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대라권구관애/석호관애

大羅圈溝關隘/石湖關隘/高麗城子關隘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석호진 공익촌(吉林省 通化市 石湖鎭 公益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400m
입지
중국 길림성 통화시 석호진 공익촌(고려성촌(高麗城村)) 동쪽 300m 지점의 계곡에 위치한다. 이곳은 소팔도구하(小八道溝河)가 대라권구하와 합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관애의 북쪽 20km 떨어진 곳에는 이도구문 관애가 위치한다. 통화-집안 철로가 관애의 동북 모서리를 통과하며, 관애의 중앙으로는 공익촌에서 노령(老嶺)으로 나가는 지방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관애 북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계곡 서측에는 동-서 방향의 갈림길이 있는데,이 길을 따라가면 관마산성에 이른다.
유적개관
통화시 석호진 공익촌의 대라권구하(大羅圈溝河) 양 옆으로 위치한 해발 900m의 높은 산 사이의 계곡을 가로질러 토석혼축으로 전체 길이 약 40m가량의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다. 관애는 남에서 서로 25°가량 기울어진 남북 방향이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12m이며, 정상부 너비는 1.5~3m가량이다. 성벽의 잔존 높이는 1.5~2.5m가량이다. 성벽 하단에 강돌과 깬 돌 등으로 기초부를 다진 다음, 양쪽 가장자리에 비교적 큰 치석된 석재 등을 놓고 안쪽에는 흙과 잔돌을 섞어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 바깥쪽으로는 반원형 치 6개가 축조되어 있다. 반경이 5~6m가량이며, 토축이라고 보고되어 있으나, 치 하단부에 치석된 석재들이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치의 기초는 석축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성벽 바깥쪽 6m 지점에는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참호시설이 있는데, 깊이 2m, 위쪽 너비 8m, 아래쪽 너비 6m가량이다. 관애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나, 대라권구하가 지나가는 관애의 남단 부분은 많이 유실되었고,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관애 중간 부분과 철도가 지나가는 북쪽 부분도 성벽이 완전히 절단되었다.
참고문헌
遲勇, 「고구려 중기 도성과 주변방어」, 제27회(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학술세미나 발표자료집, 2009
해설
석호진에서 3.5km 떨어진 고려성촌(高麗城村) 동쪽 300m 지점의 골짜기에 위치한다. 소팔도구(小八道溝)와 대라권구하(大羅圈溝河)가 합류하는 지점이다. 관애(關隘) 북쪽 20km 거리에 이도구문관애(二道溝門關隘)가 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교통로 중 하나는 통화에서 대라권구하를 거슬러 집안으로 향하는데, 대라권구관애는 대라권구하 상류에서 이 교통로를 차단하고 있다.
이 관애는 대하권구하 양 옆으로 위치한 해발 900m의 높은 산 사이의 계곡을 가로 질러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전체 길이 약 291m 가량의 차단벽이다. 관애는 남에서 서로 25°가량 기울어진 남북 방향이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12m이며 정상부 너비는 1.5~3m 가량이다. 성벽의 잔존 높이는 1.5~2.5m 가량이다. 성벽 하단에 강돌과 깬돌 등으로 기저부를 다진 다음, 양쪽 가장자리에 비교적 큰 치석된 석재 등을 놓고 안쪽에는 흙과 잔돌을 섞어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 바깥쪽으로는 반원형 치 6개가 축조되어 있다. 반경이 5~6m 가량이며, 흙으로 쌓았다고 보고되어 있으나 치 하단부에 치석된 석재들이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치의 기초는 석축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성벽 바깥쪽 6m 지점에는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참호시설이 있는데 깊이 2m, 위쪽 너비 8m, 아래쪽 너비 6m 가량이다. 관애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나 대라권구하가 지나가는 관애의 남단부분은 많이 유실되었고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관애 중간 부분과 철도가 지나가는 북쪽 부분도 성벽이 완전히 절단되었다. 현지 주민에 의하면, 1958년 수로를 보수할 때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관애 중앙의 지표하 1.2m 지점에서 주춧돌을 한 개 발견했다고 한다. 이로 보아 연재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이 관문터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관문의 폭은 약 9m 정도이다.
참호나 치(雉)가 대라권구하 하류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하류 방면에서 침입해오는 적을 방어하던 군사시설로 추정되므로, 고구려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대라권구관애/석호관애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5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