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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평양성 대동문

大同門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조선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중구역 대동문동
  • 시대
    고구려
  • 유형
    건축지
입지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위치해 있다.
유적개관
평양시 중구역 대문동에 있는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이다. 대동강 건너 남쪽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다. 대동문은 읍호루라는 별명이 있는데, 이는 대동강의 푸른 물을 손을 드리워 떠올릴 수 있다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예전에는 문밖에 나루터가 있었다. 고려 947년(정종 2)에 중건하였다가 거란족의 침입 때 화재로 손실된 것을 그 후 다시 세웠으나 병자호란 때 또 소실되었다. 지금의 문루는 1635년(인조 13)에 중건한 것이다. 대동문은 중앙에 홍예문을 갖는 석축을 두고 그 위에 2층의 문루를 높이 올린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구조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 2006
해설
평양시 중구역 대문동에 있는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대동강 건너 남쪽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다. 대동강변에 위치한다고 하여 대동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대동문은 읍호루(揖灝樓)라는 별명이 있는데, 이는 대동강의 푸른 물을 손을 드리워 떠올릴 수 있다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예전에는 문밖에 나루터가 있고 배다리가 놓여 있었다. 고려 947년(정종 2)에 중건하였다가 거란족의 침입 때 화재로 손실된 것을 그 후 다시 세웠으나 병자호란 때 또 소실되었다. 지금의 문루(門樓)는 1635년(인조 13)에 중건한 것이다. 대동문은 중앙에 홍예문을 갖는 석축을 두고 그 위에 2층의 문루를 높이 올린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구조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보통문과 비교할 때 중층문루가 보다 정리된 후대형식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석축은 1392년(태조 원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전면에 옹성(甕城)을 두었다고 하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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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성 대동문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10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