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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장천1호묘

長川1號墓/JCM001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1970·1997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청석진 장천촌(吉林省 通化市 集安市 靑石鎭 長川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집안시에서 25km 떨어진 압록강 오른쪽 기슭에 위치, 해당 지역의 3면은 산에 에워싸여 있고, 남측은 압록강에 인접되어 있다.
유적개관
전실과 현실로 이루어진 석실봉토분으로, 일찍이 도굴되었다. 천장구조는 전실은 평행삼각고임이고, 현실은 평행고임이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3.3m, 폭 3.2m, 높이 3.05m이다. 벽화는 전실과 연도는 석회를 바른 다음 벽화를 그렸고, 현실은 돌 위에 직접 그렸다. 벽화 주제는 생활풍속과 사신, 연꽃 등이며, 예불도가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集安高句麗墓葬」, 2007
해설
장천분지 동쪽 낮은 구릉 위에 있는 고구려의 석실봉토벽화분이다. 장천고분군은 집안시 장천분지 동쪽 낮은 구릉지대에 조성된 고구려 고분군이다. 집안 시가지에서 동북으로 25km 떨어진 장천촌 북쪽 계단식 지형 위에 펼쳐져 있다. 장천고분군에서 가장 큰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 중 하나이다. 무덤의 서북 174m 지점에 장천2호분이 있다. JCM001호로 편호되었다. 1970년 8월 길림성문물공작대와 집안현문물보관소에 의해 발굴 및 조사되었다. 1997년 재조사와 실측보고 작업이 이루어졌다. 무덤 외형은 방대형이며, 봉분 밑면 둘레 88.8m, 높이 약 6m이다. 연도와 전실, 용도, 후실로 이루어진 2실묘로 무덤 방향은 남으로 37° 기운 서향이다. 연도의 길이는 153cm, 너비는 140cm, 높이 190cm이고, 전실의 길이는 237cm, 너비는 290cm, 높이는 335cm이며, 용도 길이 112cm, 너비 134cm, 높이는 162cm이다. 후실의 길이는 330cm, 너비는 320cm, 높이는 305cm이다. 전실 천장구조는 3단의 평행고임과 3단의 삼각고임을 번갈아 얹은 변형평행삼각고임이며, 후실의 천장구조는 5단의 평행고임이다. 후실 동벽과 서벽에 잇대어 2기의 돌 관대가 나란히 설치되었다. 후실 벽 위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동벽에 8군데, 남벽과 북벽에 각 7군데씩의 못 구멍이 뚫려 있어 만장(幔帳)을 걸기 위해 설치한 못자리로 추정된다. 연도를 제외한 석실 안의 벽과 천장에 벽화를 그렸는데, 전실과 연도의 벽화는 벽면과 천장부에 덧입혀진 백회 위에 그렸으며, 후실 벽화는 석면 위에 직접 그렸다. 벽화 가운데 백회가 떨어져 나가거나 습기에 의해 지워진 부분이 많다. 벽화주제는 생활풍속과 장식무늬이다. 후실 천장석 벽화 중에 ‘북두칠청(北斗七靑)’이라는 묵서명이 있다. 전실 네 벽모서리에는 묵선과 자색안료를 이용해 기둥과 도리를 그려 전실 안이 목조건물의 내부처럼 느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각 벽의 중단이나 하단에도 자색의 굵은 가로띠를 그려 넣어 실제 전실의 각 벽은 오히려 자색의 띠로 구획된 여러 개의 독립화면과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실 벽에는 묘주인 생전의 생활을 기념하는 내용을, 전실 천장고임에는 사후 세계에 대한 기원을 담은 내용을 주로 그렸다. 전실 남벽에는 자색 띠로 상, 중, 하 세 개의 화면을 나누었으며 그 가운데 상단과 중단에는 정자에 앉은 무덤 주인 부부가 시종들의 음식시중을 받으며 무용과 합창을 보고 들으며 즐기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하단 화면의 내용은 백회가 떨어져 나가 알 수 없다. 연도와 이어지는 서벽의 좌우벽에는 갑주를 입고 칼을 찬 실물크기의 문지기무사를 그렸다. 북벽에는 큰 나무 아래 앉은 무덤 주인이 그를 찾아온 귀빈과 함께 각종 놀이를 보며 즐기는 백회기악장면과 일단의 수렵대가 여러 종류의 동물을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위쪽의 백희기악도는 공과 칼을 번갈아 던지며 받는 놀이, 공중에서 바퀴굴리기 놀이, 원숭이 다루기 등 여러 가지 곡예와 씨름, 거문고 연주에 맞춘 노래와 춤 등의 다양한 놀이장면으로 이루어졌다. 무덤주인이 앉아 있는 곳과 가까운 화면 중심부에는 주위 인물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큰 흰개 한 마리와 흰 말 한 마리가 그려졌다. 당대의 종교 관념과 관계있는 존재로 생각된다. 한편 화면 왼편의 마부를 비롯한 하인복장의 몇몇 인물은 코가 높고 눈이 크며 수염이 짙은 서역계 인물로 고구려의 대외교섭범위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백희기악도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 사이의 공간에는 사람머리 크기의 연꽃과 연봉오리가 수없이 많이 떠있는데, 다른 벽화 내용과 함께 불교에 대한 인식과 관련 있는 표현으로 판단된다. 