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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안학궁

安鶴宮
  • 저필자
    이규호(동국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위치
  • 관련자료
  • 원소장처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안학동
  • 시대
    고구려
  • 유형
입지
평양 대성구역 안학동에 위치해있다. 대성산 소문봉 남쪽 기슭 평탄한 곳에 입지하였다.
유적개관
고구려 평지 토성으로, 427년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길 당시의 도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논란이 있다. 안학궁은 3개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남북을 중심으로 외전·내전·침전의 영역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고, 이 공간으로 가기위하여 여러 개의 문을 거치도록 하였다. 궁성의 평면은 서남향으로 쏠린 사다리꼴의 형태로 되어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동북쪽으로 경사진 지형에 배치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성의 한 변의 길이는 622m이다. 확인된 건물지 중 궁전터가 21기, 회랑터가 31기이다. 성문은 동·서·북쪽 성벽에 각각 한 개씩을 내고, 남쪽 성벽에는 3개를 냈다. 동서 성곽 바깥에는 방어용 시설인 해자가 있는데 폭은 80~120㎝, 깊이가 1m 정도의 규모이다. 남수구문의 안쪽에는 연못자리가 확인되었다. 남문을 들어서면 남북중심축을 따라 외전·내전·침전의 3영역이 차례로 배치되면서, 주변에는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다. 중심구역의 북쪽에는 후원을, 좌우에는 동궁과 서궁을 배치하고 있다. 중요한 건물들은 회랑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출토유물
* 기와
해설
평양 대성구역 안학동의 대성산 소문봉 남쪽 기슭 평탄한 곳에 입지하였다. 427년 장수왕이 427년 수도를 중국 집안에서 평양으로 옮길 당시의 도성으로, 586년(평원왕 28) 장안성으로 옮길 때까지 약 160년간 왕궁역할을 하였다. 안학궁은 3개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남북을 중심으로 외전·내전·침전의 영역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고, 이 공간으로 가기 위하여 여러 개의 문을 거치도록 하였다.
궁성의 평면은 서남향으로 쏠린 사다리꼴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동북쪽으로 경사진 지형에 배치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토성으로서 위로 갈수록 조금씩 들여쌓는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성의 한 변의 길이는 622m이고 총 면적은 38만㎡이며 성곽의 네 모서리에는 각루(角樓)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궁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작은 내[川]를 따라 남과 북에 각각 수구문을 하나씩 두었고 동서 성곽 바깥에는 방어용 시설인 해자(垓字)가 있는데 폭은 80~120㎝, 깊이가 1m 정도의 규모이다. 남수구문의 안쪽에는 연못자리가 확인되었다.
성문은 동·서·북쪽 성벽에 각각 한 개씩을 내고 남쪽 성벽에는 세 개를 냈는데, 남문 가운데 중문과 동문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를 갖고 있다. 확인된 건물지 중 궁전터가 21기, 회랑터가 31기이다. 남문을 들어서면 남북중심축을 따라 외전·내전·침전의 3영역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부속건물이 들어서 있다. 중심구역의 북쪽에는 후원을, 좌우에는 동궁과 서궁을 배치시키고 중요한 건물들은 회랑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전체적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경사에 조영되어 있으므로, 건물들이 차츰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궁궐의 시각적 웅장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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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학궁 자료번호 : isea.d_0002_0040_0010_001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