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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도수조신(道守朝臣; 치모리노아소미)

도수조신(道守朝臣; 치모리노아소미)
 파다조신(波多朝臣; 하타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파다시대숙녜(波多矢代宿禰; 하타노야시로노스쿠네)의 후손이다. 『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도수조신(道守朝臣)
도수(道守)라는 씨명은 지명인지 직명(職名)인지 분명하지 않다. 도수는 ‘미치모리’ 또는 ‘치모리’라고 읽으며, 일본 고대의 관직명으로는 주요 도로나 역로(驛路)를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율전관(栗田寬)은 『신찬성씨록고증(新撰姓氏錄考證)』에서 도수는 『일본서기』 신대권에 보이는 천수도(泉守道; 치모리)과 마찬가지로 ‘치모리’라고 읽어야 하며, 직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본거선장(本居宣長)은 『고사기전(古事記傳)』에서 화천국(和泉國) 대조군(大鳥郡) 계(堺) 남장(南莊)에 도수사(道守社)가 있으며, 산수(山守)·야수(野守)와 마찬가지로 도로를 지키는 자라는 의미라고 하였다.
사료상으로는 천평신호(天平神護) 2년(766) 10월 21일자 「월전국사해(越前國司解)」(『대일본고문서』 5-566, 567, 577)에 월전국(越前國) 족우군(足羽郡) 안에 도수촌(道守村)및 도수리(道守里)가 보이며 같은 해 9~10월경의 「월전국족우군사해(越前國足羽郡司解)」(동 5-546) 및 천평신호 3년(767) 3월 2일자의 「도수신식충녀해(道守臣息虫女解)」(동 5-656)에 도수장(道守莊)이라는 장원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도수남식(道守男食), 도수상족(道守床足), 도수식충녀(道守息虫女), 도수을충녀(道守乙虫女)등의 인명이 보인다. 그중 도수식충녀는 도수신식충녀(道守臣息虫女)라고도 기록하였으므로, 이들 모두가 도수신(道守臣) 일족으로 생각된다. 이들 도수신씨의 씨명은 월전국 족우군 도수촌, 즉 현재 복정현(福井縣) 복정시(福井市) 서남부 일대의 지명에 따른 것이다. 현재도 이곳에 현립 도수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도수조신(道守朝臣)의 씨명이 지명에 의거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좌경(左京) 황별(皇別)에는 또 하나의 도수조신씨가 실려 있는데, 이는 조상이 개화천황(開化天皇)의 아들인 무풍엽협별명(武豐葉頰別命; 다케토요하츠라와케노미코토)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도수조신」 조, 081). 우경 황별에 보이는 도수신도 도수조신과 조상이 같으며 풍엽협별명(豐葉頰別命; 도요하츠라와케노미코토)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산성국(山城國) 황별의 도수신 역시 도수조신과 조상이 같으며 무파도량화기명(武波都良和氣命; 다케하츠라와케)의 후손이며, 금목(今木) 역시 도수(道守)와 조상이 같은데 건풍우협별명(建豐羽頰別命; 다케토요하츠라와케노미코토)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섭진국(攝津國) 황별의 도수신 역시 도수조신과 조상이 같으며 무엽협별(武葉頰別; 다케하츠라와케)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도수신은 ‘다케토요하츠라와케’를 시조로 하는 씨족과 파다시대숙녜(波多矢代宿禰)를 시조로 하는 씨족이 있어서 어느 계통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일본서기』 천지기(天智紀)에 도수신마려(道守臣麻呂), 『속일본기』 순인기(淳仁紀)에 도수신다기류(道守臣多祁留), 환무기(桓武紀)에 도수신동인(道守臣東人) 등이 보인다. 도수신동인은 나이가 120세가 되었는데도 머리털이 여전히 많고, 귀도 소년과 같이 밝았다고 한다. 