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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덕산토성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은정구역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평양시 은정구역에 위치한다. 북서쪽에는 청룡산이, 동남쪽에는 국사봉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은 평성천이 흐르고 있어 방어가 용이한 위치에 입지하고 있다. 토성의 북쪽에는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청룡산산성이, 남쪽에는 대성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유적개관
덕산토성은 당초 고려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고구려 기와편들이 확인되면서 고구려 시기에 활용되었음이 밝혀졌다. 토성은 2000년대 이후에 발굴조사 되었는데, 성벽 기저부 토층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이 출토된 것을 근거로 고조선 시기의 왕검성(평양성)의 북쪽 방위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토성은 현재 6·25 전쟁 당시 폭격과 이후 주택 및 도로 건설 등으로 인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보고에 따르면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560m이며, 성은 동서로 긴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 기저부의 너비는 7~8m이며, 안쪽 높이는 3~4m이지만, 바깥쪽의 높이는 8~10m이다. 성벽은 사질점토를 이용하여 수평을 맞춘 다음 중심부에 잔돌을 섞어 넣는 방식으로 기초를 다졌다. 이후부터는 판축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는데, 일부 구간에서는 해당 토층에서 고구려 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성벽의 최상층은 판축구간을 전체적으로 점토를 이용하여 덧씌우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는데, 해당 토층에서는 고려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훼손이 심한 관계로 성문을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4개가량의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의 경우 옹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일대에 고구려 기와가 다량으로 분포하고 있는 정황으로 볼 때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
* 기와
참고문헌
「조선고고연구」2007-3
해설
평양시 은정구역에 위치한다. 북서쪽에는 청룡산이, 동남쪽에는 국사봉이 자리잡고 있 으며, 북쪽은 평성천이 흐르고 있어 방어가 용이한 위치에 입지하고 있다. 토성의 북쪽에는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청룡산성이, 남쪽에는 대성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덕산토성은 당초 고려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고구려 기와편들이 확인되면서 고구려 시기에 활용되었음이 밝혀졌다. 토성은 2000년대 이후에 발굴 조사 되었는데, 성벽 기저부 토층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이 출토된 것을 근거로 고조선 시기의 왕검성(평양성)의 북쪽 방위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토성은 현재 6·25 전쟁 당시 폭격과 이후 주택 및 도로 건설 등으로 인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보고에 따르면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560m이며, 성은 동서로 긴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 기저부의 너비는 7~8m로 안쪽 높이는 3~4m, 바깥쪽의 높이는 8~10m이다. 성벽은 사질점토를 이용하여 수평을 맞춘 다음 중심부에 잔돌을 섞어 넣는 방식으로 기초를 다졌다. 이후부터는 판축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는데, 일부 구간에서는 해당 토층에서 고구려 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성벽의 최상층은 판축구간을 전체적으로 점토를 이용하여 덧씌우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는데, 해당 토층에서는 고려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훼손이 심한 관계로 성문을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4개 가량의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의 경우 옹성(甕城)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일대에 고구려 기와가 다량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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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토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09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