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식장진인(息長眞人; 오키나가노마히토)

식장진인(息長眞人; 오키나가노마히토)
 예전천황(譽田天皇; 호무타노스메라미코토)[시호는 응신(應神; 오우진)이다.]의 황자 치정모이오왕(稚渟毛二俁王; 와카누케후타마타노미코)의 후손에서 시작되었다.
 
【주석】
1. 식장진인(息長眞人)
식장(息長; 오키나가)이라는 씨명은 식장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율령제 시대에 근강국(近江國) 판전군(坂田郡)의 지명이다. 지금의 자하현(滋賀縣 坂田郡 息長村)이다. 식장이라는 지명은 『일본서기』 천무천황(天武天皇) 원년(672) 7월 병신조에 ‘식장횡하(息長橫河)’가 처음 보인다. 이곳은 지금의 자하현 판전군 미원정(米原町) 성정(醒井) 부근이다.
『일본서기』 천무천황 13년(684) 10월 기묘삭조에서 식장공(息長公) 등 13씨가 진인을 사성받았다고 적고 있듯이 식장진인의 옛 성(姓)은 공(公)이었다. 그러나 식장공은 『일본서기』에서 황극천황(皇極天皇) 원년(642) 12월 을미조에 식장산전공(息長山田公)이 처음 보인다. 식장산전공은 서명천황(舒明天皇)의 장례에서 조사를 읽고 있다. 그 후 『일본서기』 지통천황 6년 11월 무술조와 지통천황 7년 3월 을사조에서는 직광사(直廣肆) 식장진인로(息長眞人老)가 신라에 파견되는 사신으로 물품을 사여받고 있다. 식장진인로는 지통조(持統朝)부터 원명조(元眀朝)에 걸쳐 우대변(右大辯), 병부경(兵部卿), 우경대부(右京大夫)를 역임하였다.
『고사기』에는 개화천황단(開化天皇段)의 식장숙녜왕(息長宿禰王)을 비롯하여 경행천황단(景行天皇段)의 식장전별왕(息長田別王; 오키나가타와케노키미) 등이 보인다. 식장숙녜왕은 개화천황(開化天皇)의 증손으로, 그의 딸 식장대일매명[息長帶日賣命;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 신공황후(神功皇后), 『일본서기』에서는 기장족희존(氣長足姬尊;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미코토)이라고 적고 있음]은 중애천황(仲哀天皇)의 황후가 되어 응신천황을 낳았다.
식장전별왕의 손녀 식장진약중비매(息長眞若中比賣; 오키나가마와카나카츠히메)는 응신천황의 비가 되었다. 그리고 식장진수왕(息長眞手王)은 계체천황(繼體天皇)의 8비(妃) 중의 한 명인 마적낭자(麻績娘子)와 민달천황(敏達天皇)의 황후 광희(廣姬)의 아버지이다. 특히 광희는 압판언인대형황자(押坂彦人大兄皇子)를 낳았다. 압판언인대형황자는 서명천황(舒明天皇)의 아버지이며, 천지천황(天智天皇)과 천무천황(天武天皇)의 할아버지가 된다. 서명천황의 화풍(和風) 시호는 식장족일광액(息長足日廣額; 오키나가타라시히히로누카)천황인데, 이는 식장씨가 양육한 이마가 넓은 총명한 천황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서명천황은 압판언인대형황자와 그의 배다른 여동생 강수희(糠手姬) 황녀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인데, 앞에서 언급한 서명천황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은 식장산전공이 서명천황의 양육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서명천황이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은 영유민 압판부(押坂部; 오사카베, 刑部로도 표기됨)도 식장씨가 관리하였을 것이다.
천무천황 대에 8색(色) 사성(賜姓)을 시행하면서 천무천황의 할아버지의 외가 집안이며 서명천황의 양육을 담당하였던 식장공씨에게 최고의 성인 진인(眞人) 성을 사여한 것이었다. 진인 성은 도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도교에 심취하였던 천무천황이 최고 성(姓)의 명칭으로 진인을 선택한 것이다.
