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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산촌기촌(山村忌寸; 야마무라노이미키)

산촌기촌(山村忌寸; 야마무라노이미키)
 기지(己智; 고치)와 같은 조상이며, 고례공(古禮公)의 후손이다.
 
【주석】
1. 산촌기촌(山村忌寸)
산촌(山村)의 씨명은 대화국(大和國) 첨상군(添上郡) 산촌향(山村鄕)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속일본기』 보귀(寶龜) 8년(777) 7월조에 정6위상 산촌허지대족(山村許智大足) 등 4인이 산촌기촌(山村忌寸)의 씨성을 받았다고 한다. 산촌기촌의 옛 성은 산촌허지(山村許智)이다. 산촌기촌씨 일족으로는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慶雲) 2년(768) 2월 계미조에 정6위상에서 외종5위하의 관위를 받은 산촌허지인족(山村許智人足)이 있다.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6년(864) 8월조에는 우경인(右京人) 산촌기촌안야(山村忌寸安野), 산촌기촌하야(山村忌寸夏野), 산촌기촌전자(山村忌寸全子) 등에게 기조신(紀朝臣)의 성을 주었고, 그들은 기각숙녜(紀角宿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각숙녜는 『일본서기』 응신기(應神紀) 3년조에 백제 진사왕이 일본에 무례해서 진사왕을 죽이고 아화왕을 세웠다는 설화가 전하며, 동 인덕기(仁德紀)에는 백제에 파견되어 국군의 경계를 정하고 향토의 산물을 기록했다는 씨족이다. 산촌기촌씨가 기각숙녜의 후손이라고 칭한 것은 조신이라는 높은 성을 받기 위한 출자의 개변이라고 생각된다.
2. 기지동조(己智同祖)
『일본서기』 흠명기 원년(540) 2월조에 “백제인 기지부(己知部)가 투화하였다. 왜국 첨상군 산촌(山村)에 안치하였다. 지금의 산촌기지부(山村己知部)의 선조이다”라는 기사에서 산촌기촌씨가 기지(己智)와 동조임을 알 수 있다.
3. 고례공(古禮公)
이 인명은 기타의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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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기촌(山村忌寸; 야마무라노이미키)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20_0080