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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김치용

죽어서 나간지 산지 몰라라우
김치용 | 1942년 사할린 미쓰비시 계열 탄광에 동원되었다가 1944년 다카시마로 전환배치 | 2006.9.14. 구술
김치용 씨는 1919년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서 태어났습니다. 품팔이 노동을 하다 면서기에게 직업이 없는 동네 청년 2명과 함께 지목당해 사할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미쓰비시 계열 탄광에서 일했습니다. 1944년에 사할린에서 다카시마 탄광으로 보내졌습니다. 미군 폭격이 있어도 해저 탄광이라 계속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해방 된 후 기뢰를 피해 밤에만 배를 타고 육지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독한 이별, 사할린 이중징용 진상조사 구술기록』,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2007, 266~286쪽
 
 
김치용 (金致龍)_남. 89세.
 
  • 일자
  • 내용
  • 1919.2.22.
  •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 원덕리(院德里)에서 출생
  • 1943.8.
  • 사할린 소재 미쓰비시(三菱) 계열 탄광에 동원됨.
  • 1944.8.
  •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소재 미쓰비시(三菱)탄광주식회사 다카시마(高島) 탄광으로 '전환 배치' 되었다가 해방 후 귀국함.



할아버지. 성함(姓銜)이 어떻게 되세요?


김치용이요.


몇 년도(年度)에 태어나셨어요?


지금 아흔(90세)인디.


무슨 띠세요?


맴생이…. 맴생이. 염소 맴소여. 맴소. 기미년(己未年) 에 생긴.


기미년생이세요? 1919년생?


예. 19년 2월 22일 날.


여기가 고향(故鄕) 이세요?


예. 27대째요. 27대 됐어요. 아니 7대 됐어요.


7대째 여기에 사세요?


예.


그때 가족傢族)은 어떻게 되셨어요?


어머니만 살아 계셨어요. 형제(兄弟)는 여자 둘.


누님 두 분이요?


예. 누님 둘 그리고 또 형님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넷째시네요?


예. 동생은 없었어요. 그라고, 장개(장가) 가서 아내 있었어요.


결혼(結婚)을 언제 하셨어요?


열아홉 살에 했어요.


자제분이 있으셨어요?


없었어요. 3년 됐는디. 장개간 3년 만에 아내가 병들어 가지고, 인자 형제간이고 뭣이고 다 가버리고, 어머니하고 나하고 마누라하고 서이 살았는데. 징용(徵用)을…. 벌어 먹니라고 돌아 댕긴게. 말 안 듣는다고 동네 구장(區長)
각주 )
읍면의 이원(吏員)이지만 각 부락에 거주하면서 행정기관을 보조하는 존재. 일제시기에 각 마을을 하나의 구역(區)으로 하여 그 구의 장을 구장이라 불렀다. 지금의 통장, 이장(里長)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제시기에 구장은 최말단 행정원으로 조선총독부→도청→군청→읍면사무소→구장으로 업무가 진행되었다. 구장은 마을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나 회사직원들과 동행하여 직접 마을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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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너(4명)인가? 이 동네에서 너 인가 보냈어요.


이 동네 그 당시에 가구수(家口數)가 얼마나 됐어요?


음. 거시기 없었을 때는 120호(戸) 살았어요. 120호. 이 동네서.


규모(規模)가 큰 동네였네요?


예. 큰 동네.


창씨명(創氏名)은 있으셨어요?


일본(日本) 이름은 그 가서 했어요.


뭐라고 불렀어요?


금산(金山)이라고. 가네야마라고 했었어요.


이름은 안 바꾸시구요?


예. 이름은 안 바꿨어요.


치용은 어떻게 읽어요?


가네야마 치료(致龍의 일본어 발음. 원래는 치류라고 발음해야 함)라고.


화태(樺太)에는 몇 살 때 가시게 된 거예요?


스물 그때쯤 돼. 스물 셋인가? 소화(昭和) 9년(1934년), 9년인가 갔을 거요.


스물세 살이면 43년쯤이니까 소화 9년은 아닌데요?


아니요?


천구백 몇년도인지는 기억(記憶) 안 나세요?


에. 그건.


설 쇠고 가셨어요?


