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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당마진인(當麻眞人; 다기마노마히토)

당마진인(當麻眞人; 다기마노마히토)
 용명(用明; 요우메이)의 황자 마고왕(麿古王; 마로코노미코)의 후손이다. 『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당마진인(當麻眞人)
당마(當麻)는 ‘다기마’ 혹은 ‘다이마’라고 발음한다. 당마는 나량분지의 서부 이상산(二上山)의 동쪽에 위치한 당마사(當麻寺)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이곳은 나량분지와 하내(河內)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평석상(平石峠), 암교상(巖橋峠), 죽내상(竹內峠) 등의 고개가 있다. 석기의 제작에 쓰이는 사누카이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당마라는 씨명은 마고왕(麿古王)의 또 다른 이름인 당마왕에서 온 것이다. 『고사기(古事記)』 용명천황단(用明天皇段)에는 당마왕이라는 이름이 당마지창수비려(當麻之倉首比呂)의 딸 반녀(飯女)가 어머니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 마고왕(麿古王)
마고왕은 『일본서기』에 따르면 용명천황과 갈성직광자(葛城直廣子) 사이에서 마려자황자(麻呂子皇子)가 태어났으며, 당마공(當麻公)의 선조라고 하였다.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說)』에서 용명천황이 갈목당마창수비리고(葛木當麻倉首比里古)의 딸 이비고랑녀(伊比古郞女)와 혼인하여 호마려고왕(乎麻呂古王)을 낳았다고 하였다. 마고왕의 모계가 당마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당마왕이라고도 부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 추고(推古) 11년(603) 4월에서 7월에 걸쳐 당마황자(當摩皇子)가 정신라장군(征新羅將軍)에 임명되었고, 난파(難波)를 출발하여 파마(播磨)에 도착하였는데 처인 사인희왕(舍人姬王; 도네리노히메미코)이 적석(赤石)에서 죽으므로 그녀를 장사지내고 신라를 치지 않고 돌아왔다는 내용이 보인다.
3. 일본기합(日本紀合)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0월조에 기묘조에 당마공(當麻公)에게 진인(眞人)이라는 성을 내렸다는 기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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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마진인(當麻眞人; 다기마노마히토)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2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