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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각저총

角墓/JYM0457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1935·1962-1963·1976·1997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太王鎭 果樹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집안시에서 동북방향으로 3km 떨어진 우산 기슭의 평탄한 다락밭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1937년 일본학자(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고분 내부에 두 사람이 씨름하는 벽화가 있어 각저총이라고 명명하였다. 고분은 석실봉토분으로 봉토의 지름은 15m, 높이는 4m가 넘는다. 고분은 연도와 이실, 그리고 현실로 이루어져 있다. 현실에는 석회를 바른 다음 벽화를 그렸다. 북쪽 방에는 가옥 안에 고분 주인이 앉아있는 벽화가, 동벽 벽화는 나무 아래에서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각저총은 주인공의 생활풍속을 표현하고 있다.
참고문헌
「集安高句麗墓葬」, 2007
해설
우산 남쪽 기슭의 완만한 구릉 위에 무용총과 함께 자리 잡은 고구려 석실봉토벽화분이다. 광개토왕비에서 약 1.54km 떨어져 있다. 북쪽에 무용총이 있으며, 북쪽 500m 거리에 집안과 통화를 잇는 철도가 지나간다. ‘각저총’이라는 이름은 1935년 최초 조사 당시 현실 벽에서 발견된 씨름도로 인해 붙여졌다. 1966년에 JYM0457호로 편호되었다.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보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다가 1956년 봉쇄되었고 1962년, 1963년 거듭 재조사와 무덤 수리가 행해졌다. 1976년 7월 집안현문물보관소에서 묘도, 묘문 정비, 수리를 하면서 벽화 면에서 화학적 보존처리의 일환으로 막을 입혔다. 1997년 재조사와 실측보고가 다시 이루어졌으며 2004년 7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봉분은 밑이 네모진 상태에서 위로 좁아지다가 끝이 살짝 잘린 듯이 마무리된 방대형으로 현재의 지름은 15m, 너비는 13m, 높이는 5m이다. 석실의 방향은 서쪽으로 50° 가량 기운 남향이다. 연도, 전실, 용도, 후실을 기본구조로 하는 2실묘이다. 연도의 길이는 150cm, 높이는 130cm이며, 전실의 너비는 320cm, 길이 100cm, 높이 210cm이며, 후실의 너비 320cm, 길이 320cm, 높이 340cm이다. 용도의 길이는 1.4m, 높이는 1.3m이다, 전실은 정방형인 후실과 달리 좌우 길이에 비해 앞뒤 간격이 극히 좁아 연도와 후실 사이의 좌우 측실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전실 천장은 아치형으로 휘어 들어가는 궁륭고임이고 후실 천장은 평행고임 위에 팔각고임을 얹은 평행팔각고임이다. 무덤 안의 벽과 천장에 백회를 바르고 그 위에 생활풍속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으나 벽화의 상당 부분이 습기 등의 영향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지워진 상태이다. 전실과 후실의 각 벽 구석과 벽 상단에는 기둥과 도리와 보를 그려 묘실이 목조가옥의 내부인 듯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사실상 왼칸과 오른칸으로 나뉘는 전실의 각 벽에는 한 그루씩의 커다란 나무를 그렸다. 줄기가 뻗어 올라가지 않고, 굵은 가지와 잔가지의 구별이 없으며, 가지가 뻗어나가면서 얽히는 모습이 도안적인 느낌을 준다. 자색의 도리와 보 위에는 세모꼴불꽃무늬가 장식되었다. 용도 동남벽 안쪽에는 전실 쪽을 바라보며 크게 짖고 있는 사나운 개 한 마리를 실물크기로 그렸다. 서북벽 다른 부분과 동남벽의 그림은 남아 있지 않다. 후실에는 벽면 각 제재의 위, 혹은 아래에 새구름무늬를 배치했으며 벽상단 도리와 보 위에는 세모꼴불꽃무늬를 그렸다. 동남벽에는 화면 한가운데에 커다란 나무를 그리고 그 왼편에는 부엌건물과 사람을, 오른편에는 씨름하는 역사(力士) 두 사람과 심판을 보는 노인을 묘사하였다. 짧은 바지에 샅바를 걸치고 씨름에 열중하는 두 사람 가운데 왼편의 역사는 눈이 크고 코가 높은 서역계 인물이다. 화면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동 좌우에는 한 마리씩의 곰과 호랑이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사람처럼 서 있으며, 나뭇가지 여기저기에는 검은 새가 여러 마리 앉아 있다. 후실 입구의 둘로 나뉜 서남벽 좌우에는 연리수처럼 가지가 얽힌 큰 나무가 한 그루씩 그려졌으며, 좌우로 나뉜 서남벽의 가운데 상단부는 구름무늬로 장식되었다. 동남벽에는 세 그루의 크고 작은 나무 사이로 각기 안장을 갖춘 말의 고삐를 쥔 마부 둘과 우교차(牛矯車) 한 대를 그렸다. 동북벽에는 무덤 주인부부의 가내생활도가 그려졌다. 커다란 장방 안에 정면을 향해 앉은 무덤 주인과 그를 향해 앉은 두 부인을 남녀시종이 시중드는 모습이다. 무덤 주인 부부와 남녀시종의 묘사에는 화면 안에서의 중요성, 신분과 지위에 따라 몸의 크기를 다르게 그리는 ‘대상 비중의 법칙’이 적용되었다. 천장고임에는 해와 달, 여러 개의 별자리를 그렸으며, 별자리 이외의 공간은 넝쿨형 무늬로 장식하였다. 해는 붉은 원안의 검은 세발까마귀로, 달은 노란 원안의 두꺼비로 나타냈다. 각저총 벽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전실에서 후실 서남벽까지의 벽화 제재인 벽면 크기 나무는 죽은 자가 가는 세계의 본질을 상징한다. 죽은 자는 ‘생명의 출발점’이자 ‘조상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세계는 용도의 사나운 개에 의해 지켜지는 아무나 통과할 수 없는 세계이다. 후실 동남벽의 말과 마부, 우교차는 죽은 자가 새로운 삶터를 향해 길고 오랜 여행을 했음을 보여주며, 후실 서북벽의 씨름도는 내세의 입구에서 일정한 통과의례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후실 동북벽의 가내생활도는 죽은 자의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의 모습이며, 해, 달, 별자리, 넝쿨형 무늬로 장식된 후실 천장부는 새로운 세계의 하늘이다. 천장의 연꽃은 이 새로운 세계, 곧 죽은 자가 되돌아가는 ‘조상의 세계’가 불교와 관련 있는 세계로 인식되고 있었을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벽화의 모든 제재는 궁극적으로 후실 안벽인 동북벽을 향하고 있으며, 무덤 주인 부부의 가내생활도는 그 귀결점이다. 각저총은 석실묘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의 무덤에서 자주 발견되는 궁륭고임식 천장구조를 전실에 적용하고 있으며, 묘실 안이 목조건물의 내부처럼 보이게 장식하였다. 전형적인 생활풍속을 벽화의 주제로 삼고 있는 반면, 5세기에 이르면 구체화되는 측실의 소멸과 무덤주인 표현의 후실 안벽(동북벽)으로의 이동, 후실 천장구조에는 평행고임이 쓰이고, 부분적으로 변형삼각고임방식이 도입된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각저총 축조는 5세기 전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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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저총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