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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청원 비중리일광삼존불상

淸原 飛中里一光三尊佛像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비중리 270-1
  • 시대
    고구려
  • 유형
    불상
입지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비중리에 위치한 석조불상이다.
유적개관
남한의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고구려 양식을 띠는 국내에서 유일한 일광삼존불 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복원되었는데, 하나의 돌에 삼존불, 광배, 대좌를 돋을새김기법으로 입체감을 살려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남한의 고구려유적」, 2006
해설
청주에서 약수로 유명한 초정리로 가는 511번 도로변 언덕에 위치한 석불입상이다. 현재 석불은 마을에서 당산나무로 여기는 느티나무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본래의 자리는 아니다. 주민들은 이 곳을 ‘선돌거리’로 부르고 있고, 오래전부터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1978년 학계에 보고되어, 1979년 이후 교원대학교 박물관에서 2차례에 걸쳐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결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찰이 존재했던 것을 추정하였으나, 불상의 원 위치나 사찰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구하지 못하였다. 1982년 유형문화재 114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보호각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불상은 하나의 화강암에 중앙 본존불(本尊佛)과 좌우 협시보살(脇侍菩薩), 세 불상을 부조로 새긴 형태로, 이들을 둘러싼 광배(光背)를 하나로 보아 ‘일광삼존불상’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조사 당시 중앙 본존불은 몸통과 머리 부분이 분리되어 있었고, 오른쪽(바라보는 사람의 위치에서는 왼쪽) 협시보살도 떨어져 나간 것을 접합하였다. 왼쪽에 있었을 보살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현재 보호각 앞에는 두 구의 보살상을 어디에서인가 가져다 놓았는데, 이 중 오른쪽에 위치한 보살상은 일광삼존불상과 표현 기법 등이 유사해 보인다.
본존불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습으로, 머리 부분부터 어깨에 이르는 부분까지 훼손이 심각하지만 부드러운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무릎위로는 옷자락이 내려뜨려 있고, 손의 모양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둘째 손가락을 구부린 시무외인(施無畏印) 수인(手印)을 나타내고 있다. 부처가 앉은 좌대에는 좌우로 사자상(獅子像)을 한 마리씩 그렸으나 마멸이 심하여 꼬리부분만 확인된다. 또 부처의 주변으로 10구의 화불(化佛)을 표현하였다.
오른쪽 협시보살의 경우 얼굴은 마멸되어 알아볼 수 없다. 머리카락은 길게 내려뜨렸고, 체구는 원통형으로 표현되었다. 상의는 X자 형태로 교차되는 것을 표현하였는데, 이는 6세기 무렵 보살상의 표현 특징으로, 불상의 조영시기를 추정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비중리 일광삼존불상은, 보고 당시 고구려 계통의 불상이라고 추정되기도 하였고, 본존불의 옷자락 처리 기법이 백제 계통의 불상이라고 추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역사지리적 환경과 조각수법을 종합하여 신라불상으로 추정하는 것에 대체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불상이 6세기 양식이라는 중요 단서가 있음에도 조영 주체를 밝히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6세기 무렵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가 번갈아가며 이 지역을 점유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 주체를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신라 최초의 일광삼존불상의 확인이라는 차원에서, 또 삼국 불상의 영향을 고루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유물이라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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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 비중리일광삼존불상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7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