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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대고려묘자고분군

大高麗墓溝墓群/大高力墓子古墳群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1917·1962·1983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유림진(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楡林鎭)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규모
남북: 110m, 동서: 680m
입지
유수림하 좌측 연안의 고려묘자구(계곡) 남쪽 비탈에서 뻗어나온 대지 위에 위치
유적개관
1917년 관야정이 고분군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1964년 조사 당시에는 고분이 113기 확인되었다. 1983년 재조사시에는 59기만이 남아있음을 확인하였다. 고분은 무기단적석총, 기단적석총, 계단적석총, 석실봉토분 등으로 구분된다.
참고문헌
「集安高句麗墓葬」, 2007
해설
집안시 서남쪽 45km에 있는 유림하(楡林河) 좌안, 고려묘자구문(高麗墓子溝門)의 남쪽 언덕 대지에 위치한다. 서북으로 유림진 대전자촌(大甸子村)과 700m 거리에 있고 동쪽으로는 노령(老嶺)산맥의 유림령(楡林嶺)에 의지한다. 고려묘자구 안쪽에서 흘러나온 작은 개울이 서북에서 유림하와 합류하여 남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고분군은 길이 680m, 너비 110m로 좁고 길며, 적석총과 봉토분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고분군이다. 고분은 강이 있는 동남쪽에서부터 산이 있는 서북쪽으로 가면서 분포하는데, 서북쪽 산기슭으로 고분의 분포 밀도가 떨어진다. 적석총은 고분군의 북쪽 산기슭 쪽에 분포하며, 봉토분은 고분군의 중앙에 분포하며, 현재는 왕복 2차선 도로가 고분군의 일부를 통과하여서 고분 일부가 잘려나간 상태이다. 1917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에 의한 조사 당시 118개의 고분이 확인되었지만, 파괴된 고분 위에 주민들이 돌을 올려놓은 점으로 보아서 원래에는 더 많은 고분이 있었을 것이다. 1917년 조사된 이래 1962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 조사하였는데, 1962년 4월 길림성박물관의 조사에서는 113기의 고분을 발견하였으며, 적석총과 봉토분이 혼재한 양상을 확인하였다. 그 중 적석총의 규모가 비교적 커서 한 변 길이가 7~8m 정도였고 봉토분은 그에 비해 작아서 한 변 길이 5m 정도이다. 반면 1983년 집안문물보사대의 조사 당시에는 보존이 양호한 고분은 59기에 불과하다. 적석총은 간단한 형태의 무기단에서부터 기단, 계단적석총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가 있으며, 돌로 널방을 만든 기단, 계단적석총도 있다. 봉토분 중에는 하나의 분구에 널방이 두 개 이상의 무덤도 있다. 간단한 형태의 적석총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6호분만이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간단한 형태의 무기단적석총 중 45호분처럼 널방을 가진 무덤이 있는데, 널방은 두 개가 있는 것이 많다. 기단을 두른 적석총은 한 변 길이 6~11m 정도의 크기이며, 그 중 47호분은 널방이 있는 기단적석총이다. 계단적석총은 기단적석총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크다. 봉토분은 한 변 길이 4~8m 정도이며, 23기가 확인되었다.
이처럼 대고려묘구 고분군은 간단한 형태의 적석총에서부터 돌로 만든 널방을 가진 봉토분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식의 무덤이 함께 하고 있어서 장기간에 걸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널방을 가진 무기단적석총과 봉토분은 분구를 쌓은 재질에서 차이가 있을 뿐 널방의 구조는 서로 유사하므로, 적석총에서 봉토분으로 고분이 변화하였음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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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려묘자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