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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칠성산211호묘

七星山0211號墓/JQM0211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1970년대·1980년대·2003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통구촌 서북쪽 파상 대지 위에 위치한다. 서북쪽으로는 칠성산이 있다.
유적개관
칠성산묘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분으로, 남변의 길이가 58m, 동변의 폭은 66m, 동쪽 모서리의 높이는 14.52m이다. 고분은 계단적석총으로, 이른 시기에 이미 대규모 도굴을 당하였다. 고분의 북쪽 12m 지점에 기존에 JQM0212호묘로 명명된 방형 적석(길이 45m, 폭 9m)이 제대일 가능성이 있다.
유물개관
* 도금장신구(보요, 수식 등), 동기(못), 철기(찰갑편, 못), 마노 구슬, 진대 청자, 시유 도기, 회색 기와(암키와-승문, 지압문 등, 수키와)
참고문헌
「集安高句麗王陵」, 2004
해설
칠성산고분군 최남단에 위치한다. 통구촌(通溝村) 6조(組) 서북측,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산 언덕에 입지한다. 1966년 길림성박물관과 집안현문물보관소의 조사시에 JQM0211호로 편호되었다. 칠성산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덤이다. 동으로 집안시 중심가가 1km 거리에 있다. 집안과 단동을 잇는 도로가 동남쪽 100m 거리에서 동북-서남방향으로 지나간다. 동남쪽 약 1.2km 거리에 압록강이 흐르고, 동북에서 통구하가 흘러와 동남에서 압록강과 합류한다. 서북은 칠성산으로 이어진다. 주변에 다른 무덤이 없고 규모나 입지가 탁월한 점에 근거하여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집안현문물보관소에 의해 수차례 조사가 이루어졌다. 1997년 조사시에 왕릉급 무덤으로 분류하였고, 2003년에 100여건의 금속기를 발견하였다. 무덤의 비고차는 7m이다. 평면이 방형인 계단적석총이다. 동쪽 변은 길이 66m, 남쪽 변은 길이 58m이다. 계단은 일부 다듬은 자연석재를 쌓아 만들었고 내부에는 깬 산돌을 채워 넣었다. 무던 상부 중앙에 석곽이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훼손되어 확인할 수 없다. 무덤의 천장석으로 추정할 만한 석재가 보이지 않으므로 매장주체부는 석실이라기보다는 석곽으로 추정된다. 현재 3단의 계단이 남아 있다. 무덤 북쪽 12m 지점에 장방형의 돌무지가 있는데 규모는 길이 45m, 너비 9m이다. 무덤인지 제대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제대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물은 주로 무덤의 서쪽 기단석 틈에서 발굴되었다. 동제품, 금동제품, 철제품이 있다. 금동제품 가운데는 구슬이 달린 4엽의 투조장식판 2점이 주목되는데 각 엽에는 좌우 대칭의 엽문이 투조되어 있다. 그 외에 T자문이 투조된 금동판과 귀걸이로 보이는 엽형 장식도 있다. 동제 장막고정용 고리, 마노구슬, 철과 동제 못, 철제 갑옷 편, 기와편, 동진(東晉)의 자기편과 시유도기편이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무덤의 구조와 유물로 보아 이 무덤의 축조연대를 3세기 후반으로 보았으며 특히 무덤 중간부가 훼손된 것은 296년 모용외 군대의 고구려 침입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면서 무덤의 주인공을 292년 사망한 고구려 13대 서천왕이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왕실에서 적에 의해 훼손된 선대왕의 무덤을 그대로 두었을 리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서천왕릉으로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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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산211호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