아니요. 아니. 설 거기 가서 쇠었어요. 설. 거기 간 게, 정월(正月) 초하룻날이라고 뭣…. 쪼깨(조금) 줍디다.


화태 가시기 전에는 농사(農事) 지으셨어요?


그치. 저 일본 놈들이 있어서 약간 곤란 했어요. 저 도끼로 산판 일을 다니고(도끼를 들고 산에 벌채 하러 다니고), 그렇게 품팔이 해서 벌어먹고 살았어요.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셨네요?


넉넉하지 않았죠.


가라후토가 어떤 곳인지 들어보셨어요?


몰랐지요. 인자 거기 가서 인자 알았지.


누가 처음에 가라고 하던가요?


면(面) 서기(書記)가 이 동네 이장(里長)한테다가 거시기 해 갖고 말 잘 안듣고 품팔이 다니는 놈만 너이 거시기 해 갖고(동원해서) 보냈어요.


면서기가 이장한테 뽑으라고 지시(指示)를 했네요?


그렇지요.


그 사람 이름 기억나세요?


박만○이요. 죽은 지 한 3년 돼요.


이 사람이 동네 사람 중 미운 사람 몇 명을 뽑았네요?


미운 사람들만 갔지요. 뭐 말 잘 안 듣고 품팔이 하러 댕긴 게, 그 사람들만 넷 뽑 아서 보냈어요.


할아버지는 뭘 잘못 보여서 가시게 된 거예요?


모르죠. 일 뭐 말 잘 안 들은께. 아! 동네서 거시기 허믄, 납부금(納付金) 달라고 하면, 거 없은게, 잘 안준게. 그냥 거시기 하고….


부역賦役)에는 잘 나가셨어요?


예. 부역 같은 것은 다 잘 했지요.


돈 내라고 하는 걸 잘 안 냈네요?


예.(*돈이) 없은게.


일 다닌다고 피하고 그러셨나 봐요?


그렇죠. 많이 피해 다녔죠.


주로 산판일을 하던 사람들을 뽑았네요?


예. 산판 일. 나무를 뽀개로 다니는 사람들.


뽑은 후에 언제 어디로 간다고 얘길 해 주던가요?


이야기 하자니(하자면), 산판일 해서 인자 들어와서. 인자 집에 간 게. 그쪽에 인자 섣달 그믐인게, 다 들어 왔어요.(사람들이 집으로 왔어요) 들어 온 게 인자 누구누구 거 부곡쟁이, 부격장라고 헐 거요. 그쪽에서 나왔다고 가라고 나는 '안 에서(아내가) 아프고, 장개 간지도 얼마 안 되고, 해서 좀 미뤄 달라'고 한 게로 "너 같은 놈이 안 가고 어떤 놈이 가냐?"고 그렇게 강제(强制)로 보냈어요.


무슨 쪽지 같은 것도 안 가져 오구요?


아니요.


며칠까지 면사무소(面事務所)로 모이라고 하던가요?


여기서 면에서 데릴러 왔었지. 그 길로 붙잡혀서 저 여수(麗水)
각주 )
관려연락선(關麗連絡船)이 오고가던 곳. 1930년 개설. 여수는 부산과 함께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이 떠나고 온 항구도시이다. 일본과 한반도를 오가는 연락선은 이 외에도 관부(關釜)연락선과 하쿠후(博釜)연락선(1943년 개설)이 있었다. 하쿠후(博釜)연락선은 후쿠오카(福岡)시의 하카타항(博多港)과 부산간을 운행했다. 관부연락선(關麗連絡船)은 일본 국유철도(국철)가 혼슈(本州)의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釜山) 사이를 운행한 철도연락선('철도를 잇는 배'의 뜻. 1905년 개설). 관부연락선은 1940년 10월 현지 240km 약 7시간 30분이 걸렸고, 박부연락선은 1943년 7월 현재 215km, 약 8시간 10분(1943.07)이 걸렀다. 1945년 6월 미군 공습이 심해 사실상 운항 정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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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갔어요. 너이(네 명이) 여수로 갔어요.
1930년 전남여수와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관려(關麗)연락선이 개설 되었다. 연락선으로 쓰였던 흥안환(興安丸, 고안마루). 위원회 소장 자료사진.


그 사람들이 누구예요?


어떤 사람들이요?


