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부젠이 쓰시마노카미에게 올 수 있도록 국사(國師)에게 부탁한 일

一 (右同) 동 28일 젠테이 국사(善貞國師)에게 가서, 부젠이 사과한 것을 쓰시마노카미가 이해했으니 죄송하지만 국사(國師)께서 부젠을 불러 쓰시마노카미님에게 와 주십사 말씀드렸다. 그 때 국사가 말씀하시기를, “결국 그렇게 되었는가. 젠테이는 십(十) 중 육(六)은 부젠을 편들고, 사(四)는 쓰시마노카미님과 같은 마음이다. 쓰시마노카미의 주장과 부젠의 주장을 듣고 보니 쓰시마노카미의 말씀이 맞다. 이런 일을 은밀히 해서는 안되니 오이노카미(大炊頭)님에게 가서 부젠이 조목조목 도리에 어긋난 주장을 하며 이후에도 그러할 거라고 전해야 한다. 그렇게 알고 계시십시오.”라 하고, 그 후 쓰시마노카미에게 부젠을 데리고 가야한다고 지시하셨다. 마쓰오 시치에몬이 말하기를, “쓰시마노카미께서 쓰시마에서 명하시기를 1,000石의 영지를 거두겠다고 하시며, 명을 받들겠다는 문서는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건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일을 부젠에게서 듣지 못하여 내가 명을 받들겠다는 문서를 만들 수 없었다.”고 했다. 이것이 쓰시마노카미의 무리한 처사라는 것을, 호리 시키베(堀式部)님주 001
각주 001)
호리 나오유키(堀直之) 1584~1642. 당시 에도마치부교(江戶町奉行).
닫기
·젠테이(善貞) 두 사람을 통해 이나바 단고(稻叶丹後)님주 002
각주 002)
이나바 마사카쓰(稻叶正勝). 당시 로주. 어머니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유모였던 가쓰가노 쓰보네(春日局)로 이에미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닫기
·사카이 사누키(酒井讚岐)님주 003
각주 003)
사카이 다다카쓰(酒井忠勝). 당시 로주.
닫기
께 말씀드렸는데, 그 후 이 일에 관해 오이(大炊)님·도도 이즈미(藤堂和泉)님주 004
각주 004)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도자마 다이묘(外樣大名)이지만 에도시대에는 후다이(譜代)격으로 취급받았다.
닫기
께서 나의 주장을 들으시고는 부젠의 주장은 하나하나 다 도리에 어긋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시치에몬이 전해 듣고서 부젠이 이쪽에 사과를 한 후, 시치에몬이 말을 바꾸어 “1,000石은 쇼군으로 부터 받은 것은 아니라 요시토시(義智)님이 시모쓰케(下野)에게 주신 영지이므로 그대로 명을 받들라고 하시니, 끝내는 [1,000石을] 거두어 가시는구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발언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을 바꾸었다. 이상.

  • 각주 001)
    호리 나오유키(堀直之) 1584~1642. 당시 에도마치부교(江戶町奉行). 바로가기
  • 각주 002)
    이나바 마사카쓰(稻叶正勝). 당시 로주. 어머니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유모였던 가쓰가노 쓰보네(春日局)로 이에미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사카이 다다카쓰(酒井忠勝). 당시 로주. 바로가기
  • 각주 004)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도자마 다이묘(外樣大名)이지만 에도시대에는 후다이(譜代)격으로 취급받았다.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부젠이 쓰시마노카미에게 올 수 있도록 국사(國師)에게 부탁한 일 자료번호 : kn.k_0001_0030_0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