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부숙녜(新田部宿禰; 니히타베노스쿠네)
신전부숙녜(新田部宿禰; 니히타베노스쿠네)
안녕천황(安寧天皇; 안네이텐노)의 황자(皇子) 기진언명(磯津彦命; 시키츠히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신전부숙녜(新田部宿禰)
신전부(新田部)라는 씨명은 새롭게 설치된 전부(田部)라는 의미이며, 신전부숙녜는 신전부의 반조씨족(伴造氏族)일 가능성이 있다. 신전부숙녜의 원래 성은 연(連)이었는데, 685년에 숙녜(宿禰)라는 성을 받았다(『日本書紀』 天武 13년 12월 기묘조).
신전부련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신전부련미마려(新田部連米麻呂, 『日本書紀』齊明 4년 11월 경인조 및 무자조), 신전부련형견(新田部連形見, 『平城宮發掘調査出土木簡槪報』)이 있다. 신전부숙녜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신전부숙녜입가(新田部宿禰入加, 天平勝寶 2년 5월 6일자 「出擧錢解」 3-391), 신전부숙녜안하(新田部宿禰安河, 『日本三代實錄』 元慶 7년 정월 갑술조 등)가 보인다.
성이 없는 사람으로는 신전부궁(新田部弓, 天平 4년 이전 「播磨國正稅帳」, 『대일본고문서』2-151), 신전부진상(新田部眞床, 天平 20년 4월 25일자 「寫書所解」, 『대일본고문서』3-80), 신전부궁만려(新田部宮萬呂, 天平勝寶 7년 2월 「寫經疏間紙充装潢帳」, 『대일본고문서』 9-531), 신전부조마려(新田部鳥麻呂, 天平勝寶 7년 3월 「寫經疏間紙充装潢帳」, 『대일본고문서』 9-534 등), 신전부이하마려(新田部伊賀麻呂, 天平寶字 4년 7월 22일자 「校生歷名」, 『대일본고문서』 14-359), 신전부명(新田部名, 「多賀城出土古瓦銘」 ) 등이 있다.
신전부(新田部)라는 씨명은 새롭게 설치된 전부(田部)라는 의미이며, 신전부숙녜는 신전부의 반조씨족(伴造氏族)일 가능성이 있다. 신전부숙녜의 원래 성은 연(連)이었는데, 685년에 숙녜(宿禰)라는 성을 받았다(『日本書紀』 天武 13년 12월 기묘조).
신전부련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신전부련미마려(新田部連米麻呂, 『日本書紀』齊明 4년 11월 경인조 및 무자조), 신전부련형견(新田部連形見, 『平城宮發掘調査出土木簡槪報』)이 있다. 신전부숙녜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신전부숙녜입가(新田部宿禰入加, 天平勝寶 2년 5월 6일자 「出擧錢解」 3-391), 신전부숙녜안하(新田部宿禰安河, 『日本三代實錄』 元慶 7년 정월 갑술조 등)가 보인다.
성이 없는 사람으로는 신전부궁(新田部弓, 天平 4년 이전 「播磨國正稅帳」, 『대일본고문서』2-151), 신전부진상(新田部眞床, 天平 20년 4월 25일자 「寫書所解」, 『대일본고문서』3-80), 신전부궁만려(新田部宮萬呂, 天平勝寶 7년 2월 「寫經疏間紙充装潢帳」, 『대일본고문서』 9-531), 신전부조마려(新田部鳥麻呂, 天平勝寶 7년 3월 「寫經疏間紙充装潢帳」, 『대일본고문서』 9-534 등), 신전부이하마려(新田部伊賀麻呂, 天平寶字 4년 7월 22일자 「校生歷名」, 『대일본고문서』 14-359), 신전부명(新田部名, 「多賀城出土古瓦銘」 ) 등이 있다.
2. 안녕천황(安寧天皇)
일본의 제3대 천황으로 전하는 인물이며, 역사적 사실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른바 결사(缺史) 8대의 천황 중 한 사람이다.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안녕(安寧)’ 앞에 ‘기성진언옥수간천황시(磯城津彦玉手看天皇諡)’라는 10글자가 있었고, ‘안녕’ 다음에는 ‘천황’이라는 글자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의 제3대 천황으로 전하는 인물이며, 역사적 사실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른바 결사(缺史) 8대의 천황 중 한 사람이다.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안녕(安寧)’ 앞에 ‘기성진언옥수간천황시(磯城津彦玉手看天皇諡)’라는 10글자가 있었고, ‘안녕’ 다음에는 ‘천황’이라는 글자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 기진언명(磯津彦命)
안녕천황의 아들 중 한 명이다. 『일본서기』 본문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고, 인용한 일서(一書)에 기성진언명(磯城津彦命; 시키츠히코노미코토)으로 보인다. 그는 저사련(猪使連)의 시조라고 하였다. 또한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事紀)』 「천황본기(天皇本紀)」의 안녕천황조에서도 기성진언명이 저사련과 신전부 등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조의 기진언명은 기와 진 사이에 성(城)이라는 글자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
기성(磯城; 시키)은 지귀(志貴)·지기(志紀)·사목(師木)·지규(志癸)라고도 표기하며, 나라분지의 동남부를 지칭하는 지역 명칭이다. 삼륜산(三輪山)의 서쪽에서 초뢰천(初瀬川; 하츠세가와) 유역으로, 현재의 기성군(磯城郡)과 앵정시(櫻井市), 천리시(天理市) 일부를 가리킨다.