같이 가신 분 네 명이요?


김도랭이라고 하는 사람하고, 도랑. 김도량이, 신영수. 차삼바우, 차삼바우 그리 갔어요.


차삼우요?


바우요.


연세(年歲)들은 비슷하셨어요?


다, 저 형님 뻘 되죠.


어느 정도 많았어요?


9년째 10년째 되었어요. 내가 지일 나이가 적어요.


이분들은 다 돌아가셨겠네요?


예. 떴어요(죽었어요), 그런데 도량이라는 사람 아들이 요 앞집에 살아요.(*강제동원 피해를) 신고(申告)했다고 합디다. 내가 거시기 해갖고 내가 다 보증(保證. 인우보증) 서 가지고 다했어요.


식구(食口)들이 떠나는 것을 알았네요?


알았지요.


돈을 얼마주고, 얼마 동안 일한다고 얘기 해주던가요?


안해요. 여수(麗水) 가서 인자 알았죠.


여수에서는 누가 알려줬어요?


여기서는 구장이 거시기 했죠.


여수에서 구장이 알려줬어요?


아니요. 여수에서 데릴러 왔어. 일본 사람이.


일본 사람 몇 명이요?


하나요.


그 사람이 얘기해줬어요?


아니요. 그냥 무조건 배만 인자, 거 여수서 인자 배만 일본 가는 놈 배만 인자 태우지. 델고 가요.


그날 여수에 모인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요?


겁날 것이요. 한 1,000명은 될 것이요.


그럼 배가 엄청 컸겠네요?


큰 군햄(군함)이요.


군함(軍艦)인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포(砲)는 욱(위)에가 있는가 어찐가는 몰라도 제일 하층(下層)
각주 )
선창(船倉)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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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가 몰아 넙디요. 그 욱인가 어찐가 위층은 뭐 실었는가 어쩐가는 몰라도. 그 정녕 바닥만이 생깁디다.


연락선(連絡船)이 아니구요?


연락선 같이 생겼던디.


군함은 보면 대포(大砲)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욱에가 있는가는 몰라도. 그쪽에 그놈들도 거시기 헌게. 낮에는 못가고 밤에만 가요.


밤에만 가요?


예, 밤에 태워요. 낮에는 안 가요.


여수에서 배를 타고 어디로 갔어요?


여수에서 타고는 그 하관(下關)이라고 하던가? 거기서 또 내려 가지고는 또 큰 배에다 또 태웁디다.


기차(汽車)를 타신 게 아니구요?


기차 안탔어요. 그래갖고 가다가 또 내려갖고 저 동경(東京. 도쿄)이라고 하는디, 거기까지 차 타고. 차로 실고 갔어요.


동경까지 기차로 갔네요?


예, 동경서 또 차 탔어요. 저 배. 배.


동경에서 하룻밤 주무셨어요?


바깥에는 못 나오게 해요, 안에서만….


동경에서는 또 어떻게 갔어요?


기차 탔어요. 뭣 이라고 하던가. 부대(部隊), 아니, 부대라고 하던가. 어디라던가. 배 타고.(*북해도) 거기 가서 또 배 탔어요. 배 겁나게(오래) 탔어요. 한 20일간 탔는디요, 배. 중간(中間)에 가서 내려가지고 또 배가…. 강이 얼어 가지고 못 간 게로…. 또 쬐간 화청 다려 맨 것 그것에다 실고 갔어. 중간에 가서 또 못 간 게, 내려 가지고 그냥 육로(陸路)로 인자 걸어서. 허리되게 눈 댑다 왔는디(눈이 허리 까지 오도록 많이 왔는데). 눈이. 지금은 내가 그래서 시방 눈을 잘 못 보요.


어떻게 하다가 눈을 다치셨어요?


안 다쳤어요. 거기 간디, 마굿간에다가 몰아 놓고는 인자. 그 말똥 타는 놈 거기다가 그냥 몰아 넣은 게. 눈들이 모다 연기(煙氣) 쪼야서 그냥 많이 그냥 봉사 되어 갖고(눈이 보이지 않도록 다쳐서), 모다 가서 치료(治療) 받고 모다. 그저…. 그 연기로 그냥…. 그래 갖고 눈을 잘못 봐요.


