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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고미기촌(高尾忌寸; 다카오노이미키)

고미기촌(高尾忌寸; 다카오노이미키)
 진숙녜(秦宿禰; 하타노스쿠네)와 조상이 같으며, 융통왕(融通王)의 후손이다.
 
【주석】
1. 고미기촌(高尾忌寸)
고미기촌의 씨명은 하내국(河內國) 고안군(高安郡) 고미읍(高尾邑)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대판부(大阪府) 백원시(柏原市) 견하고미산(堅下高尾山) 부근이다. 고미기촌의 옛 성은 사(寺)이다. 『속일본기』 영귀(寶龜) 11년(780) 5월 기묘조에 “하내국(河內國)고안군(高安郡) 사람 대초위하 사정마려(寺淨麻呂)에게 고미기촌(高尾忌寸)의 성을 주었다”라고 하듯이 이해에 사정마려가 고미기촌의 씨성을 받았다.
사(寺)를 씨명으로 하는 씨족으로는 천평(天平) 11년 8월 1일부 「우바새공진문(優婆塞貢進文)」 (『大日本古文書』 24-301)에 우경 3조 3방의 호주 사사족(寺史足)과 그의 호구인 사사매마(寺史妹麿)가 나온다. 『정창원문서』 보귀(寶龜) 5년(774) 11월 23일 비전국(備前國) 진고군(津高郡) 토원촌(菟垣村)의 토지 매매 문서에는 무성(無姓)의 사씨(寺氏)가 정세(正稅)를 바치지 못해 대신 토지를 매매하여 납부한다고 하였다(『大日本古文書』6-577). 거래 내역은 토지 3단이 도곡 80속이고, 향장(鄕長) 사광상(寺廣床)의 서명이 들어 있다. 상기 문서의 보귀 7년(776) 12월 11일부(『大日本古文書』 6-591)에는 사광상(寺廣床)이 촌장으로 나온다.
2. 진숙녜(秦宿禰)
진숙녜에 대해서는 하내국 제번 「진숙녜」 조(99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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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기촌(高尾忌寸; 다카오노이미키)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4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