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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작부조신(雀部朝臣; 사사키베노아소미)

작부조신(雀部朝臣; 사사키베노아소미)
 거세조신(巨勢朝臣; 고세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건내숙녜(建內宿禰; 다케시우치노스쿠네)의 후손이다. 성하건언숙녜(星河建彦宿禰; 호시카하노타케히코노스쿠네)가 시호 응신(應神; 오우진)의 시대에 황태자 대초료존(大鷦鷯尊; 오사사키노미코토)을 대신하여 천으로 만든 어깨띠를 매고 천황이 먹을 음식을 조리하는 일을 맡아 감독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내려 대작신(大雀臣; 오사사키노오미)이라고 하였다. 『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작부조신(雀部朝臣)
작부(雀部)라는 씨명은 인덕천황(仁德天皇)의 이름인 대초료존(大鷦鷯尊, 『고사기』 의 大雀命)의 명대부(名代部)인 작부(雀部)의 반조씨족(伴造氏族)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작부조신(雀部朝臣)의 원래 성은 신(臣)이었는데,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 작부신(雀部臣)에게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인다.
작부조신의 일족으로는 작부조신진인(雀部朝臣眞人, 천평 17년 4월 17일 「내선사해(內膳司解)」, 『대일본고문서』2-406), 작부조신동녀(雀部朝臣東女, 『속일본기』천평보자 4년 정월 병인), 작부조신육오(雀部朝臣陸奥, 『속일본기』 천평보자 8년 10월 신묘 등), 작부조신광지(雀部朝臣廣持, 『속일본기』보귀 7년 4월 병자), 작부조신충마려(雀部朝臣虫麻呂, 『속일본기』 연력 4년 정월 계묘), 작부조□(雀部朝□, 대동 11년 7월 11일 「현번료첩안(玄蕃寮牒案)」, 『평안유문(平安遺文)』 10-25), 작부조신가계(雀部朝臣家繼, 『유취국사(類聚國史)』 99 叙位, 홍인 14년 정월 계해), 작부조신춘지(雀部朝臣春枝, 『일본문덕천황실록(日本文德天皇實錄)』 제형 원년 12월 경진 등), 작부조신조도(雀部朝臣祖道,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정관 7년 8월 기미조), 작부조신의자(雀部朝臣宜子, 『일본삼대실록』원경 3년 정월 계묘조), 작부조신무세(雀部朝臣茂世, 『일본삼대실록』 원경 3년 6월 을유조) 등이 보인다.
일족 중에 작부조신진인과 작부조신조도는 내선사(內膳司)의 전선(典膳)이었다. 작부조신씨는 완인조신(完人朝臣)이나 고교조신(高橋朝臣)과 마찬가지로 대선직(大膳職) 및 내선사의 선부(膳部)가 되는 부명씨(負名氏)이다. 이들은 율령제가 정비되기 전에는 씨성제로 편제되어 대왕의 식선(食膳)을 담당하였고, 율령제하에서는 일반적인 관사와는 정원이나 운용 원리가 다른 내선사의 봉선(奉膳, 정원 2인) 및 전선(典膳, 정원 6인) 등으로 복무하였다.
작부(雀部)라는 씨명을 사용하는 씨족으로는 신팔정이명(神八井耳命)의 후예인 작부신(雀部臣), 작부조(雀部造), 작부련(雀部連), 작부군(雀部君), 작부직(雀部直) 등이 있다. 작부련의 경우는 『선대구사본기』 「천손본기(天孫本紀)」에 요속일존(饒速日尊)의 9세손 제언명(弟彦命)의 아우 옥승산대근고명(玉勝山代根古命)에 산대수주(山代水主)·작부련(雀部連)·경부조(輕部造)·소의부수(蘇宜部首) 등의 조상이라고 주기하고 있다.
작부군은 출운국(出雲國)에 거주하였던 사람들이 확인되지만, 그 계통은 분명하지 않다. 작부군천주(雀部君千主)는 출운국 출운군(出雲郡) 칠소향(漆沼鄕) 공전리(工田里)의 호주였으며, 작부군소도(雀部君小島)는 신문군(神門郡) 활협향(滑狹鄕) 아녜리(阿禰里)의 신문신석마려(神門臣石麻呂)의 호구(戶口)로 보인다.
