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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고금산유적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원삼국시대
  • 위치
  • 원소장처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 245-9 일원
  • 시대
    고구려
  • 유형
    생활
입지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과 수원시 경계인 고금산 정상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조사된 유적으로,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와 고상식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유적에서 고구려계 와당 1점이 출토된 바 있다.
출토유물
* 와당
참고문헌
「화성 고금산유적」, 2002
해설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98.9m의 고금산 정상부와 또 주변 봉우리를 중심으로 한 야산 전체에 400여 평 규모로 형성된 유적이다.
수원시 외곽도시 개발계획 과정에서 확인되었고 2000년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정상부 평탄지에 대한 부분적인 구제 발굴을 시행하였다.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3기와 대형 저장구덩이 1기, 다수의 소형 저장구덩이, 그리고 바닥에서 공간을 띄어 올린 고상가옥(高床家屋) 기둥 자리로 추정되는 구멍들이 확인되었다. 또 정상부터 15-20m 간격으로 밀도 높은 주거지들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원삼국 시대의 주거지로 추정된다. 이 중 1기에서는 부뚜막 시설이 확인되었고, 다른 1기에서도 부뚜막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거지는 대체로 사각 평면형태이며, 면적은 1호 주거지 터가 5m, 3m, 2호 주거지 터가 4.4m, 3.3m이며 3호 주거지 터는 이보다 약간 큰 5.6m, 4.2m 정도로 형성되었다. 2호 주거지는 긴 사각형 모양인데, 7개의 기둥 구멍이 발견되어 지방에서 원두막 형태로 바닥을 지표에서 띄운 고상가옥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하부 층에서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 터가 발견되는 바, 고상가옥을 조성한 인물들이 이전 청동기 시대 집터를 인위적으로 파괴하고 같은 자리에 집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시루, 항아리, 접시 편 등의 생활 토기가 대부분이며, 원삼국시대, 초기 백제의 유물로 유추되고 있다. 이외에도 신라 토기, 조선 백자 및 옹기 파편도 다수 수습되었다.
특히 1호 집 자리에서는 일반적으로 벼의 수확구라 알려진 반달모양 돌칼 1점이 출토되어서 청동기 이른 단계부터 농경활동이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금산 유적에는 청동기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생활 주거지가 30cm 두께의 퇴적층으로 같은 자리에 형성되어 있어, 초기 국가형성기를 연구할 수 있는 유용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또 지금까지 미지에 가까웠던 경기도 서남부 권역 일대의 청동기-철기 시기 마을 구성, 주거형태, 경제 활동 등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나아가 여전히 많은 공백이 있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이행하는 기간의 한국사를 재정립하는 것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라 평가된다.
가까운 거리에 목책(木柵) 등이 있는 동시대의 화성(華城) 기안리유적(旗安里遺蹟)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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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산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2_0030_0020_01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