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신찬성씨록

대리사(大里史; 오사토노후히토)

대리사(大里史; 오사토노후히토)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우즈마사노키미노스쿠네)와 조상이 같으며, 진 시황(秦始皇) 5세손 융통왕(融通王)의 후손이다.
 
【주석】
1. 대리사(大里史)
대리(大里)의 씨명은 하내국(河內國) 대현군(大縣郡) 대리향(大里鄕)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대판부(大阪府) 백원시(柏原市) 견하법선사(堅下法善寺) 주변이다. 『속일본기』 천평승보(天平勝寶) 8년(756) 2월조에 “천황이 지식(智識), 산하(山下), 대리(大里), 삼택(三宅), 가원(家原), 조판(鳥坂) 등 6개 사찰에 예불하였다”라는 기록 중의 대리사(大里寺)는 대리사씨(大里史氏)의 씨사(氏寺)였을 것이다.
2. 진시황(秦始皇)
전국 칠웅 진나라의 제31대 왕이자,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始皇帝, 기원전 259~기원전 210년)로서 성은 영(嬴), 이름은 정(政)이다. 『사기』 「진시황본기」 에 진 시황의 출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진 시황(秦始皇)은 진(秦)나라 장양왕(莊襄王)의 아들이다. 장양왕이 인질로 조나라에 있을 때 여불위(呂不韋)의 애첩을 보고 반하여 취하였다. 이어서 시황을 낳았다. 진 소왕(秦昭王) 48년(기원전 259) 정월에 한단(邯鄲)에서 태어나서 이름을 정(政)이고 성은 조(趙)라고 하였다. 시황이 13세이던 기원전 246년에 장양왕이 죽고 정이 진왕의 자리에 올랐다.”
3. 융통왕(融通王)
융통왕은 궁월왕(弓月王)을 말한다. 응신조(應神朝)에 도래했다는 전승은 『일본서기』응신기 14년조에 나온다. 『고사기』 응신천황단에는 “진조(秦造)의 선조, 한직(漢直)의 선조 및 술 빚는 법을 아는 사람으로 이름은 인번(仁番)이고 또 다른 이름은 수수허리(須須許理)라는 사람 등이 도래하였다”라는 진조 조상의 도래 전승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 응신기 16년 8월조에도 “평군목토숙녜(平群木菟宿禰), 적호전숙녜(的戶田宿禰)를 가라에 보냈다. 정병을 주며 ‘습진언(襲津彦)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분명히 신라가 방해하여 체류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가서 신라를 치고 길을 열도록 하라.’라고 명하였다. 목토숙녜 등이 정예병을 이끌고 나아가 신라의 국경에 이르렀다. 신라 왕은 놀라 사죄하였다. 궁월(弓月)의 인부를 거느리고 습진언과 함께 돌아왔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고어습유(古語拾遺)』 에도 “경도풍명조(輕島豐明朝, 應神朝)에 이르러, ……진공조(秦公祖) 궁월(弓月)이 120현을 이끌고 귀화하였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대리사(大里史; 오사토노후히토)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40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