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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고교조신(高橋朝臣; 다카하시노아소미)

고교조신(高橋朝臣; 다카하시노아소미)
 아배조신(阿倍朝臣; 아헤노아소미)과 조상이 같다. 대도여명(大稻輿命; 오이나코시노미코토)의 후손이다. 경행천황(景行天皇; 게이카우텐노)이 동국(東國)을 순수(巡狩)할 때 큰 백합을 바쳤다. 이때 천황(天皇)이 조개의 형상이 특이하고 맛도 좋은 것을 기뻐하여, 선신(膳臣; 가시하데노오미)이라는 성을 내렸다. 천정중원영진인천황(天渟中原瀛眞人天皇; 아메노누나하라오키노마히토노스메라미코토)[시호는 천무(天武)이다.] 12년에 선신을 고쳐 고교조신(高橋朝臣)을 내렸다.
 
【주석】
1. 고교조신(高橋朝臣)
『일본서기』 숭신천황(崇神天皇) 8년 4월 을묘조에 보이는 고교읍(高橋邑), 무열천황(武烈天皇) 즉위전기(卽位前紀)에 보이는 타개파지(柁箇播志; 다카하시)나 『만엽집』 의 석상(石上) 포류(布流)의 고교(高橋) 등이 보인다. 이곳은 현재 나량현(奈良縣) 천리시(天理市) 역본정(櫟本町) 일대이다.
2. 대도여명(大稻輿命)
좌경 황별(상) 「완인조신(完人朝臣)」 조(056)에 보이는 언배립대도요명(彦背立大稻腰命; 히코세오이나코시노미코토), 『고사기』효원천황단(孝元天皇段)에 선신(膳臣)의 시조로보이는 비고이나허사별명(比古伊那許士別命; 히코이나코시와케노미코토)과 동일 인물이다.
3. 경행천황
수인천황(垂仁天皇)의 셋째 아들로, 12대 천황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경행천황이 재위 53년 되는 해에 자신의 아들인 소대왕(小碓王)이 평정한 곳을 살펴보고자 이세(伊勢)를 지나 동해(東海) 지역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방총반도(房總半島)에 이르러 각하조(覺賀鳥)라는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 이를 찾으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백합을 얻었고 이를 선신(膳臣)의 조상인 반록륙안(磐鹿六鴈)이 회로 만들어 바쳤다. 이에 선대반부(膳大伴部)를 하사하였다. 『신찬성씨록』에서는 선신의 시조가 대도요명(大稻腰命)이라고 하였으나,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4. 동국(東國)
대화개신(大化改新) 이전에는 후대의 동산도(東山道)와 동해도(東海道)에 속하는 여러 지역을 두루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일본서기』 경행천황 40년 시세조(是歲條)에 산동(山東)의 여러 지역을 오유국(吾嬬國; 아즈마노쿠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신농국(信濃國)과 상모국(相模國) 이동의 여러 지역이다. 율령제 시대의 동산도·동해도와는 다른 뜻이다.
5. 대합(大蛤)
백합(白蛤), 문합(文蛤), 화합(花蛤)라고도 하며, 널리 식용하는 조개류이다. 『일본서기』경행천황 53년 10월조에서는 백합(白蛤)이라고 하였고, 『고교씨문(高橋氏文)』에서는 팔척백합(八尺白蛤)이라고 하였다. 일본어로는 ‘우무기’ 혹은 ‘하마구리’라고 한다.
6. 선신(膳臣)
선신의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이중기(履中紀)의 선신여기(膳臣余磯), 웅략기(雄略紀)의 선신장야(膳臣長野) 및 선신반구(膳臣斑鳩), 안한기(安閑紀)의 선신대마려(膳臣大麻呂), 흠명기(欽明紀)의 선신파제편(膳臣巴提便) 및 선신경자(膳臣傾子), 추고기(推古紀)의 선신대반(膳臣大伴), 제명기(齊明紀)의 선신엽적(膳臣葉積), 천무기(天武紀)의 선신마루(膳臣摩漏) 등이 보인다. 선신반구는 가야 지역에 장군으로 파견되고, 선신파제편은 백제에 사신으로 파견되고, 선신경자는 고구려 사신을 접대하는 역할을 맡고, 선신대반은 가야의 사신을 맞이하는 직책에 임명되고, 선신엽적은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 선신씨 일족은 대외관계 및 의전 업무에서 빈번하게 활동하였다. 선신씨가 고교씨가 된 이후에도 고교조신립간(高橋朝臣笠間)은 견당대사(遣唐大使), 고교조신로마려(高橋朝臣老麻呂)는 견발해부사(遣渤海副使)에 임명되었고, 선신대구(膳臣大丘)는 천평(天平) 5년(753)에 당에 들어갔다.
7. 천정중원영진인천황십이년(天渟中原瀛眞人天皇十二年)
52씨족에 대하여 조신(朝臣)이라는 성을 내린 것은 천무 13년(684) 11월 무신삭(戊申朔)의 일이다. 그런데 천무 12년(683)에 선신에게 고교조신이라는 성을 내렸다고 한 것은 현재의 『신찬성씨록』 이 완본을 초록하는 과정에서 생긴 잘못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다만 조신이라는 성을 받은 씨족에 대하여 『일본서기』와 합치된다고 하는 기술이 『신찬성씨록』 의 여러 곳에 보이는데, 이곳에서 굳이 12년이라고 명기한 점에서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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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조신(高橋朝臣; 다카하시노아소미)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60_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