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뢰왕 유모(柳貌)가 종족인을 이끌고 내속함
영평(永平) 12년(69, 明帝) 애뢰왕 유모(柳貌)가 아들을 보내 종족인을 이끌고 내속하였다. 거기에서 읍왕(邑王)을 칭하는 사람이 77명이고, 호(戶)는 56,890, 구(口)는 553,711이었다. 서남지역은 낙양에서 7,000리 떨어져 있었는데, 현종(顯宗)은 그 지역에 애뢰(哀牢), 박남(博南) 2현을 설치하고, 익주군 서부도위(西部都尉)가 거느린 6현을 떼내어,주 001합하여 영창군(永昌郡)으로 삼았다. 비로소 박남산(博南山)
주 002과 통하고, 난창수(蘭倉水)
주 003를 건너기 시작하였는데, 다니는 사람들이 심히 힘들었다. 노랫말에 말하기를 “한의 덕이 넓어 신속(臣屬)하지 않았던 곳을 모두 열었도다. 박남산(博南山)을 넘고 난창진(蘭倉津)을 지나도다. 난창수(蘭倉水)를 건너니, 다른 지역 사람이 되어 버리는구나.”라고 하였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색인어
- 이름
- 明帝, 유모(柳貌), 현종(顯宗)
- 지명
- 낙양, 애뢰(哀牢), 박남(博南), 익주군, 영창군(永昌郡), 박남산(博南山), 난창수(蘭倉水), 한, 박남산(博南山), 난창수(蘭倉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