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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태자성

太子城山城/太子城
  • 저필자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요녕성 무순시 신빈현 하협하향 태자성촌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1,450m
입지
신빈현 하협하향 태자성촌 북측에 위치
유적개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주변 조망이 매우 좋은 독립 구릉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으로, 동벽은 단애를 이용하였고, 남, 서북벽은 석축으로 성벽을 쌓았다. 남과 북쪽에 문지가 1곳씩 확인된다. 성의 동부에는 내성이 있으며, 건물지가 6기 확인된다. 북벽에는 망대가 위치하며, 망대에는 원형 수혈이 존재한다. 서벽 위에는 돌구멍이 확인된다. 성동서 양단에는 명대에 이용된 봉화대가 있다.
유물개관
* 돌절구, 토기편, 기와편 등
참고문헌
「文物地圖集」
해설
중국 요녕성 무순시 신빈현 서남쪽 태자하 상류 오른쪽 연안에 위치한 하협하향 태자성촌 북쪽 20m의 산 위에 위치하고 있다. 요동지역 전체 지형상 이 일대는 유하(柳河), 통하(通河)-신빈, 환인(桓因)을 가르는 용강산맥(龍崗山脈)의 서남단과 요동반도를 가로지르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의 동북단이 접하는 지대로 신빈현, 본계현(本溪縣), 환인현의 경계지점이다. 이로 인해 예전부터 태자하 상류에서 신빈, 환인, 본계와 압록강 하류의 관전(寬甸)방향으로 나아가는 산간로(山間路)가 발달하였다. 태자하 상류일대는 산간지대이나 용강산맥과 천산산맥이 접경하는 골짜기를 따라 상당히 넓은 하곡평야가 발달하였는데, 태자성이 자리 잡은 지역도 산성 북쪽에는 북태자하가 동쪽으로부터 서남쪽으로 흘러나가오 있고, 소협하가 남쪽으로부터 산성 동쪽을 휘돌아 북태자하로 유입되고 있어 하천 양쪽으로 상당히 넓은 하곡평지가 발달되어 있다. 산성은 북, 동, 남 3면이 수직 절벽으로 북태자하와 소협하에 의해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지이며, 하곡평지로 뻗어 나온 산줄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태자하 주변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남쪽과 북쪽으로는 개활지, 동쪽으로는 북태자하 하곡평지가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노모저강(老母猪崗) 산줄기가 이어진다. 또한 신빈현-마가자진(馬架子鎭) 지방도로가 산성에서 노모저강 산줄기로 이어지는 산마루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다. 1980-1982년 무순지구 문물조사대가 신빈현 관내의 소자하와 부이강(富爾江) 유역의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하였으며, 1992년까지 무순시 박물관에서 3차에 걸쳐 조사를 실시하였다.
산성의 평면은 대략 타원형에 가까운 편이며, 서남-동북 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다. 성 내부의 지세는 동북과 서남 양끝이 높고 중앙부는 움푹 들어가 마치 말안장처럼 생겼다. 중앙의 움푹 들어간 곳은 남쪽과 북쪽이 높은 지세를 이룬다. 산세에 의지해 축성했는데 성벽의 전체 길이는 1,450m이다. 북벽은 280m로 북문-내성벽 북쪽 구역에 해당하며, 동벽은 길이 395m로 내성벽 북단-남단 구간에 해당하는데 활처럼 바깥쪽으로 휘어 있다. 동벽은 수직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낮게 축조하였다. 남벽은 내성벽 남단-남문 구간으로 길이는 260m이며, 서벽은 길이 490m로 남문-북문 구간으로 평면은 반원형이다. 남북으로 각 한 개씩 2개의 문이 있다. 북문 동쪽에는 치가 있는데, 성벽 밖의 돌출된 암벽을 평평하게 다듬은 것으로 남북 길이 18m, 동서 너비 10m, 높이 20m이다. 북문 서쪽의 성벽 밖에도 작은 대(臺)가 있는데 북문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동쪽의 치와 마주보게 하였다. 산성 동쪽과 서쪽 끝에 봉화대가 있는데 아래쪽은 직경 15m, 높이 4m, 위쪽의 너비는 2.5m이다. 주변에 명나라때의 청색 벽돌이 흩어져 있다. 서남단 봉화대의 경우 서벽이 봉화대 아래쪽을 둘러싸고 있으며, 봉화대 아래쪽은 직경 25m, 높이 6m, 위쪽의 직경은 4m이다. 봉화대는 돌과 흙을 섞어서 쌓았는데 외벽은 돌로 축조하였다. 서벽 봉화대 주위에 너비 2m, 깊이 0.5-1m의 참호가 둘러져 있다. 북문 안쪽 54m지점에는 돌로 축조한 직경 1.5m, 길이 0.5m의 우물이 있었는데 최근 개간하는 과정에서 메워졌다. 북벽에는 복두(覆斗) 형태의 전망대가 있다.
성의 동쪽 완만한 경사지에 남북으로 길게 성벽을 축조하여 내성을 만들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280m로 아래 부분의 너비는 2.5m, 위쪽 너비는 2m, 남은 높이는 3m이다. 성벽 아래쪽에 거대한 돌로 3-4층을 축조한 뒤 그 위에 안쪽으로 조금씩 물리면서 성벽을 쌓았으며, 평면은 대략 반원형으로 북, 동, 남 3면이 모두 수직절벽이다. 내성에도 역시 하나의 문이 있는데, 장방형의 옹성(甕城)이다. 거주지 6곳이 발견되었고 그 중 하나의 거주지는 면적이 약 12㎡이다. 성 내에서 돌절구, 붉은색과 회색의 토기조각과 새끼줄 무늬(繩紋) 붉은색 평기와(板瓦)가 출토되었다.
태자성은 내성과 외성이 성돌이나 옹성구조 등에서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에 각각 다른 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내성이 외성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내성과 외성의 축조시기와 축성 주체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갈리고 있다. 다만, 이 지역이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 압록강 중류 일대와 한군현이 있던 요동평원 사이의 중간지대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고구려에서 요동평원으로 나아가는 중요 교통로 상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북태자하 연안의 중심지역으로서 군사방어성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성 내부에 거주용 공간이 넓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성의 기능도 동시에 수행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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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자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90_003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