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영토해양국제사법판결선집

15. 역사적 사실들

15. 역사적 사실들.

또한, 대륙 근접성 기준은 완전히 합리적이다. 왜 그것이 채택되었는지 혹은 왜 그것이 일정한 수준까지 우위를 차지하였는지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추상적인 이론적 경향 혹은 선호되는 이론의 결과는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들과 무력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다. 영국인들은 대륙 Normandy와 대서양 상의 섬들을 상실한 후에, 그 자신의 영역방위라는 이해관계 때문에 Channel Islands를 보유하여야만 했다. 1066년 Normandy에 의한 정복은 경고였다. 영국은 이에 더 나아가 15세기까지 Aquitaine을 보유하고, 대륙 Normandy를 재정복하려고 하면서 같은 시기에 최소한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30년 이상 그것을 점령하였다. 영국이 항상 Channel Islands에 대하여 가장 큰 이해관계를 보여준 것은 확실하다. 영국의 법률고문은 -다툼이 없었던 사실- 1204년 이래 이러한 섬들은 봉토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두개의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왕의 행정관리인 관리인(Warden)에 의하여 통치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예외 중의 하나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1254년 후에 Edward 1세가 된 영국왕의 아들에게 봉토가 수여되었기 때문이다(1953년 9월 21일 구두 변론; 1204년부터 1373년까지의 관리인 명부, 영국 준비서면 부속서 A 158). 1226년 영국왕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효력이 있는 Channel Islands의 자치성을 선포하였으며 그들에게 자유헌장(charter of liberties)을 수여하였다(준비서면, para. 26). 섬들의 자치성은 군도의 자연적 단일성에 대한 정치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 단일성은 Louis 11세와 교황 Sixtus 4세에 의하여 행하여진 섬들의 중립선언에 의하여 이미 인정되었다.
영국민의 군사적 승리와 해군력은 이 섬들에 대한 일반적 지배를 확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Channel Islands에 대하여 중요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바다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하며 모든 주된 섬들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이 특별한 이유없이 EcrehosMinquiers를 정복하여 보유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프랑스에게 남겨주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영국 정책의 원칙이 문제되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영국을 분리하는 바다에 대한 영유를 주장하였다(Calvo, Droit international public, ed. 1896, I, pp. 473-476). 이 원칙은 거부되었고(구두 변론), 프랑스는 “해협이 영국해협(British Channel)으로 불려지는데 대하여” 반대하였다. 이것은 진실이고 아직까지 프랑스인들은 계속하여 Channel Islands를 “Anglo-Norman islands” 그리고 심지어 “English islands”라고 부른다.

색인어
지명
Channel Islands, Channel Islands, Channel Islands, Channel Islands, Ecrehos, Minquiers, Channel Islands, Anglo-Norman islands, English islands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15. 역사적 사실들 자료번호 : nj.d_0001_0040_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