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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외교문서

조사보고에 관한 건

  • 발신자
    황수영
  • 수신자
    임병직
  • 날짜
    1958년 7월 7일
  • 문서종류
    보고서
  • 형태사항
    필사  , 국한문 
檀紀 四二九一年 七月 七日
韓日會談 首席代表 專門委員 黃壽永 林炳稷 貴下
調査報告에 關한 件
左記 三件에 對한 調査報告를 提出하나이다
記 一, 第一次로 返還된 文化財 一○六點의 評價에 對하여 一, 對日請求 韓國文化財 目錄 檢討의 件 一, 東京 國立博物館 所藏 우리 文化財의 種別 數量에 關하여(以上)
第一次로 返還된 文化財 一○六點의 評價에 對하여 지난 四月 十六日 日本 側으로부터 返還된 文化財 一○六點에 對하여 다음과 같이 評價하나이다.
一, 考古資料로서의 評價… 一○六點은 모두가 우리나라 三國時代에 屬하는 古墳 一基(昌寧郡 校洞 所在) 로부터 一九日八年 所謂 朝鮮總督府에 의하여 發掘된 遺物의 總量이온 바 그 種類와 數量에서 判定하여 同代 古墳 中에서도 小規模의 것이오며 出土된 遺物의 資料價値도 크다고는 할 수 없나이다 다만 昌寧郡에 所在하던 古墳 數百基가 日帝 時 全部 盜掘되었고 그 發掘遺物 中 重要한 것이 모조리 日人 手中에 들어가 散逸된 現狀에 비추어 이 地方에서 出土된 確實한 考古資料라는 點에서 또 多幸히 그에 關한 報告書도 있음으로써 그 學的資料로서의 價値가 認定되는 바입니다 이러한 意味에서 一括 遺物의 返還은 우리 古文化 硏究에 있어서 貴重한 一資料를 確保케 하였다고 할 수 있나이다.
二, 金錢評價에 對하여 考古資料로서의 價値는 그 出土地가 明白하고 調査記錄이 正確할 때에 비로소 賦與되는 것이 온 바 이 같은 資料價値를 떠나 分離된 個體로서 評價할 때에는 價値의 低下를 招來하나이다. 다만 이것을 無理하게 個個로 分離하여 現在 日本에서 同 種類의 우리 文化財에 對한 時價를 參考삼아 推算한다면 唯一의 貴重品이라 할 수 있는 金製耳環 一雙(二個) 은 日貨로 七萬円 乃至 十萬円 程度이오며 鐵製刀子殘欠, 鐵器殘欠, 銀製環, 碧玉製管玉, 硝子小玉 等等은 거의 換價의 對象物이 되지 않사오며 陶器 土器類에 있어서는 大形의 陶製長頸壺 二個가 各各 日貨 二萬円 內外의 評價를 받을 수 있을 것이오며 其他의 盌, 坏, 蓋類 等은 一個에 對하여 日貨 數 百円으로부터 最高 數 千円 程度입니다. 따라서 一○六點 全部의 金錢評價는 現在 日本 東京에서 賣買되고 있는 高麗磁器 優良品 一個의 市價 二十萬円 乃至 三十萬円과 此等할 것으로 推定하나이다.
[附記 一] 一○六點에 對한 記錄과 寫眞은「大正 七年度 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 刊行) 中에 記載되어 있음(이 冊은 國立博物館에 있습니다)
[附記 二] 日帝 時 昌寧郡 古墳(推定王陵) 에서 盜掘되어 日人에 의하여 秘密裡에 日本으로 運搬되어 日帝 時에 國寶 또는 重要美術品으로 指定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國寶金銅透彫寶冠 一 金銅翼狀冠飾 一 金銅心葉形垂飾耳環 一 金銅臑當 一 金釧 一 金銅透彫飾履 一 金銀裝環頭大刀柄 一 鐎斗 一 慶南 昌寧古墳 出土 日本 千葉縣 小倉武之助 所藏·重要美術品 鳥形瓦器 馬形瓦器 車輪付雙口瓦器 傳稱 昌寧古墳 出土 日本 千葉縣 小倉武之助 所藏 對日請求 韓國文化財 目錄 檢討의 件
政府 作成의 우리 文化財目錄은 一九四五年 以前의 文書 또는 刊行物과 같은 文獻資料를 主要한 根據로 하여 在日本 文化財 全般에 對하여 作成된 만큼 資料的 性格을 띈 이 目錄은 修正整備되어야 하겠사온 바 그 理由는 大略 다음과 같습니다 (1) 石造物 以外는 모두가 移動性이 많은 有形文化財이므로 第二次大戰 中 戰災에 의한 若干의 損失은 除外한다 하더라도 解放 後 日本의 經濟的 文化的 混亂期에 있어서 그 所在地와 所有者의 變動이 激甚하나이다 이 같은 現象은 特히 個人所藏品이 있어 顯著하나이다 (2) 對日文化財 請求에 있어서 日本에 의한 우리 文化財의 搬出期間을「西紀 一九○五年 以後」로 限定하였기 때문에 그 以前에 있어서 主로 壬辰倭亂을 契機로 掠奪되었다고 推定되는 文化財는 請求對象에서 除外하여야 하므로 그 取捨選擇의 必要가 있나이다. 