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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회전기촌(檜前忌寸; 히노쿠마노이미키)

회전기촌(檜前忌寸; 히노쿠마노이미키)
 석점기촌(石占忌寸; 이시우라노이미키)과 같은 조상이다. 아지왕(阿智王)의 후손이다.
 
【주석】
1. 회전기촌(檜前忌寸)
회전(檜前)의 씨명은 대화국(大和國) 고시군(高市郡) 회전향(檜前鄕)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나량현(奈良縣) 고시군(高市郡) 명일향촌(明日鄕村) 회전(檜前) 일대이다.
회전기촌씨 일족으로는 『유취부선초(類聚符宣抄)』 1(태정관부, 天慶 원년 8월 23일부), 『정사요략(政事要略)』 57(태정관부 承平 7년 5월 5일부) 등에 회전숙녜충명(檜前宿禰忠明)이 있고, 『평안유문(平安遺文)』(1-372)에는 회전숙녜아공자(檜前宿禰阿公子)가 나온다. 모두 숙녜(宿禰)로 개성한 인물이다. 천평(天平) 4년(732) 6월 17일부 「섭진국도상군아옥향장해(攝津國島上郡阿屋鄕長解)」(『조야군재(朝野群載)』 21)에는 무명의 회전수(檜前首)가 있다.
『속일본기』 보귀(寶龜) 3년(772) 4월 경오조에는 동한씨(東漢氏, 倭漢氏) 후손인 판상대기촌예전마려(坂上大忌寸苅田麻呂)가 조상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회전기촌씨(檜前忌寸氏)가 대화국(大和國) 고시군사(高市郡司)에 임명된 것은 그 선조인 아지사주(阿智使主)가 응신조(應神朝) 때에 17현의 인민을 데리고 와서 고시군(高市郡) 회전촌(檜前村)에 거주했기 때문이고, 이곳에 회전기촌씨와 17현의 인부(人夫)가 가득 차서 타성은 열이면 하나, 둘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 민기촌씨(民忌寸氏)는 천평신호(天平神護) 원년(765)에 이르기까지 장원기촌씨(藏垣忌寸氏), 문옥기촌씨(蚊屋忌寸氏), 문산구기촌씨(文山口忌寸氏) 3씨가 교대로 고시군사(高市郡司)를 역임하여 4세대가 지났다고 주상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앞으로는 계보를 묻지 않고 회전기촌씨를 군사(郡司)에 임명하도록 조정했다고 한다.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여기에 나오는 회전기촌씨는 고시군에 있는 동한씨의 총칭이고, 민기촌씨·장원기촌씨·문옥기촌씨·문산구기촌씨를 포함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이어 『속일본기』 천평신호 원년(764) 2월조에 나오는 “회전기촌 236인”도 회전기촌씨 일족을 특정한 것이 아니고 왜한계씨의 총칭으로 추정한다. 『일본문덕천황실록』 천안(天安) 원년(857) 정월조에는 민기촌 등 왜한씨 제 씨족과 함께 기촌(忌寸)에서 이미길(伊美吉)로 개성하고 있다.
2. 석점기촌(石占忌寸)
석점기촌에 대해서는 섭진국(攝津國) 제번 「석점기촌」 조(96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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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기촌(檜前忌寸; 히노쿠마노이미키)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