작부직(雀部直)으로는 『속일본기』에 작부직형자(雀部直兄子)가 보인다. 그는 신호경운(神護景雲) 2년(768) 윤6월에 내약우(內藥佑)로서 삼하국(參河國) 원외개(員外介)를 겸직하고 있다.
작부군천주(雀部君千主) 등 작부군은 출운국에 거주하고 있어 일찍부터 출운국에 작부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성이 없는 명대부(名代部)인 작부는 주로 동국(東國)에 분포한다. 삼하국(參河國) 보반군(寶飯郡)에 작부향(雀部鄕)이 있고 같은 군 형원향(形原鄕)의 호주로 작부소충(雀部小虫)이 보인다(천평보자 2년 5월 15일자 「조사소공문(造寺所公文)」, 『대일본고문서』 25-79). 또 그 호구(戶口)로 작부어원수(雀部御垣守, 같은 문서 25-79)가 보이므로, 대화개신 이전 단계에 삼하국에 작부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하총국(下總國) 결성군(結城郡)의 방인(防人) 작부광도(雀部廣島, 『만엽집』 20-4393), 상륙국(常陸國) 나하군(那賀郡) 황묘향(荒墓鄕)의 호주 토사부흑마려(土師部黑麻呂)의 호구 작부나위마(雀部奈爲麿, 천평 15년 10월 「정창원조포묵서명(正倉院調布墨書銘)」 『영락유문(寧樂遺文)』 하-758), 상륙국 행방군(行方郡) 행방향(行方鄕)의 호주 작부근마려(雀部根麻呂) 및 그 호구 작부□(雀部)□, 「정창원조포묵서명」 『서릉부기요(書陵部紀要)』 3-부39),상륙국 나하군 사람으로 생각되는 작부정월□(雀部正月□, 「상륙국호적(常陸國戶籍)」 단간1-315) 등이 있는 점이나 하야국(下野國) 하내군(河內郡)의 상신주폐사(上神主廢寺)에서 출토된 기와 명문에 작부모인(雀部毛人), 작부소주(雀部小酒), 작부소제(雀部小諸), 작부소백(雀部少伯), 작부수남(雀部収男), 작부을화(雀部乙和), 작부고만려(雀部古萬呂), 작부녜마려(雀部禰麻呂), 작부진인(雀部眞人), 작부만려(雀部萬呂), 작부안마려(雀部安麻呂) 등의 인명이 확인되는 점으로 미루어 하총(下總)·상륙(常陸)·하야(下野) 지역에 일찍부터 작부(雀部)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야국(上野國) 좌위군(佐位郡)에도 작부향(雀部鄕)이 있었다.
한편 서일본에서는 출운국 이외에 단파국(丹波國) 천전군(天田郡)에 작부향이 있었다. 천인(天仁) 2년(1109) 7월 10일자의 「단파국재청관인해안(丹波國在廳官入解案)」에 대판관대(大判官代)로서 서명한 작부뢰정(雀部頼貞)은 단파 지역 작부의 후예씨족이거나 혹은 그 반조씨족의 후예일 것이다(『평안유문』 4-1547). 원경(元慶) 7년(883) 9월 15일자의 「하내국관심사연기자재장(河內國觀心寺緣起資財帳)」에 작부국부(雀部國富)가 보이므로 단마국(但馬國)에도 작부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평안유문』 1-196).
기이국(紀伊國)에서는 천희(天喜) 5년(1057) 12월의 「기이국고진향사해(紀伊國高津鄕司解)」에 작부길차(雀部吉次)가 보이고(『평안유문』 3-935), 천희 6년(1058) 3월 12일자의 「기이국고진향사해」에 작부중송(雀部重松)이 보인다(『평안유문』3-939). 아파국(阿波國)및 찬기국(讚岐國)에도 작부가 있었다. 연희(延喜) 5년(905) 「아파국 판야군(板野郡) 전상향(田上鄕) 호적(戶籍)」 에도 작부미매(雀部米賣)가 보이고(『평안유문』 1-225), 관홍(寬弘) 원년(1004)의 「찬기국 대내군(大內郡) 입야향(入野鄕) 호적」에 작부충자(雀部虫子)가 보인다(『평안유문』 2-567).
