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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소야조신(小野朝臣; 오노노아소미)

소야조신(小野朝臣; 오노노아소미)
 대춘일조신(大春日朝臣; 오카스가노아소미)과 조상이 같으며, 언로진명(彦姥津命; 히코오케츠노미코토)의 5세손 미병도대사주명(米餅搗大使主命; 다가테츠키노오미)의 후손이다. 대덕(大德) 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 오노노이모코)가 근강국(近江國; 오오미노쿠니) 자하군(滋賀郡; 시가노코호리) 소야촌(小野村; 오노노무라)에 거주하였다. 그리하여 이로써 씨를 삼았다. 『일본서기』와 합치한다.
 
【주석】
1. 소야조신(小野朝臣)
소야(小野; 오노노)라는 씨명은 율령제 근강국(近江國) 자하군(滋賀郡) 소야(小野; 오노노)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자하현(滋賀縣) 자하군(滋賀郡)소야(小野) 지역이다.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 “대삼륜군(大三輪君), 대춘일신(大春日臣) 등과 함께 소야신(小野臣)이 조신이라는 성을 받았다.”라고 적혀 있다. 『고사기(古事記)』 효소천황단(孝昭天皇段)에는 춘일신(春日臣), 대택신(大宅臣), 속전신(粟田臣), 소야신(小野臣), 시본신(柿本臣), 역정신(櫟井臣) 등 천압대일자명(天押帶日子命; 아메오시타라시히토노미코토) 후예 16씨의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근강국 자하군 소야촌(小野村) 부근에는 대총산(大塚山) 고분 등의 전기 고분이 많이 존재한다. 『연희식(延喜式)』 신명장(神名帳)에 명신대사소야신사(名神大社小野神社)도 보인다.
소야신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추고(推古) 15년(607) 7월 경술조에 수나라에 파견된 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가 보인다.
소야조신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지통천황(持統天皇) 9년(695) 7월 신미조에 신라사로 파견된 소야조신모야(小野朝臣毛野)가 보인다. 그는 추고천황 15년(607)에 견수사로 파견된 소야매자의 손자로 문무천황(文武天皇) 4년(700) 10월에 축자대이(筑紫大貳)가 되었고, 대보(大寶) 2년(702) 5월에 종4위하로 참의(参議)가 되었다. 경운(慶雲) 2년(705) 11월에는 정4위상 중무경(中務卿), 화동(和銅) 원년(708) 3월에는 중납언(中納言)의 지위에 올랐다. 화동 2년(709)에는 정4위상에서 종3위(극위)로 승진하였다. 화동 7년(714) 4월 신미조의 졸전 기사가 실려 있다. 『속일본기』 양로 2년(718) 3월 을묘조에는 소야조신마양(小野朝臣馬養)이 견신라사로 파견되었다가 양로 3년 2월 기사조에 귀국한 기사가 보이고, 양로 3년(719) 7월 경자조에는 정5위하(극위)로 단파국수(丹波國守)에 보임한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속일본기』천평승보 5년(753) 2월 신사조와 천평보자(天平寶字) 2년(758) 9월 정해조에는 종5위하 소야신전수(小野朝臣田守) 견신라대사와 견발해대사로 파견된 기록이 보인다. 『속일본기』 보귀(寶龜) 9년(778) 11월 을미조에는 정6위상 소야조신자야(小野朝臣滋野)가 견당판관(遣唐判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며, 보귀 11년(780) 3월 임오조에는 종5위하(극위)로 풍전수(豐前守)에 임명된 기록이 보인다. 또 소야조신황(小野朝臣篁)은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원년(834) 정월 경오조에 견당부사로 임명된 기록이 보인다. 그의 출생과 이력은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인수(仁壽) 2년(852) 12월 계미조에 참의(參議)좌대변(左大弁) 종3위(극위) 소야조신황의 훙전(薨傳)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이와 같이 소야신매자가 견수사로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소야씨 일족이 견신라사, 견발해사, 견당사 등 대외교섭의 임무를 담당하였음이 확인된다. 또 소야조신모야가 축자대이직을 역임하였고, 소야조신전수도 2회에 걸쳐 대재소이(大宰少貳)에 임명되었다. 『속일본기』 보귀 원년(770) 6월 정미조에는 정5위하 소야조신지(小野朝臣小贄)가 대재소이에 임명된 기록이 보이고, 『일본기략(日本紀略)』 천장(天長) 3년(826) 정월 갑술조에는 종4위상 소야조신금수(小野朝臣岑守)가 대재대이(大宰大貳)로서 활동하였다. 또 『일본기략』 천장 7년(830) 4월 임술조에는 참의 종4위상 소야조신금수의 졸전이 기재되어 있다. 소야조신소지(小野朝臣小贄)도 『속일본기』 보귀 원년(770) 6월 정미조에 대재소이에 임명되었고, 보귀 2년(771) 9월 기해조에는 정5위하(극위)로 섭진대부(攝津大夫)에 보임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따라서 소야조신 일족 중에는 대재부에서 요직을 점한 인물이 많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것은 대외교섭의 임무를 담당한 소야씨의 특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또한 『속일본기』와 『속일본후기』 등에는 소야조신 일족의 서위 기사와 함께 군사(軍事)와 정이(征夷), 특히 육오(陸奧), 출우(出羽) 양국 국사에 임명된 인물이 상당수 확인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속일본기』에는 대보(大寶) 3년(703) 정월 갑자조에는 정7위상 소야조신마양(小野朝臣馬養)이 보이고, 화동 3년(710) 정월 임자삭조에는 종5위하 소야조신마양이 우부장군(右副將軍)이 되어 준인(隼人)과 하이(蝦夷)를 인솔한 기록이 보인다. 