이것은 特히 典籍部門에 있어서 尤甚하나이다 (3) 目錄作成 當時 資料의 未備로서 漏落된 우리 文化財로서 새로히 調査된 것 또는 앞으로 判明될 相當量의 文化財가 있나이다 上記와 같은 理由에 의하여 文化財 目錄의 整備를 위한 資料蒐集에 努力하고 있사온 바 文化財의 範圍가 넓고 그 種類가 많사오며 그 中 美術品만을 들어보더라도 各 部門別로 分類할 수 있어 모두가 專門的 知識과 判斷을 要하는 것뿐이므로 單獨으로 短時日 內에 文化財 總 目錄의 完備를 期 하기는 困難할 것으로 짐작하나이다. 더우기 우리 文化財가 東京京都와 같은 集中地代 以外에 日本 全國에 分散되어 있는 만큼 그 集大成을 위하여서는 相當한 期間과 人員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特히 이곳서 注目되는 바는 個人收藏品 中에 가장 貴重한 文化財가 集中되고 있는 事實입니다. 美術品 中 高麗磁器나 李朝陶磁에 있어서는 더욱 이 같은 事實이 顯著하온 바 最近 日人 專門家의 推算에 의하면 日帝 時 日本에 持來한 高麗磁器는 數 萬點에 達한다고 하였사오며 日人 小倉武之助 所藏品의 新 目錄(一九五四年에 三個月의 時日을 要하여 作成된 貴重한 資料인 바 이것은 우리 代表部에서 入手한 것을 最近 調査할 수 있었음) 에 의하면 總點 數 約 千點에 達하는 바 그 中에는 國寶級 遺物이 多數 包含되어 있나이다. 다만 이 같은 個人所藏品은 實物調査와 評價에 있어서 더욱 困難을 느끼는 바 입니다.
上記한 바와 같이 이미 作成된 우리 文化財 目錄을 中心으로 하여 急速한 整理와 調査의 萬全을 期하기 위하여 典籍과 個人 所藏品을 專擔調査할 專門委員 各 一人을 補强하여 주시옵기 建議하나이다. 本 委員은 典籍에 關하여서는 充分한 知識을 具備하지 못하오며 따라서 이 方面의 調査檢討는 거의 進行을 보지 못하고 있사오며 또 量과 質에 있어서 우리 文化財의 가장 重要한 部分을 찾이하는 個人所藏의 美術品에對한 調査와 評價에 있어서도 專擔할 委員을 必要로 하나이다 앞으로 文化財 目錄 中 修正을 要하는 點에 對하여서는 項目을 따라 報告하겠습니다 (以上)
東京 國立博物館 所藏 우리 文化財의 種別 數量에 關하여 政府 作成의 對日請求 韓國文化財 目錄(美術品) 一, 二에 各各 收錄되어 있는 日本 東京 國立博物館 所藏品 目錄은 日帝 時에 刊行된 年度別 博物館 年報와 其他 資料에 의하여 集成한 것이온 바 東京에서 새로히 入手 調査한 同館의 新 目錄(東京 國立博物館) 八十周年(1952年 紀念出版임) 에 의하면 現在 同館이 收藏하고 있는 우리 文化財의 種類別 數量은 左記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 目錄 中 該當 部分은 이 新目錄에 의거하여 整理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新目錄 中에는 日本이 第一次로 返還한 一○六點과 二次 目錄으로 提出한 四八九點의 目錄도 包含되어 있사온 바 오직 이 兩件에 對하여서만은 그 밑에 各各「朝鮮總督府 寄贈」이라고 記錄되어있나이다
東京 國立博物館 所藏의 우리 文化財의 種別 數量考古資料 三○三八點 土俗品 一一七七點金工品 七九七點[宗敎(二六) 服飾(一八二) 鏡(一五六) 食器 其他(九四) 貨幣(三二三) 雜(一六) ] 陶磁器 三八六點 硝子器類 二六點 玉石類 三二點 漆工品 三九點 染織品 八點 繪畫 二四點 書跡 五九點 彫刻 三一點 總計 五六一七點
「東京 國立博物館 收藏品 目錄」全 三冊에 의하여 分類 計數하였음. (以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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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보고에 관한 건 자료번호 : kj.d_0005_0040_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