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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삼원조신(三原朝臣; 미하라노아소미)

삼원조신(三原朝臣; 미하라노아소미)
 천무천황(天武天皇) 황자(皇子) 1품 신전부왕(新田部王; 니히타베노미코)의 후손이다.
 
【주석】
1. 삼원조신(三原朝臣)
삼원이라는 씨명은 담로국(淡路國) 삼원군(三原郡) 삼원(三原)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삼원조신이라는 성을 받은 사람은 『일본후기』 연력 18년(799) 2월조에 보이는 삼원조신제평(三原朝臣弟平)으로 생각된다. 원래 제평(弟平; 오토히라)은 을매왕(乙枚王), 을평왕(乙平王)으로도 표기되었으며, 신전부친왕(新田部親王)의 혈통을 이은 왕족이었다. 한편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정관(貞觀) 원년(859)조에는 신전부친왕의 후손인 고원왕(高原王)에게 삼원조신이라는 성을 주었다는 기사가 보여 두 사람이 일족임을 알 수 있다.
2. 천무천황(天武天皇)
제40대 천황(재위 672~686) 으로 전하며 왕자 때 이름은 대해인(大海人)이었다. 부왕은 서명천황(舒明天皇)이고 모후는 보황녀(寶皇女, 후의 皇極天皇과 齊明天皇)이며, 왕후는 노야찬랑황녀(鸕野讚良皇女, 후의 持統天皇)이다. 왕자로는 초벽황자(草壁皇子), 고시황자(高市皇子), 사인친왕(舍人親王) 등이 있다. 형인 천지천황(天智天皇) 사후 임신의 난(672)을 통하여 왕위에 올랐으며 황족을 주요 관직에 배치한 황친정치를 시행하는 한편, 8색의 성을 정하여 신분의 서열을 명확하게 하였으며, 비조정어원령(飛鳥淨御原令)을제정하는 한편,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등원경(藤原京)의 조영과 『고사기』, 『일본서기』 의 편찬을 시작하였다.
『신찬성씨록』완본에는 천무 위에 천정중원영진인천황시(天渟中原瀛眞人天皇諡)라는 10글자가 있었고, 천무 아래의 천황이라는 글자는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 신전부왕(新田部王)
천무천황(天武天皇)의 아들(?~735)이며, 등원겸족(藤原鎌足)의 딸인 오백중낭(五百重娘)사이에 태어났다. 천무(天武), 지통(持統) 사후 황친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장옥왕(長屋王)의 변 당시 그 처리를 맡았다. 아들로는 염소왕(鹽燒王), 도조왕(道祖王), 장야왕(長野王)을 두었다. 좌경(左京) 황별(皇別) 「빙상진인(冰上眞人)」 조(02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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