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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산성하1411호묘

山城下1411號墓/JSM1411
  • 저필자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산성하고분군의 서쪽 모서리, 충적평지
유적개관
석실봉토분으로 쌍실묘이다. 절첨방추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13.6m, 높이는 4m이다. 봉분의 동쪽 측면 북부에 봉분에 잇대어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비석은 고분의 꼭대기에 있다가 미끄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석의 형태는 팔각추로 총 높이는 1.16m이다. 비신에는 글자를 새긴 흔적은 없다.
참고문헌
「集安高句麗墓葬」, 2007
해설
산성하 1411호묘는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산성하 고분군에 속한 무덤이다. 산성하 고분군의 서북 모서리에 위치한다. 산성하 고분군은 남쪽으로 집안현성과 약 2.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산성하 1411호묘의 동남 100~150m 범위 내에는 형총, 제종, 절천정총, 귀갑총 들이 자리하고 있다. 무덤의 형식은 돌방봉토무덤(石室封土墳)인데 무덤에는 2개의 널방이 동서로 놓여 있다. 각각 무덤문과 널길이 있다. 평면은 직사각형이고 길이는 18m, 높이는 7m이다.
동쪽 널방은 일찍부터 열려 있었다고 한다. 서쪽 널방 역시 널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에 빗물에 침식되었고, 현재는 봉토에 막혀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쪽 널방은 아직 정리되지 않아 구조가 확실하지 않다. 동쪽 널방은 커다란 돌로 만들었는데 돌은 거칠게 가공된 상태였고, 틈에는 백회를 발랐다. 방의 모양은 직사각 형태이다. 벽은 안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위에는 4층의 평행 고임식 천정을 만들었다. 동쪽 널방에는 어떤 유물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무덤의 문은 남벽 중앙에 만들었는데 정연한 돌을 사용하였다. 널길은 높이 1.6m, 너비 1.2m, 세로길이는 2.06m이다. 양 벽에는 대충 다듬은 자연돌로 만들었고 천정에는 2개의 큰 돌판이 덮혀 있다.
특이한 점은 무덤의 바깥에 석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돌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있고, 바닥부분은 흘러내린 흙에 묻혔다. 발견된 형태를 보면 이 석비는 위치가 옮겨진 것이 확실하다. 원래 무덤의 정상에 세워졌을 가능성도 있다. 석비는 화강암이며 위는 정교하고 아래는 거칠게 다듬었는데 팔각기둥 모양이다. 석비의 정상부는 무딘 팔각원추 모양을 다듬었다. 원기둥 8면의 길이는 고르지 않지만 모서리는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았다.
고분은 통구 고분군 가운데서는 대체로 상중등급의 크기에 해당하며 거칠게 축조된 것으로 보아 고구려 중소귀족의 무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동쪽 널방을 통해 볼 때 통구 고분군의 고구려 무덤 형식 순서상으로 약 5세기 중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석비의 경우는 우산하 1080호묘에서도 확인된다. 석비가 무덤의 꼭대기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는 광개토대왕릉비의 “묘상입비(墓上立碑)” 기록에서 확인된다. 묘 위에 비석을 세우는 풍속은 고구려에서 5세기 중후기에 시작되어 왕의 무덤뿐만 아니라 중소 귀족의 무덤까지 확대되어 6세기까지 이어진다. 산성하 1411호묘와 우산하 1080호묘의 석비는 광개토대왕릉비처럼 글씨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성격을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릉비와 비슷한 종류라고 한다면 그 예로 보아서는 무덤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산성하 1411호와 우산하 1080호묘는 광개토대왕릉의 경우처럼 묘상입비의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무덤이 만들어지는 시기 역시 광개토대왕릉비의 연대인 4세기말~5세기 초보다 조금 늦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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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하1411호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