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성씨록(姓氏錄)』 에 이르기를, 제복(弟腹; 오토노하라)의...]

『성씨록(姓氏錄)』 에 이르기를, 제복(弟腹; 오토노하라)의 이파기(爾波伎; 니하키)는 산구숙녜(山口宿禰; 야마구치노스쿠네), 문산구기촌(文山口忌寸; 후미노야마구치노이미키), 앵정숙녜(櫻井宿禰; 사쿠라위노스쿠네), 조기촌(調忌寸; 츠키노이미키), 곡기촌(谷忌寸; 하자마노이미키), 문숙녜(文宿禰; 후미노스쿠네), 문기촌(文忌寸; 후미노이미키) 및 대화국(大和國) 길야군(吉野郡)의 문기촌(文忌寸), 기이국(紀伊國) 이도군(伊都郡)의 문기촌(文忌寸), 문지변기촌(文池邊忌寸; 후미노이케노베노이미키) 등 8성의 조상이다.
 
【주석】
1. 성씨록왈(姓氏錄曰)
이 일문은 〈판상계도(坂上系圖)〉 이파기직(爾波伎直)조에 인용된 것으로, 제23권 우경 제번(상)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 조의 일문이다. 현재의 초략본에는 후한(後漢) 영제(靈帝)의 아들 연왕(延王)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2. 제복이파기(弟腹爾波伎)
제복에 대해서는 [일문11] 제복(弟腹) 항목 참조. 이파기에 대해서는 같은 조의 이파기직(爾波伎直) 항목 참조.
3. 산구숙녜(山口宿禰)
산구(山口)라는 씨명은, 장곡산구(長谷山口, 『古事記』 雄略天皇段), 장곡산구신(長谷山口神, 天平 2년 12월 20일부 「大倭國正稅帳」)의 산구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산구는 대화국(大和國) 성상군(城上郡) 장곡향(長谷鄕), 즉 지금의 나량현(奈良縣)앵정시(櫻井市) 초뢰(初瀬) 일대의 지명이다.
산구숙녜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상) 「산구숙녜(山口宿禰)」 조 참조. 해당 조에서는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으며, 도하직(都賀直)의 4세손인 도황직(都黄直)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4. 문산구기촌(文山口忌寸)
문산구(文山口)라는 씨명 중 문(文)은 문한과 관련되었음을 나타내고, 산구(山口)는 장곡(長谷)의 산구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문산구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문산구기촌공마려(文山口忌寸公麻呂, 『속일본기』 寶龜 3년 4월 경오조)가 있다. 그는 신호(神護) 원년에 대화국(大和國) 고시군(高市郡)의 대령(大領)으로 임명되었다.
5. 앵정숙녜(櫻井宿禰)
앵정(櫻井)이라는 씨명은 대화국(大和國) 십시군(十市郡) 앵정읍(櫻井邑), 즉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앵정시(櫻井市) 앵정(櫻井)이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앵정숙녜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상) 「앵정숙녜(櫻井宿禰)」 조(820) 참조. 해당 조에서는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으며 도하직(都賀直)의 4세손인 동인직(東人直)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6. 조기촌(調忌寸)
조(調)라는 씨명은, 조(調)의 징수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조기촌(調忌寸)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조기촌로인(調忌寸老人, 『일본서기』 持統天皇 3년 6월 癸未條 등), 조기촌고마려(調忌寸古麻呂, 『속일본기』 養老 5년 정월 갑술조), 조기촌가주(調忌寸家主, 延曆 2년 정월 20일부 「僧最澄度緣」 『平安遺文』 8-3188)가 있다.
조기촌로인은 지통(持通) 3년(695)에 거세조신다익수(巨勢朝臣多益須)와 함께 찬선언사(撰善言司)의 관원으로 임명되었고(『일본서기』持統天皇 3년 6월 계미조), 문무(文武)4년에는 율령을 찬정(撰定)한 공로로 종5위하에서 정5위상에 추증되었고(『속일본기』 大寶 원년 8월 신유조), 대보 3년에는 조기촌로인의 아들이 논 10정과 봉호(封戶) 100호를 받게 되었다(『속일본기』 大寶 3년 2월 정미조). 『회풍조(懷風藻)』 에는 정5위하 대학두(大學頭) 조기촌로인이 지은 시 1수가 전한다.
