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조(吳服造; 구레하토리노미야츠코)
오복조(吳服造; 구레하토리노미야츠코)
백제국(百濟國) 사람 아루사(阿漏史; 아루이노후히토)로부터 나왔다.
【주석】
1. 오복조(吳服造)
오복(吳服)의 씨명은 『고사기』 응신천황단에 “백제국에서 ……또 수인한단(手人漢鍛)의 이름은 탁소(卓素)이고, 또 오복(吳服)의 서소(西素) 2인을 보냈다”라고 하여 오복(吳服)이라는 백제로부터 온 직조 기술자의 반조에 있었던 데에서 기인한다. 『일본서기』 응신기 14년조에 “백제 왕이 봉의공녀(縫衣工女)를 바쳤다. 이름은 진모진(眞毛津)이라고 한다. 이것이 지금의 내목의봉(來目衣縫)의 시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평보자(天平寶字) 8년(764) 7월 18일 「악구흠실해(樂具欠失解)」(『대일본고문서』 5-485)에 보이는 오복식인(吳服息人)은 오복조씨(吳服造氏)의 일족으로 생각된다. 『영집해(令集解)』직원령, 「직부사(織部司)」 조의 「별기(別記)」 에 나오는 오복부(吳服部)는 오복반조(吳服伴造)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오복(吳服)의 씨명은 『고사기』 응신천황단에 “백제국에서 ……또 수인한단(手人漢鍛)의 이름은 탁소(卓素)이고, 또 오복(吳服)의 서소(西素) 2인을 보냈다”라고 하여 오복(吳服)이라는 백제로부터 온 직조 기술자의 반조에 있었던 데에서 기인한다. 『일본서기』 응신기 14년조에 “백제 왕이 봉의공녀(縫衣工女)를 바쳤다. 이름은 진모진(眞毛津)이라고 한다. 이것이 지금의 내목의봉(來目衣縫)의 시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평보자(天平寶字) 8년(764) 7월 18일 「악구흠실해(樂具欠失解)」(『대일본고문서』 5-485)에 보이는 오복식인(吳服息人)은 오복조씨(吳服造氏)의 일족으로 생각된다. 『영집해(令集解)』직원령, 「직부사(織部司)」 조의 「별기(別記)」 에 나오는 오복부(吳服部)는 오복반조(吳服伴造)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2. 아루사(阿漏史)
이 인명은 기타의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인명은 기타의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