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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임생부공(壬生部公; 미부베노키미)

임생부공(壬生部公; 미부베노키미)
 어간성입언천황(御間城入彦天皇; 미마키이리히코노스메라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임생부공(壬生部公)
임생씨(壬生氏)는 하내국(河內國) 황별(皇別) 「임생신(壬生臣)」 조(278)에도 게재되어 있다.
임생부(壬生部; 미부베)라는 씨명은 『고사기(古事記)』 인덕천황단(仁德天皇段)에 “이 천황 시대에 태자(太子) 이사본화기명(伊邪本和氣命; 이자호와케노미코토)의 어명대(御名代; 미나시로)로 임생부(壬生部; 미부베)를 정하였다”라고 기재되어 있고, 『일본서기』 인덕천황 7년 8월 기사삭 정축조에는 “대형거래수별황자(大兄去來穗別皇子)를 위하여 임생부(壬生部)를 정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또 『일본서기』 추고(推古) 15년(607) 2월 경진삭조에도 “임생부를 정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임생부는 황자녀의 양육을 위해 설치된 부(部)인데, 유부(乳部)라고도 한다. 황자의 이름을 붙여 부른 명대부(名代部)가 임생부라는 보통명사로 통일된 것이 추고조 무렵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임생부공은 임생부의 반조씨족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임생부는 이른 시기부터 산성국(山城國)을 비롯한 전국에 설치되었다. 계통상으로는 하내국 황별 「임생신(壬生臣)」 조(278)에는 “대택(大宅; 오야케)과 조상이 같다”라고 기재되어 있고, 앞 조문인 「대택신(大宅臣)」 조(277)에는 “대춘일(大春日; 오카스가)과 조상이 같다. 천족언국압인명(天足彦國押人命; 아메타라시히코쿠니오시히토노미코토)의 후손이다”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천족언국압인명(天足彦國押人命)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임생신씨도 있다.
하내국의 임생부공은 여기에만 보인다.
상야국(上野國)에서는 임생공씨에 관한 기록은 다수 확인된다.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景雲) 2년(768) 7월 신축조에는 정6위하 임생공소광(壬生公小廣)이 외종5위하로 승서된 기록이 보인다. 또 『일본후기』 연력(延曆) 23년(804) 4월 임자조에는 외종5위하 임생공족인(壬生公足人)이 원지정(園池正)에 보임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일본후기』 홍인(弘仁) 4년(813) 2월 정유조에는 상야국 감락군(甘樂郡) 대령(大領) 외종7위하 훈6등 임생공군수(壬生公郡守)가 외종6위하에 승서된 기록이 보인다. 즉 임생공군수는 상야국 감락군 사람으로 군의 대령직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12년(870) 8월 15일 을미조에는 상야국 군마군(群馬郡) 외산위(外散位) 정8위상 임생공석도(壬生公石道)가 임생조신(壬生朝臣)이라는 성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870년에 조신 성을 받은 임생공석도도 상야국 군마군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2년(835) 정월 병인조에 정6위상 임생공영계(壬生公永繼)가 외종5위하에 승서된 기록이 보인다.
2. 어간성입언천황(御間城入彦天皇)
중국식 시호는 숭신천황(崇神天皇)이고, 일본식 시호로는 어간성입언천황(御間城入彦天皇)이다.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완본에서는 ‘어간성입언(御間城入彦)’ 다음에는 ‘오십경식(五十瓊殖)’이라는 4글자가, ‘천황(天皇)’ 다음에는 ‘시숭준(諡崇神)’이라는 3글자가 더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하내국의 임생부공(壬生部公)은 여기에만 보인다. 임생부공씨는 어간성입언천황(御間城入彦天皇)의 후손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임생부공과 숭신천황의 관계를 증명할 만한 기록이 「고기」 와 「구전」 등에 존재하지 않아 세운 조상도 의문시되어 미정잡성에 기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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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생부공(壬生部公; 미부베노키미)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1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