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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우노련(宇努連; 우노노무라지)

우노련(宇努連; 우노노무라지)
 신라(新羅)의 황자(皇子; 와우지) 김정흥(金庭興; 긴테이코우)의 후손이다.
 
【주석】
1. 우노련(宇努連)
우노(宇努; 우노노)라는 씨명은 『일본서기』 흠명천황(欽明天皇) 23년(562) 7월 기사삭조에 보이는 하내국(河內國) 갱황군(更荒郡) 노자야(鸕鶿野; 우노노)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갱황군은 현재 대판(大阪) 북쪽의 사조철시(四條畷市)와 침옥천시(寢屋川市)의 동남쪽과 대동시(大東市) 일대로 비정하지만, 노자야읍은 갱황군의 하나의 촌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우노련(宇努連)은 여기에만 보인다.
2. 신라황자김정흥(新羅皇子金庭興)
신라의 황자 김정흥은 여기에만 보인다. 율전관(栗田寬)은 『일본서기』 흠명천황 23년(562) 7월 기사삭조에서 “신라가 사절을 보내어 조부(調賦)를 바쳤다. 그 사절이 신라가 임나를 멸망시켰다는 것을 알고 나라의 은혜를 저버린 것을 부끄럽게 여겨 감히 돌아가기를 청하지 못하고, 마침내 머물러 본토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를 국가의 백성과 같은 예로 대우하였는데, 지금 하내국 갱황군 노자야읍의 신라인의 선조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기사에 기초하여 김정흥이 왜국으로 건너간 것이 바로 흠명조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흠명기에는 단지 신라국 사람으로 나올 뿐이다. 따라서 우노련씨는 『일본서기』 흠명천황 23년 7월 기사삭조를 참고하여 “신라 황자 김정흥”이라고 기재하고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김정흥이라는 이름은 562년 대에 신라 왕인 진흥왕(眞興王) 김진흥(金眞興)을 의식하여 만든 이름이라 추측된다. 더구나 본조와 같이 신라 황자의 후손이라 기록된 사례는 유일하므로 신라에서 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우노련씨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신찬성씨록』 뿐이다. 『신찬성씨록』 을 편찬하던 시기에도 일본 조정에 우노련에 관한 기록은 없었을 것이다. 『신찬성씨록』 편찬국에서 볼 때, 천무 8성에 해당하는 연(連) 성을 가진 우노련씨가 당시 일본 조정의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의문이었을 것이다. 또 우노련씨가, 신라 황자 김정흥이 신라 어느 왕의 아들인지 밝히고 있지 않은 점도 석연치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고기」 와 「구전」 에서 우노련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내용이 없어 미정잡성에 수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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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노련(宇努連; 우노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120_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