식장진인씨 일족으로는 『속일본기(續日本紀)』 나 그 후의 역사서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고문서에 그 이름이 보이는데 이들은 주로 하위관료였다.
천평(天平) 19년(747) 12월 22일자 「근강국판전군사해비매매권(近江國坂田郡司解婢賣買券)」 (『대일본고문서』9-642~644)에 근강국 판전군 상단향(上丹鄕)의 호주 견정국족(堅井國足)의 호구 식장진인진야(息長眞人眞野)와 대령(大領) 정8위상 판전주인진인신량귀(坂田酒人眞人新良貴), 사사춘궁사인(寺使春宮舍人) 식장진인도녜마려(息長眞人刀禰麻呂), 증인(證人) 소초위상 식장진인인마려(息長眞人忍麻呂)가 보인다.
2. 예전천황(譽田天皇)
응신천황(應神天皇)이다.
3. 치정모이오왕(稚渟毛二俁王)
치정모이오왕(稚渟毛二俁王)은 응신천황의 황자이다.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고사기』와 『일본서기』 가 다르게 적고 있다. 『고사기』 응신천황단에서는 응신천황이 사오장일자왕(咋俁長日子王; 후타마타나가히코노오호키미)의 딸 식장진약중비매(息長眞若中比賣; 오키나가마와카나카츠히메)를 맞아 약소모이오왕(若沼毛二俁王; 와카누케후타마타노오호키미)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서기』 응신천황 2년 춘3월 경술삭 임자조에서는 하파중언(河派仲彦; 가하마타나카츠미코)의 딸로 응신천황의 비(妃)가 된 제원(弟媛; 오토히메)가 치야모이파황자(稚野毛二派皇子; 와카노케후타마타노미코)를 낳았다고 한다. 제원은 『고사기』 경행천황단(景行天皇段)에 의하면 식장전별왕(息長田別王; 오키나가타와케노키미)의 아들 익오장일자왕(杙俁長日子王; 구히마타나가히코노오호키미)의 딸로 식장진약중비매의 여동생이다.
『고사기』 응신천황단에서는 약야모이오왕(若野毛二俁王; 와카누케후타마타노오호키미)의 후손에 대해 적고 있다. 즉 약야모이오왕이 식장진약중비매의 여동생 백사목이려변(百師木伊呂辯; 모모시키이로베)과 결혼하여 낳은 의부부저왕(意富富杼王; 오호호토노오호키미)이 삼국군(三國君; 미쿠니노키미), 파다군(波多君; 하타노키미), 식장판군(息長坂君; 오키나가노사카노키미), 주인군(酒人君; 사카히토노키미), 산도군(山道君; 야마지노키미), 축자(筑紫; 쓰쿠시)의 미다군(米多君; 메타노키미), 포세군(布勢君; 후세노키미) 등의 조상이라고 적고 있다. 여기에서 식장판군으로 나와 있으나, 식장판군은 이 외의 자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식장군과 판전군으로 적어야 할 것인데 탈자가 생긴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응신천황의 아들 약야모이오왕과 의부부저왕은 『석일본기(釋日本紀)』에 인용된 『상궁기(上宮記)』에서 호부등대공왕(乎富等大公王, 계체천황)의 계보 속에 보인다. 이는 호동(湖東)과 월(越) 출신의 식장씨가 근강국(近江國)의 재지 호족인 파다씨, 판전주인씨. 산도씨, 삼국씨 등과 함께 계체천황을 옹립하는 데 가담하였을 가능성을 말해 준다.
 
*『석일본기(釋日本紀)』
현존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서기』 주석서이다. 겸창(鎌倉) 시대 말기에 복부겸방(卜部兼方)이 저술하였다. 헤이안(平安) 시대 초기부터 조정에서 실시한 『일본서기』 강독의 필기내용을 신도(神道)의 시각에서 집대성한 것이다. 『풍토기(風土記)』 등 없어진 고전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점에서 귀중하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식장진인(息長眞人; 오키나가노마히토) 자료번호 : ss.k_0001_003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