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批), 게첩(揭帖), 자문(咨文) 속의 왜정(倭情) 관련 내용을 경략(經略) 고양겸(顧養謙) 자문(咨文)해 달라며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가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23. 都司咨令本國備報賊情于新經略
발신: 요동도지휘사사
사유: 공무(公務)에 관한 일입니다.
[요동도지휘사사] 이달 23일 신시에 순안산동감찰어사(巡按山東監察御使) 주(유한)의 비(批)를 받았습니다.
[주유한] 본사(本司)에서 게첩(揭帖)으로 「본원(本院)주 001 차관이 가지고 출발한 조선국(朝鮮國)의 자문 2통을 받고 본사로 하여금 살펴서 대략의 어구를 갖추어 게첩으로 보고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받고 이어서 통사 이해륭(李海隆)에게 역심(譯審)하여 ‘왜적의 형세가 여전히 급박하니 간절히 바라건대, 중병(重兵)을 계속 주둔시켜서 이로써 충돌해오는 것을 방어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배신 백유함[白惟咸]주 002의 공초를 얻었습니다. 자문 1통은 그 나라가 성지(聖旨)에서 총병(總兵) 유정(劉綎)이 원래 거느리고 있던 사천(四川)의 병사 5천 명으로 하여금 방수(防守)하게 하고 그 나머지 남방과 북방의 관군(官軍)은 모조리 철수해서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는데, 만약 왜노(倭奴)가 다시 깊숙이 달려 들어온다면 5천 명의 병사로는 능히 저지하지 못할 것이라 염려하면서 본원에 청하기를, 계속해서 대병력을 잔류시켜서 예전처럼 방수해 달라는 내용으로 제(題)를 갖추어 청해 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왜정(倭情)을 살펴달라는 일에 관한 자문 1통을 보냈는데, 역시 배신 백유함(白惟咸)은 ‘우리나라 왕이 절차대로 경상우도수군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度使) 원균(元均)의 치계(馳啓)를 받았는데, 거제현(巨濟縣)의 봉수군 김은(金銀)주 003 등과 회향인(回鄕人)들이 공초로 보고한 것에서 대개 이르기를, 왜노가 부산(釜山)‧동래(東萊) 등처 지방을 기반으로 점거하고서 성을 쌓고 물자를 쌓아두며 군대와 화기를 정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씨가 좋아지고 있어서 그들이 다시 침범할까 염려되므로 소방(小邦)은 위급합니다.’라고 공초하면서 또한 본원(本院)에 청하기를, 주본(奏本)을 갖추어 산동(山東)의 군량 10만 석을 청해 달라며 ‘의주(義州)까지 수송하면 의주에서부터는 소방이 도성(都城)까지 수송하고 이로써 도성의 소민(小民)들이 겪는 기아를 구제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병마(兵馬)를 요청하면서 ‘그 전라도와 충청도의 세량(稅粮)을 온전히 천조(天朝) 병사들의 식사로 쓴다면 장점과 단점이 서로 보완될 것이고 만약 늦어진다면 이완되어 일을 구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와 같은) 연유를 본원에 게첩으로 보고해서 「그들에게는 지금 조정에서 새로운 경략(經略) 고양겸(顧養謙)을 뽑아 동사(東事)를 경리하게 했다고 유시하고 저 나라의 사안들은 마땅히 속히 경략에게 자문으로 알리되 그 자문은 일단 해사(該司)에 두고 총독‧순무가 의정(議定)되기를 기다렸다가 이 격(繳)주 004을 시행하십시오.」라는 비(批)를 받았습니다.
[요동도지휘사사] 이를 받고, 헤아려 보건대 마땅히 곧바로 시행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마땅히 자문을 귀국에 보내니, 비(批)‧게첩‧자문 안의 내용을 살펴 의거하고 지금부터 나라에 왜정(倭情) 관련 사안이 있으면 마땅히 속히 새로운 경략 고양겸에게 자문으로 알리기 바랍니다. 또한 바라건대, 자문에 대한 회답을 보내주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조선국왕에게 보냅니다.
만력 22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