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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용담산성

龍潭山城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1960·2011
  • 시대
    고구려/발해/요금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길림시 용담산공원(吉林省 吉林市 龍潭區)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2,396m
입지
해발 388.2m 높이의 용담산에 위치하는데 부근의 지면보다 100m 정도 높다. 산의 동면과 남면은 기복이 심한 산줄기이며, 산의 서면에는 송화강 이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흘러간다. 산의 서남쪽은 동단산에 잇닿아 있다.
유적개관
현재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을 주요 내용으로 유적공원을 재단장하고 있으며, 한나라풍의 박물관을 건축하고 있다. 발해 대조영이 당나라의 책봉을 받는 상도 한편에 건립되어 있다. 성벽은 주로 토석혼축이나 일부 토축(판축)된 곳도 있으며, 석축 성벽도 존재한다. 가장 높은 성벽은 10m이며, 기단 폭은 3~10m, 상부 폭은 1~2m이다. 각루 4곳, 문지 3곳, 큰 연못(수뢰, 용담), 저장시설(한뢰)이 있다.
유물개관
연화문와당, 토기, 철솥 등
참고문헌
「北方文物」1986-4
해설
용담산성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 동쪽 7km에 있는 해발 388.2m, 주변 지면보다는 100m 정도 높이의 용담산에 위치한다. 산의 동면과 남면은 기복이 심한 산등성이이며 산의 서면에는 송화강이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쪽에는 동단산성(東團山城)이, 서북쪽에는 삼도령자산성(三道嶺子山城)이 있다. 산성은 일제강점기부터 여러 차례 답사가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는 1960년대 길림성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2011년에는 ‘용담산 개발 건설 공정’에 앞서 시행된 산성 초입부의 공원 부지에 대한 시굴조사(試掘調査)에서 부여 및 고구려 시기의 유물이 혼재되어 출토되었다고 한다.
용담산은 화분형으로 생겼는데 중간은 깊은 골짜기이다. 산정(山頂)은 남쪽 끝에 배치되고, 서북쪽으로 2개의 계곡을 포함한다. 성벽은 주위의 산등성이 위에 쌓았는데, 둘레의 길이가 2,936m이며 기저부의 폭은 3~10m, 상단부 너비는 1~2m이다. 잘 남아 있는 성벽은 10m, 낮은 곳은 2m 이하이다. 대부분은 진흙과 자갈로 섞어 축조하였는데, 흙만을 다져서 쌓은 곳과 석축 성벽도 일부 있다. 서북쪽의 곡부(谷部)에 각각 문지(門址)가 있으며, 북문·서문이라고 한다. 서문이 정문으로 폭 24m이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큰 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서남쪽 안부(鞍部)에는 남문이 있다. 성벽 네 모서리의 튀어나온 부분에 평대(平臺)가 축조되어 있는데 그 중 남쪽 평대의 지세가 가장 높아 속칭 ‘남천문(南天門)’이라고 불린다. 이 주변에 고구려의 적갈색 승문(繩文) 기와가 흩어져 있어, 당시 각루(角樓)와 같은 기와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문으로 성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동쪽, 산성 안 북부 지역의 낮게 움푹하게 들어간 지역에 저수시설이 보존되어 있는데, ‘용담(龍潭)’ 혹은 ‘수뢰(水牢)’라 불린다. 용담은 ‘凸’자형으로 동서의 길이가 52.9m이고 남북 폭이 25.75m이다. 돌출 부분은 길이 14.6m, 폭 2.05m이며 깊이는 9.08m이다. 연못의 각 벽은 돌을 다듬어 3단의 계단식으로 축조하였다. 그 북벽 동단의 상단에서 1m 밑에 배수로가 있고 성벽 밑을 통과해 성 밖으로 통한다. 따라서 이 용담은 산성과 동일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저수시설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 산성 안의 서남쪽 산등성이 부근에 ‘한뢰(旱牢)’라고 불리는 석축구조물이 있는데 원통 모양의 우물처럼 파고 긴 네모꼴의 돌로 쌓았다. 이 한뢰는 양식을 저장하는 곳으로 추정된다. 평면 원형으로 지름 10.6m, 깊이는 2~3m이다. 용담산성 안에서는 고구려의 기와 이외에도 고구려보다 이른 시기의 돌칼, 돌도끼 등 청동기시대 유물들 및 고구려보다 늦은 발해 시기의 기와는 물론 못 안에서는 철과(鐵鍋, 철제 솥)와 철부(鐵斧, 철제 도끼) 등 요와 금 시기의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고 있어 이곳이 오랜 시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대(漢代) 유물을 근거로 용담산성을 부여의 전기 도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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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담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10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