조기촌고마려는 양로(養老) 5년(721)에 관인 중에서 학업에 우수하고 스승이 될 만한 자를 뽑을 때 명경박사(明經博士)로 박탈되었다(『속일본기』 養老 5년 정월 갑술조). 『회풍조(懷風藻)』 에도 황태자학사(皇太子學士) 정6위상 조기촌고마려가 장옥왕의 저택에서 신라의 사신을 위하여 연회를 열었을 때 지은 시 1수가 전한다.
연력(延曆) 4년(785)에 판상(坂上) 등 기촌을 성으로 하는 11씨족 16인이 숙녜(宿禰)라는 성을 받았는데, 이때 숙녜 성을 받은 것은 조기촌씨의 본계로 생각된다(『속일본기』延曆 4년 6월 계유조).
7. 곡기촌(谷忌寸)
곡(谷, 하자마)이라는 씨명은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고시군(高市郡) 명일향촌(明日香村)의 곡(谷)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서기』 에 의하면 소아하이(蘇我蝦夷)와 그 아들 입록(入鹿)이 감도강(甘檮岡)에 나란히 집을 짓고 대신의 집을 상궁문(上宮門)이라 하고 입록의 집을 곡궁문(谷宮門)이라고 하였다(『일본서기』 皇極 3년 11월조). 이때 곡궁문의 곡을 파좌마(波佐麻; 하자마)라고 한다고 하였으므로, 곡은 ‘다니’가 아니라 ‘하자마’라고 볼 수 있다.
곡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곡기촌가도자(谷忌寸家刀自, 『日本後紀』 延曆 18년 정월 정사조), 곡기촌야주(谷忌寸野主, 『日本後紀』 大同 3년 5월 을미조)가 있다. 곡기촌씨는 천안(天安) 원년에 민기촌(民忌寸)을 비롯한 59씨와 함께 기촌을 이미길(伊美吉)로 표기하게 되었다(『日本文德天皇實錄』 天安 원년 정월 경신조).
8. 문숙녜(文宿禰)
문(文; 후미)이라는 씨명은 서(書; 후미)라고도 표기하며, 문한과 관련된 직능을 뜻한다. 다만 왕인(王仁)의 후예씨족인 문숙녜(文宿禰)와는 별개의 씨족이다.
문숙녜의 원래 성은 직(直)이었고 연(連)을 거쳐 기촌(忌寸)으로 바뀌었다. 천무(天武) 10년(681)에 서직지덕(書直智德)이 연(連)이라는 성을 받았고(『일본서기』 天武 10년 12월 계사조), 다시 천무 14년(685)에 기촌(忌寸)이라는 성을 받았다(『일본서기』 天武 14년 6월 갑오조). 연력(延曆) 4년에는 기촌이라는 성을 가진 11씨족 16인이 숙녜(宿禰)라는 성을 받았다(『속일본기』 延曆 4년 6월 계유조).
9. 문기촌(文忌寸)
문(文)이라는 씨명은, 문한과 관련된 직능을 뜻한다.
문기촌씨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상) 「문기촌(文忌寸)」 조 참조. 해당 조에서는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으며 도하직(都賀直)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10. 대화국길야군문기촌(大和國吉野郡文忌寸)
대화국 길야군, 즉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길야군(吉野郡)을 거주지로 하는 문기촌씨는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문기촌씨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상) 「문기촌(文忌寸)」 조(822) 참조.
11. 기이국이도군문기촌(紀伊國伊都郡文忌寸)
기이국 이도군, 즉 현재의 화가산현(和歌山縣) 이도군(伊都郡)을 거주지로 하는 문기촌씨는 문기촌재만(文忌寸材滿, 『住吉大社神代記』紀伊國 伊都郡 丹生川上社條), 문기촌(文忌寸, 『日本靈異記』 中-11 등), 문이미길금웅(文伊美吉今雄, 延喜 11년 3월 23일부 「平田福刀自子家地充文案」 『平安遺文』 1-317), 문이미길(文伊美吉, 上同, 『平安遺文』 1-317)등이 있다.
