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장항고성

獐項古城
  • 저필자
    김진광(한국학중앙연구원)
  • 시대
    고구려/발해
  • 위치
  • 원소장처
    吉林省 和龍市 西城鄕 獐項村 西北500m 산기슭(길림성 화룡시 서성향 장항촌 서북500m 산기슭)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둘레: 330m, 남: 90m, 북: 90m, 동: 75m, 서: 75m
입지
고성 북쪽은 기복이 있는 높은 산과 이어져 있고,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는팔가자진(八家子鎭)에서 와룡향(臥龍鄕)으로 통하는 삼철(森鐵)과 도로(공로(公路))가 있으며, 다시 남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는 이도하(二道河)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유적개관
고성은 장방형이고, 방향은 5도이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남아있는 30m 정도의 북쪽 성벽으로 성의 대체적인 윤곽을 살펴볼 수 있다. 성벽은 토석혼축이다. 성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남쪽 성벽 중간에 구멍이 있었는데, 아마도 성문지로 생각된다.
유물개관
성 안에는 많은 벽돌, 베 무늬 기와, 수키와와 지압문 암키와 잔편 등이 흩어져 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장항고성(獐項古城)은 화룡시(和龍市) 서성향(西城鄕) 장항촌(獐項村)에서 서북쪽으로 500m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북쪽은 높은 산과 이어져 있다. 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는 팔가자진(八家子鎭)에서 와룡향(臥龍鄕)으로 통하는 삼림철도[森鐵]와 도로[公路]가 있다. 다시 남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는 이도하(二道河)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고성 안은 이미 논으로 변했고 성벽은 평평해졌다. 1984년 문물조사 당시 현지인들에 의하면, 이곳에는 원래 돌로 쌓은 성벽이 있었고, 성 안에는 수많은 기와편ㆍ도기편 등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조사상황에 근거하면, 일부 유적은 확인할 수 있다. 고성은 장방형이고, 방향은 5°이다. 북쪽에 자리잡아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남아있는 30m 정도의 북벽으로 성의 대체적인 윤곽을 살펴볼 수 있다.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성벽 밑부분의 너비는 약 10m, 윗부분의 너비는 약 1m, 현재 높이는 약 1.2m이다. 성벽은 남북 길이 90m, 동서 너비 약 75m, 전체 둘레 약 330m이다. 성문지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현지 노인들에 의하면, 남벽 중간에 너비 약 5~6m에 달하는 홈이 있었는데, 아마도 성문지일 것이라고 하였다.
성 안에는 많은 양의 벽돌ㆍ베무늬가 있는 기와[布紋瓦]ㆍ수키와[筒瓦]ㆍ손가락으로 누른 무늬가 있는 암키와[指壓紋板瓦] 잔편 등이 흩어져 있다. 또한 약간의 붉은색을 띠는 갈색ㆍ회색을 띠는 갈색 도기잔편과 약간의 건축재료 등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길이가 긴 돌이 주목되는데,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장방형을 이룬다. 길이는 0.40m, 너비는 0.15m에 달한다. 한쪽은 비교적 평평하고 반듯하며, 다른 한쪽은 손잡이 두 개가 있다. 손잡이와 손잡이 사이의 간격은 3cm, 손잡이의 길이는 6cm이다, 양쪽의 손잡이는 홈이 난 부분과 서로 대응한다. 돌의 재질은 단단하고 다음은 상태가 정교하고 세밀하여 건축 재료로 생각된다.
성터에서 북쪽으로 약 60m 떨어진 곳에는 발해시기의 무덤 2기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데, 아마도 고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수습된 유물로 분석하면, 이 고성의 연대는 발해시기이다.
참고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 1984, 「和龍文物志」, 53쪽.
김진광, 2012,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577~578쪽.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장항고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50_0080_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