화태(樺太) 가서 의사(醫師)에게 눈을 진료(診療) 받았어요?


아뇨. 안약(眼藥) 사다가 넣고. 그 거시 기서 여관(旅館)에다 부탁(付託) 했더니 안약 사다 줍디다.


화태에 도착했는데, 거기 동네 이름이 뭐였어요?


기억은 안 나는데. 뭐 굴 이름을 뭐 '이찌고(1갱. 一坑), 니고(2갱. 二坑)' 그럽디다. 내가, 나는 니고에 가 있었어요.


동네에서 같이 간 분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어요?


예. 같이 거기까지 갔어요. 탄 같이 탄 팠어요.


탄광(炭鑛) 이름은 기억 안 나세요?


기억 안나요. 뭐 니찌고, 니고 그것만….


회사(會社) 이름은요?


미쓰보시(三菱 원래 발음은 미쓰비시)라우.
에스토루(恵須取. 현 우글레고르스크)지역 도로 탄광 등에서 나온 석탄을 실어내던 하마토로(浜塔路). 당시 건물은 아니지만 지금도 석탄을 실어내고 있다.(2007.9.1. 이병희 조사관 촬영)


신영수 어르신이나 다 거기에 계셨어요?


예. 거기에 다 있었어요, 다.


화태 항구(港口) 에서 탄광(炭鑛)까지는 멀었나요?


화태 탄광에서 나왔어요.


아니요. 항구에서 탄광까지 어떻게 가셨냐구요?


차 타고, 저 트럭. 그 트럭 인가. 뭐.


그럼 항구에서 별로 멀지 않은 가 봐요?


멀어요. 항구가 없어요. 거기는 화태라는 디는 전부 그냥 탄광 뿐이예요.


제가 미쓰비시 탄광 몇 개를 불러볼게요. 기억나시면 말씀해주세요. 나요시(名好) 탄광?


아니요.


나이부치 (内淵)?


아니에요.


니시나이부치(西内淵)도 아니고요?


예.


나이호로(内幌) 아니예요?


아니요.


그러면 시리토루(知取) 아니에요.


그건 잘 몰라요.


타이헤이(大平)?


그거 화태에서 2년 있다가 또 일본 본토(本土)로….


화태에 가자마자 일을 시키던가요?


아니요. 하루 있다가는 그냥 일 시켰지. 탄광으로 그냥 몰아넣어요.


잠은 어디에서 주무셨어요?


거시기 판자(板子) 깔아놓고, 거기다 난로(煖爐) 피요. 탄(炭)으로 난로 피고. 거기서 담요 하나씩 주고, 그 놈 덮고.


군대(軍隊) 내무반(内務班)처럼 생긴데, 베니다판(베니어합판. veneer会板) 놓고 그 위에서 자는 거예요?


판자로. 전부 판자로 놓았어요.


그 숙소(宿所)에는 몇 명 정도 생활(生活)했어요?


한 300명 이상 될 것이요. 여러 채요. 집이. 모야 있던 먼저 간 사람들도 많이 있습디다. 장성 사람도 있고 저 광주(光州) 사람도 있고.


서울이나 경기도(京畿動)사람들도 있었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기억나시는 분 있으세요?


거기서 만난 사람 기억이 안나요. 몰라요.


일은 하루에 몇 시간하나요?


아침 여섯 시에. 저 여섯 시에 들어가면 저녁때 여섯 시에 나와요.


교대(交代)도 하고 그러나요?


예. 교대해요, 1주일씩 교대해요.


월급(月給)은 줬어요?


예. 월급 조금씩 주어요. 그때 45원인가, 4원인가 받았 어요. 월급으로. 월급 4원인가 했을 것이요.


손에 받는 돈이 4원이었어요?


예.


전체(全體) 얼마가 되는지 모르시고요?


몰라요.


4원 가지고 뭐에다가 쓰셨어요?


그적에는 콩깻묵 섞어가지고 밥 준게로. 배 고픈 게. 그놈(월급) 갖고 또 인제 거시기 가서.(*당시에는) 밥도 안 팔아요. 고기 같은 거 물고기 같은 거 사다가. 그놈 뭐냐? 삶아 갖고, 배고픈 게 모다 먹고. 그렇게 일 했어요.


