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중만(漊中蠻), 예중만(澧中蠻), 영릉만(零陽蠻)에서 반란이 일어나 토벌함
화제(和帝)
주 001영원(永元) 4년(92) 누중과 예중만 담융(覃戎) 등이 반란을 일으켜, 우정(郵亭)주 002을 불태우고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니, 군병(郡兵)이 격파하여 항복시켰다. 안제(安帝) 원초(元初) 2년(115) 예중만(澧中蠻)이 군현의 요역과 조세가 공평성을 잃었다고 원한을 품고, 마침내 충중(充中)의 여러 종족 2,000여 인과 결합하여 성(城)을 공격하여 장리(長吏)를 죽였다. 주군(州郡)에는 오리만과 육정(六亭)의 병사를 모집하여 이들을 추격하여 격파하니, 모두 흩어지거나 항복하였다. 오리와 육정의 거수(渠帥)들에게 각각 등급별로 보석과 비단을 하사하였다.주 003이듬해 가을 누중(漊中)과 예중만(澧中蠻) 4,000여 인이 모두 도적이 되었다. 또 영릉만(零陵蠻) 양손(羊孫)과 진탕(陳湯) 등 천여 인이 적책(赤幘)을 차고 장군을 칭하면서주 004관청을 불사르고 백성들을 노략질하였다. 주군에서는 선량한 만들을 모병하여 이들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색인어
- 이름
- 화제(和帝), 담융(覃戎), 안제(安帝), 양손(羊孫), 진탕(陳湯)
- 지명
- 충중(充中), 영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