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판본조신(坂本朝臣; 사카모토노아소미)

판본조신(坂本朝臣; 사카모토노아소미)
 기조신(紀朝臣; 기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기각숙녜(紀角宿禰; 기노츠노노스쿠네)의 아들 백성숙녜(白城宿禰; 시라키노스쿠네)의 후손이다.
 
【주석】
1. 판본조신(坂本朝臣)
판본(坂本)이라는 씨명은 화천국(和泉國) 화천군(和泉郡) 판본향(坂本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본향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화천시(和泉市) 판본정(阪本町)이다.
판본조신(坂本朝臣)의 원래 성은 신(臣)이고, 판본신(坂本臣)의 조상은 근신(根臣) 혹은 근사주(根使主)이다. 『일본서기』에는 안강(安康) 원년 2월 무진삭조에서 판본신의 조상인 근사주가 대박뢰황자(大泊瀬皇子)와 번사황녀(幡梭皇女)의 혼사를 주선하는 과정에서 옥으로 장식한 머리장식[珠縵]을 차지하였다는 내용이 보이고, 웅략(雄略) 14년 4월갑오삭조에는 그 사실이 발각되어 근사주가 죽임을 당하고 그 자손은 각각 대초향부(大草香部)와 모정현주(茅渟縣主)의 부낭자(負嚢者)로 삼았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리고 이때부터 근사주의 후손이 판본신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근사주의 자손이 각각 대초향부와 모정현주의 부낭자가 되었다는 내용과 모순되며, 판본신이라는 씨성을 갖게 된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판본신이 조신이라는 성을 갖게 된 사실은 『일본서기』 천무(天武) 13년(684) 11월 무신삭조에 보인다.
판본조신의 일족 중 신성(臣姓) 시대의 인물로는 판본신의 딸 감미원(甘美媛, 『일본서기』 흠명 23년 7월 是月條), 판본신강수(坂本臣糠手, 『일본서기』 숭준 즉위전기 등), 판본신재(坂本臣財, 『일본서기』 천무 원년 7월조 등) 등이 보인다.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받은 이후의 인물로는 판본조신록전(坂本朝臣鹿田, 『속일본기』 문무 원년 11월 계묘조), 판본조신아증마려(坂本朝臣阿曾麻呂, 『속일본기』경운 2년 12월 계유조 등), 판본조신우두마좌(坂本朝臣宇頭麻佐, 『속일본기』 신귀 11년 윤정월 정미조 등), 판본조신상마려(坂本朝臣上麻呂, 천평보자 2년 8월 28일자 「조동대사사해(造東大寺司解)」 4-295 등), 판본조신남족(坂本朝臣男足, 『속일본기』천평보자 8년 정월 을사조 등), 판본조신승마려(坂本朝臣繩麻呂, 『속일본기』 보귀 6년 정월 경술조 등), 판본조신대족(坂本朝臣大足, 『속일본기』 연력 3년 정월 기묘조 등), 판본조신좌다기마(坂本朝臣佐多氣麿, 『일본후기』연력 23년 10월 병오조 등), 판본조신궁계(坂本朝臣宮繼, 『유취국사』 31 行幸 홍인 14년 2월 계축조), 판본조신씨자(坂本朝臣氏子, 『일본삼대실록』 정관 1년 11월 임인조 등)가 있다.
2. 기조신동조(紀朝臣同祖)
『고사기』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 건내숙녜(建內宿禰)의 아들인 목각숙녜(木角宿禰)가 목신(木臣), 도노신(都奴臣), 판본신(坂本臣)의 조상이라고 보인다. 기조신(紀朝臣)에 대해서는 좌경 황별(상) 「기조신」 조(068) 참조.
3. 기각숙녜(紀角宿禰)
기각숙녜에 대해서는 좌경 황별(상) 「기조신」 조(068) 참조. 『고사기』 효원천황단의 목각숙녜(木角宿禰)가 판본신(坂本臣)의 조상으로 보인다.
4. 백성숙녜(白城宿禰)
화천국(和泉國) 황별(皇別)의 「판본조신(坂本朝臣)」 조에도 건내숙녜(建內宿禰)의 아들 기각숙녜의 후손이고 그 아들은 백성숙녜(白城宿禰)라고 되어 있고, 『기씨가첩(紀氏家牒)』에도 아들 백성숙녜가 나오지만,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판본조신(坂本朝臣; 사카모토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60_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