무슨 물고기인지 기억나세요?


가제미(가자미)라고 합디다.


쉬는 날도 있었어요?


안 쉬어요. 일요일(日曜日)도 안 쉬어요. 근게 낮에 다니는 사람(주간 근무자) 있고, 저녁에 다니는 사람(야간 근무자)도 있고 그렇지요.


따로 쉬는 날이 없었네요?


예.


얼마쯤 일하니까 일본으로 가라 하던가요?


2년만엔가 일본으로 또 보냈어요. 화태, 화태에서.


그때가 계절(季節)이 언제였어요?


여름이요.


장성에서 같이 간 분들도 일본으로 함께 갔어요?


같이 갔어요. 같이.


그때 한 몇 명쯤이 같이 갔나요?


그 온 사람들은 다 잡혀 갔지요.


몇 명쯤인지 기억 나세요?


기억이 안 나요.


일본 어디에 가신거예요?


난중에 간? 거기가 사세보(佐世保)
각주 )
사세보. 나가사키(長崎)현에서 두 번째로 큰 북부 항구도시. 근처에 탄광이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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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한디, 사세보라고 한디, 큰 갑디다. 비행기(飛行機)가 거기다가 늘 그냥 폭격(爆擊) 합디다.


할아버지가 일하신 곳이요?


섬이여. 사세보. 거 뭣인가 그 섬에서 있었어요.


거기도 미쓰비시라고 하던가요?


예. 미씨비시.


섬이 어떻게 생겼어요?


이렇게 기드라느니 생겼어요. 배 모양으로 생겼지요.


혹시 하시마탄광인가요?


하시만가 뭣인가 모르것어요.


사람들이 군함섬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군함섬이라고 하는가 어쩐가는 몰라도. 뭐 시세보에서 내려 갖고, 거 배에다가 싣고, 싣고 섬으로 들어갔어요.
나가사키현 다카시마(高島) 섬에 있었던 다카시마 탄광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과 현재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였다.(2006.6.9. 이병희 조사관 촬영)


그 섬의 크기가 걸어 다니면 어느 정도 되요?


예. 걸어 다니면은 한참 걸어 댕겨. 하루 걸어 다닐 거예요. 먼여(먼저) 간 사람들이 다 거기서 살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밭 모다 파서 고구마 같은 거 놓아서 먹고 그럽디다.


콘크리트로 덮인 섬은 아니네요?


아니요.


섬에 있는 탄광은 회태보다 작업(作業) 환경(環境)이 어떻던가요?


화태보다도. 화태는 그냥 모른디서(넓은데서) 그냥 탄 파는디. 한 열 두 자(尺)는 될 것이요. 탄(막장)이 길이 높이가.


탄이 그렇게 높아요?


예, 탄이 그렇게 높아요. 그런디 여기는(사세보는) 바다속에서 판디. 바다 속에서 판디. 글쎄 무연탄(無煙炭), 무연탄인가 봅디다.


화태만큼 컸나요?


좁아요. 그냥 무연탄이다가 팜선(파면서) 그냥 구루마
각주 )
車. 여기서는 석탄을 실어내는 탄차(炭車)를 뜻함.
닫기
에다 실어서 내고, 내가고.


할아버지는 거기서 구루마 실어서 내가는 일을 하셨어요?


예. 거기 가서 거시기.


바다 속인데 혹시 사고(事故)가 나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았어요?


굴 여러 간데라(여러 군데라서) 모르지라우. 죽어서 나간지 산지 몰라라우. 그런디서 아니라우? 지그들 일본놈들 까지만 아는디….


화태에 계실 때나 일본에서 집에 편지(便紙)를 하셨어요?


편지, 편지여야 보내들 안해요.


왜 보내주지 않나요?


모르지요.


집에 어머니나 아내가 할아버지 소식(消息)을 모르셨겠네요?


하도 사람들이 많은 게 알지라. 알았지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소식을 알렸군요? 당시에 갖고 있던 통장(通帳)이나 사진(寫眞) 같은 것 있으세요?


찍은 놈다 불 나서 꼬실라 버렸어요(타버렸어요). 옛날에 불나서….
나이부치(內淵. 현재의 브이코프)의 니시나이부치(西內淵) 탄광 제1우애료(友愛寮)에 동원되었던 이문택(창씨명 星山文澤)이 들었던 우편저금통장(2005. 8.5. 이병희 조사관 촬영)


무슨 사진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탄광에서 일한 놈 사진이 있었어요.


