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왕 왕순(王詢)이 보낸 방물과 표문(表文)
고려왕 왕순(王詢)[현종(顯宗)]이 어사형부시랑(御史刑部侍郎)주 001 서눌(徐訥)주 002
각주 002)
을 보내 여진수령(女眞首領) 매순(梅詢)을 인솔하여 표문을 받들고 방물을 바쳤으며 수춘군왕(壽春郡王)주 003을 봉한 것을 하례했다. 처음에 곽원이 돌아갔을 때 왕순은 즉시 사신을 보내 사례하려 했으나 도중에 바닷바람 때문에 배가 표류하여 돌아갔다가 이때에 와서 이르렀다. 조서를 내려 서눌이 5일에 한 번 와서 안부를 물으라고 했다.徐訥 : ?∼1042, 고려의 관인. 본관은 利川이다. 太保內史令 徐熙의 아들이다. 고려 성종 15年(996)에 갑과에 급제하였다. 현종 7年(1016)에 中丞이 되고, 이듬해 刑部侍郎이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018년 尙書吏部侍郎兼左諫議大夫를 거쳐 國子祭酒知吏部事를 지냈다. 딸이 왕비가 되자 1022년 中樞使右散騎常侍에 오르고, 內史侍郎判西京留守事를 역임하였다. 1030년 門下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判尙書吏部事, 덕종 초에는 檢校太師가 되고 守門下侍中에 올랐으며 定宗 때 判都兵馬使가 되었다. 병이 위독해지자 임금의 문병을 받고, 三重大匡內史令에 임명됨과 함께 자손에게 永業田이 하사되었다. 정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元肅이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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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徐訥 : ?∼1042, 고려의 관인. 본관은 利川이다. 太保內史令 徐熙의 아들이다. 고려 성종 15年(996)에 갑과에 급제하였다. 현종 7年(1016)에 中丞이 되고, 이듬해 刑部侍郎이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018년 尙書吏部侍郎兼左諫議大夫를 거쳐 國子祭酒知吏部事를 지냈다. 딸이 왕비가 되자 1022년 中樞使右散騎常侍에 오르고, 內史侍郎判西京留守事를 역임하였다. 1030년 門下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判尙書吏部事, 덕종 초에는 檢校太師가 되고 守門下侍中에 올랐으며 定宗 때 判都兵馬使가 되었다. 병이 위독해지자 임금의 문병을 받고, 三重大匡內史令에 임명됨과 함께 자손에게 永業田이 하사되었다. 정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元肅이다.
- 각주 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