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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당종기촌(當宗忌寸)

당종기촌(當宗忌寸)
 후한(後漢) 헌제(獻帝) 4세손 산양공(山陽公)으로부터 나왔다.
 
【주석】
1. 당종기촌(當宗忌寸)
당종기촌의 본거지는 『연희식』 신명장(神名帳) 「하내국지기군(河內國志紀郡)」 조에 보이는 당종신사(當宗神社)의 진좌지(鎭座地) 주변 지역일 것이다. 현재의 대판부(大阪府)우예야시(羽曳野市) 고시정(古市町) 예전(譽田) 일대이다.
당종기촌씨의 일족으로는 『일본후기』 홍인(弘仁) 2년(811) 4월 정해조에 보이는 당종기촌가주(當宗忌寸家主)가 있다. 그는 동 6년(815) 7월조에 “하내국인(河內國人) 외종5위하 당종기촌가주 등 16인을 좌경 호적에 편입시켰다”라고 한다. 이 씨족의 원 본거지는 하내국임을 알 수 있다. 또 『속일본후기』 천장(天長) 10년(833) 5월조에는 “개(介) 종5위하 당종숙녜가주(當宗宿禰家主)”라고 하여 숙녜의 성으로 개성되어 있고, 동 승화(承和) 2년(835) 정월조에는 종5위상에서 정5위하로 승진하였다. 당종기촌씨 씨신사(氏神社)인 당종신사(當宗神社)는 『제신사(諸神社)』 에 인용된 『신국사(新國史)』 인화(仁和) 5년(889) 4월조에 “짐의 외조모 당종씨신사(當宗氏神社)는 하내국(河內國)에 있고, 금년부터 제사를 지낸다”라는 기록을 통해 그 소재지가 하내국임을 알 수 있다. 또 『연중행사비초(年中行事秘抄)』 에 인용된 『외기일기(外記日記)』 에 “인화 5년 4월 7일 무진, 이날 처음으로 하내국 지기군(志紀郡)의 당종씨신(當宗氏神)에게 봉폐사를 보내 제사지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2. 헌제(獻帝)
후한의 마지막 황제로, 재위 기간은 189~220년까지이다.
3. 산양공(山陽公)
위(魏)의 세력 하에 들어간 후한은 헌제의 재위 중인 건안(建安) 25년(220)에 선양의 형식으로 위왕 조비(曹丕)에게 황제의 자리를 내주었다. 『후한서』 헌제기에 헌제는 조비 위 문제를 산양공(山陽公)에 봉하였고,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산양공을 계승하였다. 동 헌제기에는 헌제로부터 4세손인 추(秋)라는 인물이 있는데, 당종기촌(當宗忌寸)은 추(秋)가 살해당하고 나라가 망한 후 그 자손이 일본으로 귀화한 씨족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속일본기』 연력(延曆) 4년(785) 6월조에는 동한씨(東漢氏)의 조상인 아지왕(阿智王)은 후한 영제(靈帝)의 증손으로 대방군으로부터 7성(姓)의 민을 이끌고 왔다는 도래 전승이 있다. 아지왕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동한씨 후예인 하총수(下總守) 판상예전마려(坂上苅田麻呂)가 상표한 내용이다. 또 동 씨족이 만든 〈판상계도(坂上系圖)〉의 별본에는 후한 광무제로부터 12세손인 산양공이 기재되어 있는데, 주기로 당종기촌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서기』 응신기 37년조에 아지사주(阿知使主)와 도가사주(都加使主)를 오에 파견하여 봉공녀(縫工女)를 구했는데 오왕이 형원(兄媛), 제원(弟媛), 오직(吳織), 혈직(穴織)의 4부녀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 웅략기 14년(470)조에는 신협촌주청(身狹村主靑)과 회외민사박덕(檜隈民使博德)이 오에서 모말재기(手末才伎), 한직(漢織), 오직(吳織) 및 의봉(衣縫) 형원(兄媛), 제원(弟媛)을 데리고 왔다는 전승과 일치한다. 이 전승에서 특히 도가사주라는 인물은 웅략기 7년(473) 시세조에 신래한인(新來漢人) 금래재기(今來才伎)인 신한도부고귀(新漢陶部高貴), 안부견귀(鞍部堅貴), 화부인사라아(畫部因斯羅我), 금부정안나금(錦部定安那錦), 역어묘안나(譯語卯安那) 등을 상도원(上桃原), 하도원(下桃原), 진신원(眞神原) 3곳에 안치시켰다는 동한직국(東漢直掬)과 동일인이다. 원래 이 전승은 5세기 후반의 기록은 사실성이 있으며, 응신기의 기록은 후대에 추가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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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종기촌(當宗忌寸)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40_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