(弘仁) 5년(814) 2월 계사조에 종5위하로 승진하여 좌병위좌(左兵衛佐)에 임명되었고, 『일본기략(日本紀略)』 홍인 13년(822) 정월 기해조에는 종5위상(극위)으로 승진한 기록이 보인다.
2. 상모야조신동조(上毛野朝臣同祖)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신찬성씨록』 완본에서는 ‘상모야(上毛野)’ 다음에 ‘조신(朝臣)’이라는 2글자가 있었다고 추정하였다.
지원공화수(池原公禾守)는 『정창원문서(正倉院文書)』 천평승보 6년(754) 8월 15일자 「외도원광백론본봉청문(外島院廣百論本奉請文)」(『대일본고문서』 13-101)에 상모야군속수(上毛野君粟守)로 나온다. 또 천평승보(天平勝寶) 7년(755) 2월 9일자 「외도원일체경산장(外島院一切經散帳)」 에는 「검수지원속수(撿授池原粟守)」(『대일본고문서』13-122)가 보이고, 천평승보 7년 3월 23일자 「봉사보적경소첩안(奉寫寶積經所牒案)」(『대일본고문서』 13-133)에는 「원강원외소목(遠江員外小目) 지원군속수(池原君粟守)」 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지원공화수는 천평승보 6년 8월 15일까지 상모야군이라고 칭한 것을 알 수 있다. 지원공화(속)수의 씨성 변화를 보면 주길조신씨는 원래 상모야군의 씨성을 칭하며 상모야와 동조를 칭한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3. 풍성입언명(豐城入彦命)
풍성입언명은 숭신천황의 아들로, 『고사기』 숭신천황단과 『일본서기』 숭신 48년 4월 무신삭 병인조에서 상모야군(上毛野君)과 하모야군(下毛野君)의 시조라고 기술되어 있다. 풍성입언명에 관해서는 좌경 황별(하)의 「하모야조신」 조(097) 풍성입언명 참조.
4. 다기파세군(多奇波世君)
『홍인사기(弘仁私記)』 서(序)에는 전변사(田邊史)와 지원조신(池原朝臣), 주길조신(住吉朝臣) 등의 조상 사수미(思須美)와 화덕(和德)이 인덕조(仁德朝)에 백제국에서 왔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주길조신씨는 백제계 도래씨족이라 이해된다.
5. 일본기사성합(日本紀賜姓合)
주길조신의 사성은 연력 10년(791) 4월조의 일이므로 『일본서기』에 조신 사성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좌백유청(佐伯有淸)이 『일본서기』와 합치된다고 적고 있는 것은, 주길조신씨가 제출한 본계에 본류인 상모야조신씨의 사성에 관한 기록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이에 의거하여 추정한 것이다.
6. 의속일본기(依續日本紀)
『속일본기』 연력(延曆) 10년(791) 4월 을미조에 지원공강주(池原公綱主) 등이 주길조신(住吉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적혀 있는 사성 기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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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길조신(住吉朝臣; 스미노에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7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