아래쪽의 사냥그림은 활이나 창으로 사슴, 호랑이, 멧돼지 등을 사냥하는 모습으로 구성되었다. 화면 왼편 하단의 큰 나무둥치 밑의 산속 동굴 속에 숨은 흑곰의 투시도는 당대의 민간신앙과 관련된 표현으로 보인다. 연도로 좌우로 나뉜 동벽에는 서벽에서와 같은 실물크기의 문지기 2인을 그렸는데, 서벽과 달리 이들은 평복 차림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연도 좌우벽에도 역시 실물크기의 여인이 두 사람 묘사되었다. 이들은 시녀로 각기 긴 막대부채 한 개씩을 들고 있다. 문지기와 시녀들은 모두 고구려 고유의 점무늬옷을 입고 있다. 전실천장고임 제1단 각 면에는 사신을 그렸다. 사신은 전실에서 후실을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할 때,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의 순서로 배치되었다. 현무가 그려져 있어야 할 천장고임 1단 서측 벽화는 백회가 떨어져 내용을 알 수 없다. 동벽 천장고임 암수주작의 좌우로는 날개모양의 갈기가 달린 기린 한 쌍이 묘사되었다. 천장고임 제2단과 제3단에는 예불도, 보살도, 전투도를 그렸다. 예불도는 전실에 들어서면서 마주 쳐다보이는 동면에 자리 잡았으며 그 좌우면, 곧 북면과 남면에 보살도가 위치하였다. 예불도의 중심적인 존재인 여래(如來)는 선정인(禪定印)을 한 채 수미좌 위에 결가부좌라고 있으며 그를 향하여 무덤주인부부로 짐작되는 귀족남녀가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 여래를 공양하고 있다. 남면과 북면 천장고임의 보살은 각 4구씩이며 모두 여래를 향한 채 연화반 위에 서 있다. 동벽 상단과 천장고임 제2, 3단 각 면 양 끝에는 2인의 동자가 연꽃에서 화생(化生)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무덤주인이 바라는 내세연꽃화생소원이 드러나고 있다. 천장고임 제4, 5단에는 비천, 화염보주, 백학 등이 묘사되었다. 천장고임 제6단에는 뿔피리, 횡피리와 같은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기락천을 그렸다. 천장고임의 각 삼각석 옆면에는 하늘세계를 떠받드는 우주역사를 층층이 한 사람씩 묘사하였다. 크고 둥근 눈으로 인해 서역계 인물을 연상시키는 역사들은 하나같이 짧은 바지를 입고 윗몸은 벗은 채 힘을 다하여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천장고임 각층의 밑면에는 집안지역 특유의 꽃잎 끝이 뾰족한 연꽃의 측면모습을 그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이들 연꽃은 비천이나 기악천보다 크다. 천장석 그림은 백회가 떨어져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전실 천장고임의 인물과 동물들 사이의 공간에는 전실 북벽에서와 같이 커다란 연꽃과 연봉오리들이 수없이 떠 있다. 후실 입구의 돌문과 후실 벽, 천장고임은 연꽃으로만 장식되었다. 이들 연꽃은 대부분 지름 16~17cm 크기의 활짝 핀 형태의 것으로 상하좌우로 엇갈리며 열과 행을 이루게 그려졌다. 후실 천장석에는 해와 달, 별자리를 묘사하였다. 별들은 ‘X’자로 교차하는 대각선에 의해 4개의 정삼각형으로 나누어진 각 구획에 분산·배치되었다. 동서 방향으로 배치된 해와 달은 각기 원안의 삼족오와 원안의 두꺼비, 옥토기로 표현되었다. 후실 관대에도 그림이 있었으나 퇴색이 심하여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장천1호묘는 전실 벽화 중의 다양한 내용의 백희기악도와 사냥그림에도 불구하고 예불도와 보살도, 후실 벽과 천장고임의 연꽃장식이 지니는 종교적 의미로 말미암아 특히 주목할 만한 벽화분이다. 전실 천장고임과 후실 벽화는 장천1호분 피장자와 그 일족이 비교적 독실한 불교도였으며 내세에 서방정토에서의 환생을 바라는 불교적 내세관을 지닌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전실 천장고임 삼각석의 우주역사를 비롯한 예불도와 보살도 등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석굴사원 장식 중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고구려와 중국 남북조국가 간의 활발한 문화 교류를 시사한다. 장천1호분벽화 가운데 전실과 후실의 연꽃도안과 전실 천장고임의 주작, 기린 및 우주역사 등의 표현기법은 삼실총의 벽화에 보이는 것과 매우 가깝다. 반면 전실 천장고임의 청룡과 백호는 삼실총벽화의 것보다 표현 수준이 훨씬 높으며 후실 벽화는 6세기의 전형적 사신도 벽화묘에서 볼 수 있듯이 석면에 직접 그렸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할 때, 장천1호분은 고구려와 북위 사이의 교류가 특히 활발하고 고구려에서의 불교신앙의 확산이 뚜렷이 이루어지던 5세기 중반의 늦은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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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천1호묘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60_0040_0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