이 지역은 『일본서기』에서 신무천황(神武天皇)이 동정(東征)할 때 복종하지 않은 세력으로 기성(磯城)의 팔십효수(八十梟帥)가 보이며, 『고사기』에서는 수정천황(綏靖天皇)의 대후(大后)가 사목현주(師木縣主)의 조상인 하오비매(河俁毘賣)로 되어 있다. 또한 숭신천황(崇神天皇)이 도읍을 기성서리궁(磯城瑞籬宮; 시키노미즈가키노미야)으로 옮겼다고 전하며, 흠명천황(欽明天皇)의 궁이 기성군(磯城郡) 기성도(磯城島; 시키시마)의 금자궁(金刺宮; 가나사시노미야)으로 되어 있다. 또한 도하산고분출토철검(稻荷山古墳出土鐵劍)의 명문 중에 획가다지로(獲加多支鹵)의 궁이 사귀궁(斯鬼宮; 시키노미야)으로 되어 있다.
고고학적으로도 이 지역에는 당고건유적(唐古鍵遺跡)을 비롯하여 환호집락(環濠集落)·조리제(條里制)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앵정시 북부에는 저묘고분(箸墓古墳)으로대표되는 전향유적(纏向遺跡)이 있다.
『고사기』 안녕천황단(安寧天皇段)에 따르면 현주(縣主) 파연(波延)의 딸 아구두비매(阿久斗比賣)를 맞이하여 사목진일자명(師木津日子命, 시키츠히코노미코토)을 낳았으며, 다시 그 아들 중 한 명이 이하(伊賀)의 수지도치(須知稻置), 나파리도치(那婆理稻置), 삼야도치(三野稻置)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또 한 아들인 화지도미명(和知都美命)은 담도(淡道)의 어정궁(御井宮)에 거처하였으며, 승이려니(蠅伊呂泥; 하에이로네)와 부야마등구이아찰비매(富夜麻登久邇阿札比賣; 오호야마토쿠니아레히메)를 낳았으며, 두 사람은 모두 효령천황(孝靈天皇)의 비가 되었다고 한다.
안녕천황의 아들 중 한 명이다. 『일본서기』 본문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고, 인용한 일서(一書)에 기성진언명(磯城津彦命; 시키츠히코노미코토)으로 보인다. 그는 저사련(猪使連)의 시조라고 하였다. 또한 『선대구사본기(先代舊事事紀)』 「천황본기(天皇本紀)」의 안녕천황조에서도 기성진언명이 저사련과 신전부 등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조의 기진언명은 기와 진 사이에 성(城)이라는 글자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
기성(磯城; 시키)은 지귀(志貴)·지기(志紀)·사목(師木)·지규(志癸)라고도 표기하며, 나라분지의 동남부를 지칭하는 지역 명칭이다. 삼륜산(三輪山)의 서쪽에서 초뢰천(初瀬川; 하츠세가와) 유역으로, 현재의 기성군(磯城郡)과 앵정시(櫻井市), 천리시(天理市) 일부를 가리킨다.
이 지역은 『일본서기』에서 신무천황(神武天皇)이 동정(東征)할 때 복종하지 않은 세력으로 기성(磯城)의 팔십효수(八十梟帥)가 보이며, 『고사기』에서는 수정천황(綏靖天皇)의 대후(大后)가 사목현주(師木縣主)의 조상인 하오비매(河俁毘賣)로 되어 있다. 또한 숭신천황(崇神天皇)이 도읍을 기성서리궁(磯城瑞籬宮; 시키노미즈가키노미야)으로 옮겼다고 전하며, 흠명천황(欽明天皇)의 궁이 기성군(磯城郡) 기성도(磯城島; 시키시마)의 금자궁(金刺宮; 가나사시노미야)으로 되어 있다. 또한 도하산고분출토철검(稻荷山古墳出土鐵劍)의 명문 중에 획가다지로(獲加多支鹵)의 궁이 사귀궁(斯鬼宮; 시키노미야)으로 되어 있다.
고고학적으로도 이 지역에는 당고건유적(唐古鍵遺跡)을 비롯하여 환호집락(環濠集落)·조리제(條里制)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앵정시 북부에는 저묘고분(箸墓古墳)으로대표되는 전향유적(纏向遺跡)이 있다.
『고사기』 안녕천황단(安寧天皇段)에 따르면 현주(縣主) 파연(波延)의 딸 아구두비매(阿久斗比賣)를 맞이하여 사목진일자명(師木津日子命, 시키츠히코노미코토)을 낳았으며, 다시 그 아들 중 한 명이 이하(伊賀)의 수지도치(須知稻置), 나파리도치(那婆理稻置), 삼야도치(三野稻置)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또 한 아들인 화지도미명(和知都美命)은 담도(淡道)의 어정궁(御井宮)에 거처하였으며, 승이려니(蠅伊呂泥; 하에이로네)와 부야마등구이아찰비매(富夜麻登久邇阿札比賣; 오호야마토쿠니아레히메)를 낳았으며, 두 사람은 모두 효령천황(孝靈天皇)의 비가 되었다고 한다.
4. 합일본기(合日本紀)
천무(天武) 13년(684)에 신전부련에게 숙녜라는 성을 내렸다는 『일본서기』 의 기사와 합치한다는 뜻이다(『日本書紀』 天武 13년 12월 기묘조).
천무(天武) 13년(684)에 신전부련에게 숙녜라는 성을 내렸다는 『일본서기』 의 기사와 합치한다는 뜻이다(『日本書紀』 天武 13년 12월 기묘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