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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주공(周公)이 섭정하여 천하가 화평해지니 월상국(越裳國)이 공물을 바침

  • 국가
    남월(南越)
교지의 남쪽에 월상국(越裳國) 주 001
각주 001)
越裳國: 중국 정사에서 越裳國의 입조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漢書』가 유일하다. 『漢書』 권12, 「平帝紀」에 따르면 平帝 元始 元年(서기 1) 정월 越裳氏가 9번의 통역을 거쳐와서 흰꿩 한 마리와 검은꿩 2마리를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王莽집단의 자작일 가능성이 높다. 周代 越裳氏가 여러 번 통역을 거쳐와 흰꿩을 헌상했다는 기록은 『尙書大傳』, 『韓詩外傳』, 『說苑』 등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論衡』에서도 그 내용이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불모인 먼 지역의 이적까지도 감동시킬 만큼 周公의 정치가 훌륭했음을 묘사하기 위해 越裳氏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정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尙書大傳』, 『韓詩外傳』, 『說苑』 등은 前漢代의 저작임을 고려할 때, 사실 여부를 떠나 周公과 越裳國 고사는 이미 전한시대에 널리 통용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같은 내용이 『漢書』 권99상 「王莽傳」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王莽이 흰꿩을 종묘에 바치자 공경대신들은 주나라 成王 때와 같은 상서로운 징조가 오늘날 있게 된 것은 王莽의 공덕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를 安漢公에 봉할 것을 주청했다. 몇 차례의 형식적인 사양과 재촉이 오고간 끝에 결국 王莽은 安漢公에 봉해졌으며 조정에서는 그의 권위를 당할 자가 없게 되었다. 이는 王莽이 당시에 널리 전승되고 있던 越裳氏의 고사를 채택하여 이를 재현함으로써 周公을 빌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여론의 지지를 획득하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나중에 平帝가 위독해지자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받겠다는 맹세의 글을 짓기도 했는데 이 역시 武王이 위독하자 그를 대신해 죽음을 자청한 周公의 고사를 흉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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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었다. 주공이 섭정하여 6년이 되어 예악을 제정하니 천하가 화평하였는데, 월상국이 코끼리 세 마리를 타고 여러 단계의 통역을 거쳐 흰꿩을 바치면서 “길이 아득히 멀고 산천이 깊어 막혀 있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아 여러 단계 통역을 거쳐 입조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왕이 이를 주공에게 보내자, 주공은 “군자는 덕을 베풀지 않았으면 그 예물을 받을 수 없고,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면 그 사람을 신하로 부리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사여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그 사신이 말하기를 “나는 우리 나라 황기(黃耈)주 002
각주 002)
黃耈: 李賢은 『爾雅』를 인용하여 黃髮과 鮐背, 그리고 耈老는 나이가 많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현존 『爾雅』 권1 石膏에 포함되어 있다. 黃髮은 노인들의 백발이 빠지고 다시 누런 머리털이 났음을 뜻한다. ‘鮐背’에서 ‘鮐’는 복어를 뜻하는데, 사람 나이가 90이 되면 등에 복어의 무늬와 같은 것이 나기 때문으로, 즉 나이가 아주 많다는 뜻이다. ‘耈’라는 것은 혈기가 소진되면 얼굴빛이 검붉어지는 것이 개와 같음을 의미하며, ‘老’는 사람 나이 70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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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 ‘오래 되었구나! 하늘에 계속된 바람과 뇌우가 없어진지가!주 003
각주 003)
『尙書大傳』에는 ‘특이한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졌다(‘別風注雨’)’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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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컨대 중국에 성인이 있는 모양이다. 있은즉 가서 조공하거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주공성왕에게 다시 돌려 보내,주 004
각주 004)
『尙書大傳』 권3, 「大晧篇」에 이 고사가 실려 있다. 前漢 文帝 때 尙書에 능통한 학자를 구하였는데, 秦나라에서 박사를 지낸 伏生이 尙書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듣고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그는 이미 나이 90을 넘겨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조착을 보내어 尙書를 전수하도록 하였고 그렇게 배운 내용이 당시의 서체인 예서로 기록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今文尙書』 28편이다. 경우에 따라서 나중에 발견된 「泰書」를 여기에 추가하여 29편으로 보기도 한다. 『尙書大傳』은 바로 이 『今文尙書』 28편에 대해 伏生과 그의 제자들이 해설을 붙인 것이다(『韓詩外傳』 권5; 『說苑』 「變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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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의 영혼이 이른 것이라고 하여 종묘에 공물로 바쳤다. 의 덕이 쇠미해지자 점차 단절되었다.

