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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종7위하...]

종7위하 행치부성소록신(行治部省少錄臣) 월지직정계(越智直淨繼; 오치노아타히키요츠구)
 
【주석】
1. 월지직정계(越智直淨繼)
월지직정계는 여기에만 보인다.
월지직씨(越智直氏)는 좌경 신별(상) 「월지직(越智直)」 조에서 “석상씨(石上氏)와 조상이 같다”라고 적고 있다.
월지직씨 일족으로는 우선 월지직광강(越智直廣江)을 들 수 있다. 그는 『속일본기』양로(養老) 5년(721) 정월 경오조에 기조신남인(紀朝臣男人), 산전사삼방(山田史三方) 등과 함께 퇴조 후 동궁(東宮)에서 섬기라는 명을 받은 인물이며, 『속일본기』 양로 5년 정월 갑술조에는 “조를 내려 문인과 무사는 국가가 중히 여기는 바이다. 의복(醫卜)과 방술(方術)은 예나 지금이나 숭상한다. 백료 중에서 학업에 뛰어나 사범이 될 만한 자를 뽑아 특별히 상을 주어 후생을 권장하여 격려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고 하고, 명경에 가장 뛰어난 박사 종5위상 단야조대우(鍜治造大隅)와 정6위상 월지직광강에게 각각 비단 20필과 비단실 20구, 포 30단, 가래 20구를 하사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영집해(令集解)』 승니령(僧尼令) 임승강(任僧綱)조에는 대학명법박사(大學明法博士) 월지직광강이라 기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등씨가전(藤氏家傳)』 하(下)에서 숙유(宿儒)로 제시된 인물 가운데 월지직광강이 보이고, 『회풍조(懷風藻)』 에는 종5위하 형부소보겸대학박사(刑部少輔兼大學博士) 월지직광강이 쓴 시가 기재되어 있다. 명경박사, 명법박사를 역임한 인물로서 시대를 대표한 숙유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월지직조계(越智直祖繼)는 『영집해(令集解)』 선서령(選叙令) 수재출신(秀才出身)조에 연력(延曆) 21년(802) 6월 8일 태정관주(太政官奏)에 문장조교(文章助敎) 정7위상 월지직조계가 보인다. 『일본후기』 연력 18년(799) 8월 계사조에는 이예국인(伊豫國人) 종7위하 월지직조계를 좌경에 부관(付貫)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월지직조계는 좌경 신별(상) 「월지직(越智直)」 조를 참조.
월지직광봉(越智直廣峯)은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13년(871) 11월 13일 을유조에 이여국(伊予國) 월지군(越智郡) 사람 외종5위하(外從五位下) 행직강(行直講) 월지직광봉이 좌경에 부관한 기록이 보이고, 정관 15년(873) 12월 2일 계사조에는 좌경인(左京人) 외종5위하 행조교(行助教) 월지직광봉이 선연조신(善淵朝臣)으로 개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월지직씨 일족인 월지직광강, 월지직조계, 월지직광봉 등은 대학명법박사, 명경제일박사, 대학직강, 대학조교직에 보임된 학자들이다. 또한 월지직정계는 월지직길계(越智直吉繼), 월지직조계(越智直祖繼)와 근친관계였다. 월지직씨는 앞에서 살펴본 「이예부련년사(伊豫部連年嗣)」 조에 기재된 이예부련씨(伊豫部連氏)와 같이 학자를 많이 배출한 씨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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