문기촌재만(文忌寸材滿)은, 『주길대사신대기(住吉大社神代記)』 에 의하면 기이국(紀伊國) 이도군(伊都郡) 단생천상사(丹生川上社)는 독(毒)이 9개 지역에 퍼졌을 때 문기촌재만이 이 신사에 제사를 지냈고 자손들이 이어받아 씨신(氏神)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독은 역병(疫病)이라는 뜻이며, 경운(慶雲) 3년(706)에 경기(京畿) 및 기이(紀伊)·인번(因幡)·삼하(參河)·준하(駿河) 등에 역병이 들자 의약을 지급하여 치료하였다(『속일본기』慶雲 3년 윤정월 경술조)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문기촌(文忌寸,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자는 上田三郞)에 대해서는,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 에 승려에게 나쁜 욕을 하다가 개미에 물려 죽은 인물로 보인다. 성무천황(聖武天皇) 때 기이국(紀伊國) 이도군(伊刀郡) 상원(桑原)의 협옥사(狹屋寺) 비구니 등이 발원하여 나량(奈良) 우경(右京) 약사사(藥師寺)의 승려 제혜선사(題惠禪師, 자는 依網禪師)를 청하여 11면관세음보살을 받들며 회과(悔過)하였다. 이때 문기촌의 처 상모야공대의(上毛野公大椅)의 딸도 그 행사에 참여하였는데, 선사가 불법을 믿지 않는 문기촌을 교화하려고 하였으나 듣지 않고 승려에게 심한 욕을 하다가 개미에 물려 죽었다고 한다(『일본영이기』 중권). 문기촌에 관한 이 이야기는 『금석물어집(今昔物語集)』 에도 전한다.
또한 문이미길금웅(文伊美吉今雄) 및 이름을 알 수 없는 3명의 문이미길(文伊美吉)이 연희(延喜) 11년의 「평전복도자자가지충문안(平田福刀自子家地充文案)에 전한다(延喜 11년 3월 23일부 「平田福刀自子家地充文案」, 『平安遺文』 1-316~7). 이 문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택지를 평전숙녜복도자자가 조카인 평전숙녜고웅(平田宿禰高雄)에게 양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서에 이도군의 군사(郡司)들이 서명하였는데, 정6위상 문이미길금웅, 군로 대령 외종8위상 문이미길, 의대령(擬大領) 종7위상 문이미길, 종8위상 문이미길이 보인다. 이를 통해서 문이미길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들이 기이국 이도군 군사 가문의 구성원임을 알 수 있다.
12. 문지변기촌(文池邊忌寸)
문지변(文池邊)이라는 씨명 중에서 문(文)은 문한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였음을 뜻하며, 지변(池邊)은 민달천황(敏達天皇)의 지변쌍규궁(池邊雙槻宮) 등에서 보이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변은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앵정시(櫻井市) 아배(阿倍)부근이다.
문지변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은 다른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화천국 제번 「지변직(池邊直)」 조(1049)의 지변직씨는 문지변기촌과 동족일 것이다. 해당 조에서는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와 조상이 같으며 아지왕(阿智王)의 후손이라고 하였다.
13. 팔성(八姓)
이 조에는 산구숙녜(山口宿禰), 문산구기촌(文山口忌寸), 앵정숙녜(櫻井宿禰), 조기촌(調忌寸), 곡기촌(谷忌寸), 문숙녜(文宿禰), 문기촌(文忌寸), 대화국(大和國) 길야군(吉野郡)의 문기촌(文忌寸), 기이국(紀伊國) 이도군(伊都郡)의 문기촌(文忌寸), 문지변기촌(文池邊忌寸)의 10성을 기록하고 있으나, 8성이라고 한 것은 문기촌이라는 씨성을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1개의 씨성으로 간주한 결과일 것이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성씨록(姓氏錄)』 에 이르기를, 제복(弟腹; 오토노하라)의...] 자료번호 : ss.k_0003_003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