2. 거세조신동조(巨勢朝臣同祖)
거세조신(巨勢朝臣)의 본류에 대해서는 우경(右京) 황별(상)의 「거세조신」 조(120)에서 석천(石川)과 조상이 같으며 거세웅병숙녜(巨勢雄柄宿禰)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거세웅병숙녜에 대해서는 『고사기』 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서 건내숙녜(建內宿禰)의 아들인 허세소병숙녜(許勢小柄宿禰)가 허세신(許勢臣), 작부신(雀部臣), 경부신(輕部臣)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허세신에 대해서는 우경 황별(상) 「거세조신」 조(120) 참조. 경부신의 본류에 대해서는 『신찬성씨록』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화천국 황별의 「경부(輕部)」 조(329)에, 왜일향건일향팔강전명(倭日向建日向八綱田命)의 후손인데 웅략천황(雄略天皇) 때 가리내향(加里乃鄕)을 바치므로 경부군(輕部君)이라는 성을 내렸다고 하였다. 좌경 신별(상)의 「경부조(輕部造)」 조(369)에서는 석상(石上)과 조상이 같다고 되어 있다. 경부조의 조상에 대해서는 『선대구사본기』 천손본기(天孫本紀)에 옥승산대근고명(玉勝山代根古命)이 산대수주(山代水主), 작부련(雀部連), 경부조(輕部造), 소의부수(蘇宜部首) 등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경부조의 동족 중에 작부련이 있다는 사실은 경부신(輕部臣)의 동족으로 작부신(雀部臣)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경부라는 씨명은 『고사기』 윤공천황단(允恭天皇段)에 목리지경태자(木梨之輕太子)의 명대(名代)로서 경부를 정했다고 하였으므로, 목리지경태자의 명대부(名代部)인 경부에서 유래한 것이며, 경부신은 그 반조씨족이다.
경부신은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서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인다. 『속일본기』 천평승보(天平勝寶) 3년(751) 2월 기묘조의 작부조신진인(雀部朝臣眞人) 등의 글에서는 경부조신의 조상을 거세남인대신(巨勢男人大臣)의 아들 이도숙녜(伊刀宿禰)라고 하였고, 일족으로 경부조신족뢰(輕部朝臣足瀬)가 있다(『일본서기』 천무천황 14년 10월 임오조).
3. 건내숙녜(建內宿禰)
건내숙녜(建內宿爾)에 대해서는 좌경(左京) 황별(상)의 「전구조신(田口朝臣)」 조(066)의 무내숙녜대신(武內宿禰大臣) 참조.
