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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감남비진인(甘南備眞人; 가무나비노마히토)

감남비진인(甘南備眞人; 가무나비노마히토)
 노진인(路眞人; 미치노마히토)과 조상이 같다. 『속일본기』와 합치한다.
 
【주석】
1. 감남비진인(甘南備眞人)
감남비(甘南備; 가무나비)라는 씨명은 『만엽집(萬葉集)』에 ‘감남비(甘南備)의 리(里)’(7-1125)라고 보이는 지명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감남비리(甘南備里)는 지금의 나량현(奈良縣)생구군(生駒郡) 삼향정(三鄕町) 신남(神南) 부근으로 추정된다.
『속일본기』 천평(天平) 12년(740) 9월 기축조에 “종5위하 신전왕(神前王)이 감남비진인 성을 받고 섭진량(攝津亮)으로 임명되었다.”라고 적고 있듯이 감남비진인은 신전왕에서 시작되었다. 감남비진인이 민달천황의 아들 난파왕(難波王)의 후손인 노진인과 같은 조상이라고 하므로, 신전왕은 난파왕의 후손이 된다. 736년에 난파왕의 4세손인 갈성왕(葛城王)이 귤숙녜제형(橘宿禰諸兄)이라는 씨성과 이름을 사여받았고, 794년에 죽은 감남비진인고직이 민달천황의 6세손, 즉 난파왕의 5세손이었다는 점을 참고한다면740년경에 감남비진인 성을 사여받은 신전왕은 난파왕의 4세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감남비진인의 일족으로는 신전(神前), 이향(伊香) 등이 있다.
2. 노진인(路眞人)
노진인은 민달천황의 황자 난파왕의 후손이다. 앞의 「노진인」 조(006) 참조. 그런데 감남비진인과 노진인이 같은 조상이라는 것은 다른 자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3. 속일본기합(續日本紀合)
『속일본기』 천평(天平) 12년 9월 기축조에서 신전왕에게 감남비진인 성을 사여하였다고 적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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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남비진인(甘南備眞人; 가무나비노마히토)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10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