그 밖에 경국집(經國集)에 연력(延曆) 20년(801)의 문장생(文章生) 대초위하(大初位下) 도수조신궁계(道守朝臣宮繼)가 보인다. 그중 도수신마려는 천지(天智) 7년(668) 11월 을유에 견신라사(遣新羅使)로 신라에 파견되었다. 동족관계에 있는 기신(紀臣), 각신(角臣), 판본신(坂本臣) 등의 예로 보면 도수신마려는 파다시대숙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도수조신의 조상일 가능성이 있다. 도수신마려는 『파마국풍토기(播磨國風土記)』 찬곡군(讚容郡) 선인산(船引山)조에 “근강천황(近江天皇, 天智天皇) 때 도수신이 이곳의 국재(國宰)가 되어 이 산에서 관선(官船)을 만들어 끌어내렸으므로 산 이름이 선인산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 도수신이 도수신마려로 생각된다. 그가 관선을 선인산에서 만들어 끌어내렸다는 전승으로 미루어 보면, 기신(紀臣)과 동족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본조의 도수조신씨 일족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보(大寶) 연간에 찬기국수(讚岐國守)로 도수조신이 보이는데( 「萬濃池後碑銘」 『平安遺文』 金-94), 도수조신풍족(道守朝臣豐足, 천평승보 원년 8월 「경사상일장(經師上日帳)」, 『대일본고문서』 3-309), 도수조신삼호(道守朝臣三虎, 보귀 원년 9월 28일 「씨명궐공진문(氏名闕貢進文)」, 『대일본고문서』 22-215) 등의 이름이 사료에 보인다.
2. 파다조신동조(波多朝臣同祖)
팔다조신(八多朝臣)이라고도 표기하며, 우경 황별(상) 「팔다조신」 조(119)에 석천조신(石川朝臣)과 조상이 같으며 무내숙녜명(武內宿禰命)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3. 파다시대숙녜(波多矢代宿禰)
파다시대숙녜는, 『고사기』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 ‘파다팔대숙녜(波多八代宿禰)’는 파다신(波多臣), 임신(林臣), 파미신(波美臣), 성천신(星川臣), 담해신(淡海臣), 장곡부군(長谷部君)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응신(應神) 3년 시세조(是歳條)에 “백제의 진사왕(辰斯王)이 즉위하여 귀국(貴國) 천황(天皇)에게 예를 잃으므로 기각숙녜(紀角宿禰)와 우전시대숙녜(羽田矢代宿禰)를 보내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이중천황(履中天皇) 즉위전기(即位前紀)에 흑원(黑媛)이 우전시대숙녜의 딸이라고 하였다. 『신찬성씨록』하내국(河內國) 황별(皇別)의 「도수조신(道守朝臣)」 조(263), 화천국(和泉國) 황별의 「도수조신(道守朝臣)」 조(303)에 팔다팔대숙녜(八多八代宿禰), 하내국 황별의 「도수신(道守臣)」 조(263)에 파다팔대숙녜(波多八代宿禰)가 보인다. 『기씨가첩(紀氏家牒)』에는 우전팔대숙녜(羽田八代宿禰)의 아들 흑천숙녜(黑川宿禰)가 보이고, 흑천숙녜의 자손에 대해서는 『기씨가첩』에 그 아들인 우시사숙녜(羽矢師宿禰, 혹은 林宿禰)가 깃털이 셋 달린 화살을 잘 만들어서 우시사숙녜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러한 전승은 임조신(林朝臣)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어서 우시사숙녜의 아들 박뢰부숙녜(泊瀬部宿禰)가 대왜국(大倭國) 기성현(磯城縣)박뢰산(泊瀨山) 아래에 살았으므로 박뢰부숙녜라고 하였으며, 웅략천황(雄略天皇)이 박뢰산구련(泊瀬山口連)이라는 씨성을 내렸다고 하였다. 이는 『고사기』에 보이는 파다팔대숙녜(波多八代宿禰)를 시조로 하는 장곡부군(長谷部君) 및 하내국 황별의 「산구조신(山口朝臣)」 조(264)과 관련된 씨족 전승으로 생각된다.
4. 일본기합(日本紀合)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1월 무신삭에 도수신(道守臣) 등에게 조신(朝臣)이라는성을 내렸다는 기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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