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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치통감장편

고려국왕 왕휘(王徽)의 죽음에 대해 수륙회(水陸會)를 개설하라는 조서(詔書)

  • 날짜
    1083년 9월 (음)(元豐 6年(1083) 9月 庚戌)
  • 출전
    卷339 元豐 6年(1083) 9月 庚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고려국왕 왕휘(王徽)[문종]가 졸하였으니, 명주(明州)에 본주 혹은 정해현(定海縣)의 큰 사찰을 택하여 승려 37인으로 하여금 도량을 한달간 개최하게 하고 파하기 전날 저녁에 수륙회(水陸會)를 개설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왕휘는 재위한지 무릇 36년이다.
(고려는) 그 경계가 동남으로는 바다를 가까이 두고, 서북으로는 거란, 여진, 흑수(黑水)와 접하고 있다. 왕건(王建)이 신라, 백제의 땅을 병합한 이래로 지금까지 170여 년에 이르렀다. 왕은 촉막군(蜀莫郡)에 기거하는데 (그곳을) 개주(開州)라 하고 개성부(開城府)라 칭하였다. 신라는 동주(東州)라 하고 낙랑부(樂浪府)라 칭하며 동경(東京)으로 삼아, 왕이 기거하는 곳에서 동북으로 20일 가면 있다. 백제는 금주(金州)라 하고 금마군(金馬郡)이라 칭하고 (왕이 기거하는 곳에서) 남쪽으로 12일 가면 있다. 부여의 옛 땅은 공주(公州) 부여군(扶餘郡)이라 하고 또한 (왕이 기거하는 곳에서) 남쪽으로 20일 가면 있다. 평양(平壤)은 호주(鎬州)라 하고 서경(西京)으로 삼았다. 압록강을 서북 경계로 삼고, 동쪽으로 임한 바다는 물이 무척 맑아 열길 아래까지 보인다. 대체로 바다로 고려의 경계에 이르러 맑으면 등주로 들어가고 그 경계는 천리의 긴 모래사장으로 탁하다. 기후는 춥고 산이 많다. 국왕이 출타할 때 평지에서는 항상 소 혹은 말이 끄는 거가를 타고, 험한 산을 넘을 때는 말을 탄다.
관으로는 중서성(中書省), 중추원(中樞院), 평장사(平章事), 참지정사(參知政事), 중추사(中樞使), 한림학사(翰林學士), 지제고(知制誥)가 있는데 대게 중조(中朝)를 본뜬 것이다. 국자감(國子監), 사문학(四門學) 학자는 6,000여 명에 이른다. 3년에 1번 진사를 선발하는데 시, 부, 론을 시험보고, 명경(明經)에서는 대경(大經) 하나, 소경(小經) 하나를 시험 본다. 진사(進士)는 야간에 시험을 보고 초를 3개 지급하여 ‘납팔량(蠟八兩)’이라고 하는데 초가 다할 때까지 제출하지 못하면 탈락이다. 선발된 인원은 50인이다. 책은 『동관한기(東觀漢記)』주 001
각주 001)
東觀漢記 : 後漢 光武帝에서 靈帝 시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紀傳體 史書이다. 역사 편찬을 위한 官府를 東觀에 두었다고 해서 東觀漢記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班固·陳宗·尹敏·孟異·劉珍·李尤·劉騊駼 등 여러 사람들이 집필한 내용이 모여 책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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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다.
백관에게는 쌀로 녹봉을 주거나 전(田)을 지급하고 파수관(罷隨官)에게도 증감하여 지급하며 치사(致仕)하면 그만둔다. 무역 역시 은과 쌀을 이용하나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다. 민간에서 술을 주조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군사는 민에서 차출하고 왕부(王府)를 번위(藩衛)한다. 온 나라의 사람이 불법(佛法)을 좋아하여 개성부에 사찰이 70여 곳이 있고 왕사(王寺)에는 승려 1,500명을 두어 관에서 전(田) 300결을 지급한다. 민간에서는 전(田) 4방을 [방 400보] 1결로 삼아 상전(上田)은 200점을 거두고 1점은 15두(斗)로 하는데, 그 기준이 중국의 1석(石) 등과 같다.
천성(天聖)주 002
각주 002)
天聖 : 송 인종 1023년~1031년까지 사용한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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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이전에는 사신이 등주를 경유하여 입국하였는데 희녕(熙寧)주 003
각주 003)
熙寧 : 송 신종 1068년~1077년까지 사용한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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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이래로 모두 명주(明州)를 경유하였고, 등주를 거치는 길에는 사적(沙磧)이 있어 통행이 불가하다 하였다. 명주에서 돌아오는데 순풍을 만나면 4일 밤낮이면 대체로 흑산도에 다다르고 여기서 그 국경을 볼 수 있어, 흑산도로부터 섬을 따라 들어가면 순풍에 따라 안전하게 가면 7일이면 경구(京口)에 이르러 육지로는 역마 2번을 거치면 개주에 이른다.

  • 각주 001)
    東觀漢記 : 後漢 光武帝에서 靈帝 시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紀傳體 史書이다. 역사 편찬을 위한 官府를 東觀에 두었다고 해서 東觀漢記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班固·陳宗·尹敏·孟異·劉珍·李尤·劉騊駼 등 여러 사람들이 집필한 내용이 모여 책이 완성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天聖 : 송 인종 1023년~1031년까지 사용한 연호 바로가기
  • 각주 003)
    熙寧 : 송 신종 1068년~1077년까지 사용한 연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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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국왕 왕휘(王徽)의 죽음에 대해 수륙회(水陸會)를 개설하라는 조서(詔書) 자료번호 : jt.k_0005_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