  • 각주 001)
    越裳國: 중국 정사에서 越裳國의 입조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漢書』가 유일하다. 『漢書』 권12, 「平帝紀」에 따르면 平帝 元始 元年(서기 1) 정월 越裳氏가 9번의 통역을 거쳐와서 흰꿩 한 마리와 검은꿩 2마리를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당시 정권을 장악했던 王莽집단의 자작일 가능성이 높다. 周代 越裳氏가 여러 번 통역을 거쳐와 흰꿩을 헌상했다는 기록은 『尙書大傳』, 『韓詩外傳』, 『說苑』 등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論衡』에서도 그 내용이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불모인 먼 지역의 이적까지도 감동시킬 만큼 周公의 정치가 훌륭했음을 묘사하기 위해 越裳氏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정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尙書大傳』, 『韓詩外傳』, 『說苑』 등은 前漢代의 저작임을 고려할 때, 사실 여부를 떠나 周公과 越裳國 고사는 이미 전한시대에 널리 통용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같은 내용이 『漢書』 권99상 「王莽傳」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王莽이 흰꿩을 종묘에 바치자 공경대신들은 주나라 成王 때와 같은 상서로운 징조가 오늘날 있게 된 것은 王莽의 공덕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를 安漢公에 봉할 것을 주청했다. 몇 차례의 형식적인 사양과 재촉이 오고간 끝에 결국 王莽은 安漢公에 봉해졌으며 조정에서는 그의 권위를 당할 자가 없게 되었다. 이는 王莽이 당시에 널리 전승되고 있던 越裳氏의 고사를 채택하여 이를 재현함으로써 周公을 빌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여론의 지지를 획득하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나중에 平帝가 위독해지자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받겠다는 맹세의 글을 짓기도 했는데 이 역시 武王이 위독하자 그를 대신해 죽음을 자청한 周公의 고사를 흉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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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2)
    黃耈: 李賢은 『爾雅』를 인용하여 黃髮과 鮐背, 그리고 耈老는 나이가 많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현존 『爾雅』 권1 石膏에 포함되어 있다. 黃髮은 노인들의 백발이 빠지고 다시 누런 머리털이 났음을 뜻한다. ‘鮐背’에서 ‘鮐’는 복어를 뜻하는데, 사람 나이가 90이 되면 등에 복어의 무늬와 같은 것이 나기 때문으로, 즉 나이가 아주 많다는 뜻이다. ‘耈’라는 것은 혈기가 소진되면 얼굴빛이 검붉어지는 것이 개와 같음을 의미하며, ‘老’는 사람 나이 70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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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3)
    『尙書大傳』에는 ‘특이한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졌다(‘別風注雨’)’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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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004)
    『尙書大傳』 권3, 「大晧篇」에 이 고사가 실려 있다. 前漢 文帝 때 尙書에 능통한 학자를 구하였는데, 秦나라에서 박사를 지낸 伏生이 尙書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듣고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그는 이미 나이 90을 넘겨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조착을 보내어 尙書를 전수하도록 하였고 그렇게 배운 내용이 당시의 서체인 예서로 기록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今文尙書』 28편이다. 경우에 따라서 나중에 발견된 「泰書」를 여기에 추가하여 29편으로 보기도 한다. 『尙書大傳』은 바로 이 『今文尙書』 28편에 대해 伏生과 그의 제자들이 해설을 붙인 것이다(『韓詩外傳』 권5; 『說苑』 「變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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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이름
주공, 성왕, 주공, 주공, 주공, 성왕
지명
교지, 월상국(越裳國), 월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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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周公)이 섭정하여 천하가 화평해지니 월상국(越裳國)이 공물을 바침 자료번호 : jo.k_0003_0116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