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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황니강대묘

黃泥崗大墓/JYM0036
  • 저필자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太王鎭 果樹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집안시 과수촌 남쪽의 작은 언덕에 위치한다.
유적개관
1966년 조사 당시에는 30호였으나, 2005년 조사시에는 36호로 명명하였다. 고분 보존상황은 좋지 않으며, 대부분의 돌이 유실된 상태이다. 현재는 첫 번째 계단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로, 중국측에서는 방형의 계단석실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물개관
* 기와
참고문헌
「集安高句麗墓葬」, 2007
해설
황니강 대묘는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태왕진 과수촌에 위치한 무덤이다. 황니강은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릉비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작은 언덕이다. 황니강은 북쪽으로는 용산, 남쪽으로는 압록강을 바라본다. 그 남쪽의 가장 높은 곳에 황니강대묘가 있다. 이 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구려 무덤 중에서도 대형에 속한다. 1966년 길림성박물관(吉林省博物館), 집안현문관소(集安縣文管所)에서 통구고분군의 실측조사를 진행할 당시에 발견되었다. 1980년에 고분 근처에서 기와가 발견되면서 ‘고구려 왕릉 중점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 때 황니강대묘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유적 주변 조사 및 정리가 진행되었다.
황니강 대묘는 계단식 돌방무덤이다. 발견당시에도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이는 고분 바로 근처에 토구(土口)-청석(靑錫)간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과 관련이 있다. 무덤을 만들 때 사용한 돌들은 거의 없어지고 남, 동, 서쪽은 1층 계단의 바닥부분만이, 북쪽은 1개의 가늘고 긴 돌[石條]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돌에서는 금속으로 가공한 흔적이 보인다. 계단 안쪽은 상당부분 이미 경작지로 변해 있었고, 무덤 안쪽에 채운 돌은 동쪽부분에만 너비 2-4m로 한줄 남아 있는데 남아있는 부분의 높이는 1.4m이다. 무덤의 형태는 사각형이다. 현재 남아있는 무덤의 크기는 남북 30m, 동쪽 27m, 서쪽 25m, 높이 1.4m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계단 안쪽에는 산돌과 강돌을 섞어 채웠다. 황니강 대묘의 계단에 사용한 돌들은 외연에 융기선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방법은 무덤이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고, 외관이 크고 무게있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계단을 만드는 방법들은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릉과 관련이 있다. 남아있는 무덤을 통해 그 형태를 살펴본다면 계단은 적어도 4단이나 5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무덤의 길이는 29m 남짓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훼손의 문제로 널방의 구조는 알 수 없다. 무덤의 주위에 암키와와 수키와의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황니강 대묘는 단독으로 하나의 산에 만들어졌고, 규모가 크고, 무덤 위에 기와를 사용하는 점에서 고구려 왕릉을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지형적으로도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릉과 직선상에 위치하면서 두 무덤과 거리도 가깝다. 또 계단에 사용한 돌을 가공하여 융기선(隆起線, 높게 들떠있는 선)을 제작하는 방법도 장군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러한 점에서 추측해 볼 때 무덤 주인은 고구려 왕족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황니강 대묘와 비슷한 양식의 무덤은 장군총 외에 천추묘, 광개토대왕릉 등이다. 이로 보아 연대는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에서 돌무지무덤[積石墓]이 가장 발전했을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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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니강대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