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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대전자청동단검묘

大甸子靑銅短劍墓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 초기 추정/전국시대 말기/진한시대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사도하자향 대전자촌(中國 遼寧省 本溪市 桓仁滿族自治縣 四道河子鄕 大甸子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환인현 사도하자향 대전자촌 산비탈 경작지에 위치
유적개관
1974년 대전자촌 농민이 경작시 고분을 훼손하면서 판석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청동단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분은 판석을 세운 석관묘로, 두껍고 큰 판석으로 덮었으며, 고구려 발생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골은 화장하였다.
유물개관
청동단검, 청동 화살촉, 청동 귀걸이, 방추차, 명도전 등
참고문헌
「博物館硏究」1994-2
해설
환인만족자치현 현소재지(縣所在地) 중심에서 서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7km 사도하자향 대전자촌 뒤편 능선에서 발견된 고분이다.
전언에 따르면 대전자촌 주민들이 산비탈 경지를 계단식 밭으로 개발하던 도중 커다란 판석을 발견하였는데, 이동이 불가하여 폭약으로 돌을 파괴하고 옮기던 도중 하부 공간에서 청동단검과 유물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후 1974년에 본계시문물부(本溪市文物部)에서 유물을 수거하고 조사하였다. 1994년에 한 차례 조사가 있었으나, 완전 파괴된 상태로 발굴은 하지 못하였다.
첫 조사보고에 의하면 30cm 두께의 석판을 이용하여 네 벽을 쌓고, 큰 판석으로 천장을 덮은 구조로 추정되며 바닥에는 자갈과 진흙을 깔았는데 벽과 인골에서 그을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실 안에서 화장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묘실의 규모는 2.34m×1.80m로 보고 되었으며, 청동기와 철기, 명도전 등 24점의 유물을 수습하였는데 대부분 변형된 상태였다.
무덤에서 청동단검이 출토된 것은 본계(本溪)지구에서는 첫 사례여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출토된 청동단검은 요동(遼東) 지역 청동단검문화 제4기 유물과 유사하고, 또 요녕성(遼寧省) 무순(撫順) 윤가촌(尹家村) 고분군의 12호 석관묘(石棺墓)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흡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윤가촌 12호묘는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말기에서 진한(秦漢)시대(진(秦)이 전국통일을 달성한 기원전 221년부터 후한(後漢)이 멸망한 기원후 220년까지)에 해당하는 고분으로 파악되고 있음으로 대전자청동단검묘 역시 같은 시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함께 수습된 명도전 역시 전국시대에 사용된 화폐이지만, 이후 시기 의례용 혹은 부장품으로서 널리 사용된 것을 감안할 때 대체로 기원을 전후한 시점의 고분임을 추정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여 고구려 초기의 고분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본계 환인 지역 무덤에서 청동단검이 출토된 적이 없고, 주로 요동에서 발견되는 유물이 발견된 것이어서 일치된 의견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고구려 주민의 대규모 집단 무덤인 고력묘자고분군(高力墓子古墳群)이 불과 4km 거리에 있고, 10km 내외의 반경 안에서 오도하자고분군(五道河子古墳群), 양가가촌고분군(楊家街村古墳群), 채아보촌고분(蔡我堡村古墳) 등 고구려 고분군들이 집중분포하고 있어서, 대전자청동단검묘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은 고구려 건국을 전후한 환인지역의 문화변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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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자청동단검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5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