4. 성하건언숙녜(星河建彦宿禰)
『속일본기』 천평승보(天平勝寶) 3년(751) 2월 기묘조에서는 성천건일자(星川建日子, 星河建彦宿禰)로 되어 있다. 이 기사는 전선(典膳) 정6위하 작부조신진인(雀部朝臣眞人)등이 “반여옥수궁(磐余玉穗宮)과 구금의궁(勾金椅宮) 등이 천하를 다스린 천황의 시대에 작부조신남인(雀部朝臣男人) 등이 대신(大臣)이 되어 섬겼는데 거세남인대신(巨勢男人大臣)으로 잘못 기록되었으며, 우리 선조인 거세남병숙녜(巨勢男柄宿禰)의 아들은 세 명이 있었는데 성천건일자가 작부조신(雀部朝臣) 등의 조상이며, 이도숙녜(伊刀宿禰)는 경부조신(輕部朝臣) 등의 조상이며 호리숙녜(乎利宿禰)는 거세조신(巨勢朝臣) 등의 조상입니다. 정어원조정(淨御原朝廷)에서 8가지 성을 정할 때, 작부조신이라는 성을 받았는데, 거세와 작부가 비록 원래 같은 조상이기는 하지만, 성이 달라진 후에 대신에 임명되었습니다. 지금 성스러운 기운을 맞아서 바르게 고치지 않는다면, 마침내 씨족 이름의 단서를 잃어 영원히 근원이 없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거세대신을 고쳐 작부대신이라고 하여 이름을 오래도록 전하고 후손들에게 영예로움을 보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고, 대납언 종2위 거세조신나저마려(巨勢朝臣奈氐麻呂) 또한 그 일에 대하여 증명하므로 치부에 알려서 청에 따라 고치도록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에 의하면 성천건일자는 거세남병숙녜의 장자이며 작부조신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하였고, 『신찬성씨록』에 기재된 내용과 같다. 그러나 거세조신씨의 직접적인 조상인 거세남인대신이 작부조신남인이고 이후에 거세대신을 작부대신이라고 불렀다는 내용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작부조신진인의 주장에는 거세조신보다 작부조신이 거세남병숙녜의 후예씨족 중에서 본류임을 강조하고, 거세조신의 조상으로 되어 있는 거세남인대신도 작부조신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포섭하려는 의식이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종6위하에 불과한 낮은 지위를 가진 작부조신진인의 주장을 대납언 종2위라는 고위 관인이었던 거세조신나저마려가 어떤 이유로 수용하고 증명해 주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이에 대하여 『일본서기』 계체기(繼體紀)에 보이는 허세남인(許勢男人)에 대한 전승을 거세씨(巨勢氏) 스스로도 신뢰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직목효차랑(直木孝次郞)은허세남인에 대한 전승을 믿을 수 없는 이유로 작부조신진인의 주장 속에서 허세남인이 반여옥수궁과 구금교궁의 천황, 즉 계체와 안한(安閑)의 시대에 걸쳐 대신을 지냈다고 하였으나, 『일본서기』 계체 23년(529) 9월에 허세남인이 죽었다는 사실과 모순되는 점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허세남인이 대신이 되었다는 전승은 거세씨의 계보를 수식하기 위하여 조작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허세남인이 죽었다고 하는 계체 23년 기유년이 실제로는 안한천황 2년(535)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작부조신진인이 주장하는 내용이 『일본서기』에 전하는 내용보다 더 오래된 작부씨의 가전(家傳)에 의거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성하건언숙녜(星河建彦宿禰)의 자손에 대해서는, 『기씨가첩(紀氏家牒)』에서 건언숙녜(建彦宿禰)의 아들은 거세천변숙녜(巨勢川邊宿禰)이며 경부숙녜(輕部宿禰)라고도 하는데 사는 집이 경리(輕里)의 성하(星河) 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천변숙녜의 아들은 거세천상숙녜(巨勢川上宿禰)이고 그 아들이 거세남인숙녜(巨勢男人宿禰)인데 대신에 임명되었다고 하였다.
5. 대초료존(大鷦鷯尊)
대초료존(大鷦鷯尊)은 『고사기』에 대작명(大雀命)으로 되어 있으며 난파지고진궁(難波之高津宮)에서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였다. 『일본서기』 인덕천황(仁德天皇) 즉위전기(即位前紀)에서는 대초료천황(大鷦鷯天皇)이 예전천황(譽田天皇)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중희명(仲姬命)이라고 하였다.
6. 목면거(木綿襷)
목면(木綿)은 닥나무를 삼베처럼 가공하여 천을 짠 것을 말한다. 거(襷)는 질빵이라는 뜻으로 옷소매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일본에서는 음식을 조리할 때와 맹신탐탕(盟神探湯)이라는 신판(神判)을 행할 때 사용되었다.
7. 대작신(大雀臣)
대초료존(대작명)의 명대부(名代部)인 작부(雀部)의 반조(伴造)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8. 일본기합(日本紀合)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1월 무신조에 작부신(雀部臣) 등에게 조신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기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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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부조신(雀部朝臣; 사사키베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60_0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