또 화동(和銅) 원년(708) 9월 무자조의 종5위하(극위) 소야조신광인(小野朝臣廣人)과 영귀(靈龜) 2년(716) 정월 임오조의 정6위상 소야조신우양(小野朝臣牛養)이 보이고, 신귀 원년(724) 5월 임자삭조에는 소야조신우양이 정5위상으로 진적장군(鎭狄將軍)에 임명되어 출우의 하이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천평(天平) 11년(739) 10월 갑자조에 종4위하(극위) 소야조신우양의 졸전이 기재되어 있다. 천평 6년(734) 정월 기묘조의 정6위상에서 종4위하(극위)로 승진한 소야조신겸마려(小野朝臣鎌麻呂), 천평보자(天平寶字) 원년(757) 5월 정묘조에 종5위상(극위)으로 승진한 소야조신동인(小野朝臣東人) 등이 보인다. 그리고 천평보자 4년(760) 정월 병인조에는 종5위하 소야조신죽량(小野朝臣竹良)이 출우수(出羽守)로 하이를 교도하였다고 적혀 있다. 신호경운(神護景雲) 3년(767) 5월 기해조에는 종4위하 소야조신죽량의 졸전 기사가 보인다. 또 『일본후기』 홍인(弘仁) 6년(815) 정월 임오조에는 종5위상 소야조신금수(小野朝臣岑守)가 육오수(陸奧守)에 임명된 기록이 보인다.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2년(860) 5월 18일 정묘조에는 종5위상(극위) 소야조신항가(小野朝臣恒柯)의 졸전에 항가의 할아버지가 정이부장군(征夷副將軍) 종5위하 소아조신영견(小野朝臣永見)이고, 아버지가 출우수 정5위하 소아조신롱웅(小野朝臣瀧雄)이라 적혀 있다.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7년(840) 6월 갑인조에 종5위하 소야조신천주(小野朝臣千株)가 출우수에 임명되었다.
2. 대춘일조신동조(大春日朝臣同祖)
『고사기』효소천황단에는 천압대일자명(天押帶日子命; 아메오시타라시히코노미코토)의 분주에 춘일신(春日臣), 대택신(大宅臣), 속전신(粟田臣), 소야신(小野臣) 등의 조상이라 기재되어 있다. 『신찬성씨록』에는 대춘일조신과 동조관계를 주장하는 후예씨족 43씨가 게재되어 있다.
3. 언로진명(彦姥津命)
『일본서기』 개화천황(開化天皇) 6년 정월 갑인조에는 “화이신(和珥臣; 와니노오미)의 먼 조상 노진명(姥津命; 하하츠노미코토)의 누이 노진원(姥津媛; 하하츠노히메)은 언좌왕(彦坐王; 히코이마스노미코)을 낳았다.”라고 적혀 있다. 언로진명(彦姥津命)이라는 이름은 『신찬성씨록』 좌경 황별(하) 「화안부조신(和安部朝臣)」 조와 산성국 황별의 「화이부(和爾部)」 조, 섭진국 황별 「우속수(羽束首)」 조 등에 보인다.
4. 미병도대사주명(米餠搗大使主命)
미병(米餠)을 ‘다가네’라고 읽는 것은 미정잡성 우경 「중신신(中臣臣)」 조에서 미병도대사주명(米餠搗大使主命; 다가네츠키노오미노미코토)을 점착대사주(鏩着大使主; 다카네츠키노오미)라고 쓴 사례가 있다. 『일본서기』 신무천황 즉위전기 무오년 9월 무진조에는 천황이 물 없이 엿을 만들려고 한다는 문장에서 엿을 다가네로 훈독하고 있다. 다카네는 반죽하여 굳힌다는 의미로 그와 같이 해서 만든 떡 또는 엿을 말한다.
「화이계도(和邇系圖)」 에는 미병도대신명(米餠搗大臣命)의 아들로 인화신(人華臣)이나오고, 아들 강상신(岡上臣), 손자 야의신(野依臣)이 게재되어 있다. 야의신의 보문(譜文)에 ‘소야조신조(小野朝臣祖)’라고 적혀 있는데 이 계보 기사는 여기에만 보인다.
5. 대덕(大德) 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
『일본서기』 추고천황 15년(607) 7월 경술조에는 “대례(大禮) 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 오노노오미이모코)를 대당(大唐)에 파견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대당은 수나라(581~618)의 오기이다. 소야신매자는 최초의 견수사(遣隋使)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대례는 추고천황 11년(603)에 제정된 관위 12계, 즉 대덕(大德), 소덕(小德), 대인(大仁), 소인(小仁), 대례(大禮), 소례(小禮), 대신(大信), 소신(小信), 대의(大義), 소의(小義), 대지(大智), 소지(小智) 가운데 5위에 해당된다. 본문에서는 소야매자의 관위를 대덕으로 기재하고 있어 관위 12계 중 최고위에 해당되므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속일본기』 화동 7년(714) 4월 신미조의 소야조신모야의 훙전(薨傳)에 “소치전조(小治田朝, 추고조)에 대덕관(大徳冠)을 지낸 매자(妹子)의 손자 소금중(小錦中) 모인(毛人)의 아들이다.”라고 적혀 있고, 『공경보임』 대보 2년조 소야조신모야의 부기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매자가 뒤에 대덕의 관위를 받은 것은 확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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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조신(小野朝臣; 오노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7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