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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삼국진인(三國眞人; 미쿠니노마히토)

삼국진인(三國眞人; 미쿠니노마히토)
 시호 계체(繼體; 게이타이)의 황자 완자왕(椀子王; 마로코노미코)의 후손이다. 『일본기(日本紀)』와 합치한다.
 
【주석】
1. 삼국(三國)
삼국(三國; 미쿠니)이라는 씨명은 『일본서기』 계체천황 즉위전기(卽位前紀)에 보이는 ‘삼국판중정(三國坂中井)’의 ‘삼국’에서 온 것이다. 고대에는 월전국(越前國) 판정군(坂井郡)에 속하였으며 현재의 복정현(福井縣) 판정시(坂井市) 삼국정(三國町)이다. 이곳은 구두룡천(九頭龍川)의 하구인 월전해안(越前海岸)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의 복정항(福井港)과 인접해 있다.
2. 삼국진인(三國眞人)
삼국진인은 좌경 황별(皇別) 「삼국진인」 조(005) 참조.
3. 시(諡)
시는 시호이며 죽은 사람에게 지어 주는 이름이라는 뜻이다. 계체(繼體) 역시 남대적천황(男大迹天皇)에 대한 중국식 시호이다. 천황에 대한 중국식 시호에 대해서는 8세기 중반에 성립된 『석일본기(釋日本紀)』에 담해삼선(淡海三船)이 신무천황(神武天皇) 때부터 일괄적으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정 시기는 762~764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752년에 편찬된 『회풍조(懐風藻)』 라는 한시집에 문무천황(文武天皇)이보이고 758년에 승보감신성무황제(勝寶感神聖武皇帝) 및 보자칭덕효겸황제(寶字稱德孝謙皇帝)라는 시호를 제정한 바 있다. 아마도 일본 조정에서 중국식 시호를 짓고자 하는 경향이 750년대부터 현저해지자, 이전의 천황들에 대해서도 중국식 시호를 일괄적으로 제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4. 계체(繼體)
완문에는 시호 앞에 ‘남대적천황(男大迹天皇)’이라는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남대적천황에 대해서는 좌경 황별 「삼국진인」 조(005) 계체 참조.
5. 완자왕(椀子王)
『일본서기』 계체(繼體) 원년 3월 계유조에는 계체의 비 삼미군견목위(三尾君堅木楲)의 딸 왜원(倭媛)이 낳은 둘째 아들 완자황자(椀子皇子) 삼국공(三國公)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6. 일본기합(日本紀合)
『일본서기』 를 말한다.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13년(684) 10월 기묘조에 삼국공 등 13씨족에게 진인(眞人)이라는 성을 주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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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진인(三國眞人; 미쿠니노마히토)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