여러 명이서 같이 찍은 건가요?


혼자 찍었어요.


일본에 있는 탄광에서 해방(變放)이 됐어요?


그렇지요. 음. 거기서 해방 돼 갖고. 해방 됐어도 인자 같이 간 사람들은 인자 같이 못 왔어요.


왜요? 미군들이 폭격하고 그랬다면서요?


여름에요. 바다 속이라 일 시켜요. 비행기가 댕겨도 일은 시켜요.


해방이 된 건 어떻게 아셨어요?


인자 그 저, 여기 사람들 그 조선 사람들이 거기 가서 사무실(事務室)에 가서 모다 있습디다. 일 시키고. 그 사람들이 밥 거시기다가 거 뭐 조낀
각주 )
발음으로 보아 증기(蒸氣)로 판단됨. 원래 발음은 '죠키.
닫기
(밥솥으로 밥을 지은 것으로 추정)가 뭐 거기다 쪄서, 밥 조깨씩 주고 그랬지요.


해방됐다고 조선 사람들에게 알려 줬나요?


예. 해방 됐다고 알려 줍디다. 그리고 그 놈들이 그냥 거시기 허믄, 그냥 비행기가 오면 그냥 벌벌 떨어. 벌벌 떨어. 조선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벌벌 떨어. 그 거시 기 해먹고 사는 놈들이.(노무 관리하는 사람들이)


해방되고다른 분들은 왜 같이 못 오셨어요?


(*나중에)같이들 왔어요. 거 바다에다 뭐 폭탄(爆彈)인가 뭐 깔아 놨다고
각주 )
기뢰(機雷)를 말함. 바다에 떠 있다가 배가 닿으면 폭발함.
닫기
. 거시기 나무배로 한 100명씩 탈 놈 그렇게 해서 저녁이면 내보내고 그럽디다. 내가 나는 또 제일로 낭중에 천천히 돌아와 가지고 제일 낭중에 나왔어요. 그 세 사람들은 먼저 나오고.


그럼 다들 밤에 나왔어요?


예. 다 밤에 나왔어요.


그때 나올 때 그동안 일한 대가를 주던가요?


조깨씩 주어야 뭐. 그, 배고픈 게 다 사먹어 버리고.


얼마 받으셨는데요? 오시면서 다 써버리셨어요?


아. 그렇죠. 그 돈 4원인가? 저 어디 거기가 어디야, 부산(釜山)인가 어디가 써 진게 돈 4원인가 얼만가 남았었읍디다. 그거 쓰고 그런 게, 먹고 그런 게 그건 몰라요.


부산에 도착하시니까 며칠이나 걸렸던가요?


거, 거 거기는 한 사흘이나 걸렸어요. 바다에. 태평양(太平洋) 바다로 온 게, 오다가 배가 또 고장(故障) 나 가지고 떠낼려 가고 아이고!


그래도 다 살아 돌아오셨나요?


예. 다 와서 살았어요. 여기서 살다가 인자 그 뒤에 모두 다, 다 식구들이랑 다 만나서, 다 살림하다가 다 돌아가셨어요.


집에 오시니까 어떠셨어요?


안 사람은 죽고. 어머니 혼자 삽디다. 면에서 겉보리, 겉보리 한 되씩 주고.


면에서 겉보리를 계속 줬대요?


그랬는가 봅디다. 겉보리 쪼개씩. 뭐야, 타먹었다고 그럽디다.


배급(配給)을 줬대요?


그랬는가 합디다.


신고하실 때는 여수 여관에서 주무셨단 얘기도 쓰셨네요?


예. 여관에서도 잤어요.


지금 몸이 어디가 특별히 불편(不便)하세요?


몸이 불편해요. 눈도 잘 안 뵈고, 걸어 다니지를 못 허니 서러워요. 이렇게 일어나면 그냥 자빠질라고 하고.
·면담·검독 : 방일권 조사3팀장
·1차 녹취문 작성 : 한길상
·편집·윤문·주석 : 이병희·권미현 조사관, 정혜경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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